<기생충>이 종국에 우화로 끝난 것과 달리 <뉴 오더>에서는 본격적인 투쟁과 전면적인 폭력이 분출한다. 상대적으로 훨씬 덜 폭력적인 가운데 계급투쟁의 성격을 <기생충>이 더 뚜렷하게 드러냈다면, <뉴 오더>는 계급적대를 배제하지 않지만 계급 외에 인종과 폭력의 문제 등 다른 요소를 함께 묘사했다. 한 마디로 라틴아메리카적인 사회갈등을 이 영화는 다뤘다.
극중에서 마리안(나이안 곤잘레스 노르빈드)이 입은 옷의 색깔은 빨강이다. 마리안의 역할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영화에서 분명하게 부각되는 색깔로, 극중에서 이 색의 옷을 입은 사람은 마리안이 유일하다. 러닝타임 내내 분명하게 제시된 극중의 색은 마리안의 빨강, 민중의 녹색이다.
녹색과 달리 빨강이 계급을 의미하지는 않는 듯하다. 비록 부유층의 일원이자 또한 대표 격이기도 한 마리안이 빨간 옷을 입긴 했지만, <뉴 오더>에서 계급대립은 색조의 차이로 나타난다기보다는 유채색(지배계급)과 무채색(피지배계급)으로 식별되는 듯하다. 결혼식에 폭도가 난입해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장면.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과 무채색에 가까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이때 색상만으로 계급이 충분히 구분된다.
유채색과 무채색의 대비 외에 인종을 통해 계급은 식별된다. 결혼식장을 채운 부유층과 기득권 계층은 대체로 백인종의 외양이고, 거리를 메운 시위대는 원주민 혹은 혼혈의 모습이다. 결혼식이 열린 마리안의 저택 내에서도 인종 구분은 확연하다. 집주인과 결혼식의 주인공, 하객 등은 백인이고, 시중드는 사람과 운전사 등은 원주민 아니면 메스티조이다. 빨강 옷을 차려입은 주인공 마리안은 금발의 전형적인 백인이다.
영화에서 마리안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나신으로 녹색의 비를 맞으며 강한 인상을 보여준 첫 장면 이후 돋보이는 빨간 색 투피스를 입고 스토리의 축을 형성한다. 마지막 죽음의 장면에서도 처음에 입은 그 빨강 옷을 입은 채이다.
영화에서 마리안에게 빨간색을 사용한 이유는 다층적일 것이다. 멕시코 국기와 프랑스혁명기의 삼색기에 빨간색이 들어있음은 쉽게 연상된다. 결혼식 날 예식을 앞두고 마리안은 시위대가 거리를 장악한 긴박한 상황인데도 과거 자기 집에서 일했던 사람을 돕기 위해 차를 몰고 나갔다가 곤경에 처해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도입부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잠깐 비춘 후 빨간 투피스를 입고 납치되어 고통받고 학대받다가 끔찍한 결말을 맞는 마리안은 시대의 희생물로 제시되었을 것이다. 감독이 때로 무당의 역할을 한다면, 마리안이란 배역은 제사에서 드리는 흠 없는 희생양과 다름아니다. 무결한 신부의 죄 없는 죽음. 이것 또한 가톨릭 사회인 멕시코에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희생의 모습이다. 마리안의 이마에 적힌 16이라는 숫자. 별다른 의미 없는 임의적인 숫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예수의 탄신일로 1월 6일을 기념한다는 사실을 참고로 기억해 본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엄숙한 무대와 대미의 음악 ‘Toque de Bandera’(국민의례용 음악)에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주의의 위용을 볼 수 있다. 마르타가 교수형 당하기 전 클로즈업 된 두 인물은 장군과 자본가이다. 멕시코 국가를 지배하는 두 장본인이다. 멕시코가 누구의 나라인지를 냉정하게 지적하며, 누구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를 관객에게 묻는다. 마리안과 마르타라는 대표적인 두 계급의 희생은 무기력의 소묘일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개봉 2021.11.11
감독 : 미첼 프랑코
출연 : 나이안 곤살레스 노르빈드, 디에고 보네타, 모니카 델 카르멘
장르 : 스릴러
국가 : 멕시코, 프랑스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86분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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