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의 식문화는 크게 네 가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간편함의 진화, 혼밥족의 확산, 럭셔리식의 확대, 관계지향 식문화 등이다. 오늘은 이 요소들 중에서 ‘관계지향 식문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식사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주변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식사를 했었다.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돈가스를 썰어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가족과 함께 외식을 온 것이었다. 그 아이는 식당에서 내가 혼자 밥 먹은 것을 두고두고 놀렸다. 그러니까 10여년 전만 해도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놀림감이 될 만큼 별난 일이었던 것이다.

일상이 된 혼밥

<그림1>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주는 혼밥족의 모습(출처: 나 혼자 산다 홈페이지)
<그림1>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주는 혼밥족의 모습(출처: 나 혼자 산다 홈페이지)

10여년 만에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브릿지경제와 SK텔레콤 11기 캠퍼스리포터팀이 실시한 조사(2015년 7월, 대학생 250명, 직장인 250명)에서 혼자 밥을 먹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 중 90%가 넘었다.이른바 ‘혼밥족’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는데 혼자 밥 먹는 것을 단계별로 나눈 뒤 실행에 옮겨 온라인상에 인증 사진을 남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식품 및 외식 업계에서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과 서비스를 앞 다투어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편의점은 다양하고 구성이 잘 갖춰진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다. GS25시에서는 추가 증정 식품을 ‘나만의 냉장고’라는 애플리케이션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형마트는 소량으로 포장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외식업체는 1인용 좌석과 메뉴의 제공을 늘리고 있다. 식품 제조 업체는 1인 가구가 쉽게 요리할 수 있도록 식재료를 모두 손질한 반조리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혼자서라도 돈만 지불하면 무엇이든 합리적으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그러나 혼밥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혼밥족은 여전히 내적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심리적 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국민대통합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가 미디어다음과 함께 3주간 실시한 온라인 토론 결과에서 1인 가구 생활의 문제점으로 ‘심리적 불안감과 외로움’(36.9%),‘아플 때 간호해줄 사람이 없음(21.8%)’,‘경제적 불안정(16.4%)’ 순으로 응답한 것을 봐도 이러한 현실이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이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환경에 있는 1인 가구는 음식 자체를 탐닉하던 과거와는 달리 식사를 통해 정서적인 포만감을 채우기를 원한다.이를 대변하듯 2013년부터 불어 닥친 ‘집밥 열풍’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타인과 교류하는 것이 용이해졌지만 마주앉아 밥 한 끼를 먹는 것은 어려워졌다. 프랜차이즈, 배달 및 포장 식품 시장에서 손쉽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은 거꾸로 집밥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따뜻한 이미지의 김혜자씨를 내세운 GS25의 도시락이 인기를 끌고 가정식을 내세운 식당이 늘어났고 집밥의 건강한 이미지를 부각한 한식 뷔페 역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밥맛이 소비자들의 욕구를 다 채워주진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밥을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 전국 만19~59세 성인남녀 2000명, 70.4%가 집밥의 의미를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이라고 응답했다), 그런 밥맛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엄마가 해준’이라는 의미가 단지 생산자가 누군지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따뜻한 관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달랠 방법은 무엇인가?2015년 3월, 한 서울대 학생은 동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앱 ‘두리두밥’을 개발했다. 이 앱은 학생들이 근처 식당이나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전날부터 약속 30분 전까지 사이에 약속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청한 사람들이 점심, 혹은 저녁과 장소를 신청하면 무작위로 짝을 맺어준다. 누구와 밥을 먹을지 알 수 없다는 기대와 같이 먹는다는 관계를 동시에 매칭시킨 셈이다.낯선 관계에 어색해하는 한국인의 특성에 비춰보면 대단히 이례적인 이런 식문화는 SNS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할 수는 없다. 얼리어답터 단계에 아직 머물고 있다. 공개적으로 소셜다이닝을 표방한 사이트들은 2012년 처음 개설하여 열풍을 몰고 온 ‘집밥(www.zipbob.net)’을 제외하면 미미한 실적이다. 이처럼 소셜다이닝을 표방한 기업들은 죽을 쑤고 있지만 각 커뮤니티, 기관, 단체가 기존의 활동에 기반해 진행하는 소셜다이닝식 식문화는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모임의 종류도 훨씬 다양해져서 쿠킹클래스, 도자기 공예, 클라이밍 체험, 미술관 투어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큰 프로젝트들은 성공하기 쉽지 않지만 소소한 단위의 프로젝트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림2> 스타트업을 위해 마련된 네트워킹 `미트 허브`의 소셜다이닝 모습(출처: 플래텀 미디어 사이트)
<그림2> 스타트업을 위해 마련된 네트워킹 `미트 허브`의 소셜다이닝 모습(출처: 플래텀 미디어 사이트)

이런 현상은 이 새로운 식문화가 습관이나 삶의 규칙 변화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인들이 여전히 김치맛을 잊지 않듯이 습관이나 삶의 규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낯섦은 어떤 종류의 익숙함, 그리고 기대감을 버무려야 수용될 수 있다. 관계지향 식문화가 한국에서 확산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오래된 문화 원형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집밥은 2015년 5월 20개 도시로 확장되었고 2015년 12월 현재(이 글을 쓰면서 방문해보았다) 총 4100만명의 방문자, 개설되었던 모임 수 2만 1천여개, 지금 진행중인 이벤트가 157개다. 이에 소셜다이닝의 배경이 되는 같이 밥먹기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모바일 환경이 더욱 편리해지면서 2016년의 소셜다이닝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다만 그 발전 방향은 소셜다이닝의 형식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나 배움, 관계의 확산 등에 대한 기대를 채워주는 콘텐츠들과 혼합되는 방식으로 나아 갈 것이다.

외로움은 공동체의 문제로 진화관계지향 식문화의 두 번째 방향은 공공, 혹은 공동체적 필요에 의해 발전해가는 것이다.외로움은 혼자의 몫이 아니다. 외로운 사람이 많은 사회가 역동적일 수는 없다. 사회와 경제의 발전은 결국 사람들의 에너지에 의존하는데,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에너지는 문화적 잠재력을 떨어뜨리며 장기적으로 사회의 쇠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1인 가구만 해도 취업난과 고령화가 심화된 환경 속에서 자발적인 의지가 아닌 불가피하게 혼자 살게 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 거주 청년들의 1인 가구 주거빈곤율(최저 주거기준 미달이거나 반지하, 옥탑이거나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비율)은 36.3%에 달하고 있으며, 가구 유형별로 빈곤율을 살펴보면 가처분소득의 중위 50%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노인, 1인가구, 여성가구주가구, 한부모가구, 아동 순으로 높았다(2015, 빈곤통계연보).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3년 1인 가구의 빈곤율은 51.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3> 강동구 `공유부엌` 홍보포스터(출처: 강동구 청년 아지트 홈페이지)
<그림3> 강동구 `공유부엌` 홍보포스터(출처: 강동구 청년 아지트 홈페이지)

따라서 지방자치단체 등이 관계지향 식문화의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동구에서는 마을기업 ‘청년아지트 강동팟’과 연계해 2015년 6월부터 ‘공유부엌’이라는 1인 가구 식사 공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강동구의 공유촉진 사업의 하나로 1인 가구가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며 소통하도록 장려하는 지역 주민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참석한 이들도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관계의 따뜻함을 경험하고 있다.

<그림4> 호주 캐서롤 클럽의 음식 나눔 실천 모습(출처: 캐서롤 클럽 블로그)
<그림4> 호주 캐서롤 클럽의 음식 나눔 실천 모습(출처: 캐서롤 클럽 블로그)

이러한 변화는 외로움의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맡겨두지 않는 세계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영국의 ‘캐서롤 클럽(Casserole Club)’은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과 스스로 요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이 많은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프로젝트를 2011부터 진행하였다. 가정에서 음식을 많이 했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공유하고 싶다면 온라인을 통해 요리를 등록하면 된다. 음식의 양이 많아야 하거나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기관, NGO와 긴밀히 협력해서 더 많은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걸쳐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앞에서 언급했던 온라인 토론에서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4.6%로 사회적인 기반이 부족하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또한 1인 가구와 함께하는 주민 프로그램 참여 의사를 묻는 설문에서도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이들이 82.6%나 되었다.따라서 관계지향 식문화는 개인과 사회가 외로움을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을 얻을 것이다. 앞으로 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지역의 인기 순위는 외로움까지 달래줄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공유족’의 라이프스타일과 결합하다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얼리어답터 단계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는 트렌드의 하나가 공유경제다. 에어비앤비나 우버택시 등으로 상징되는 공유경제는 글로벌한 변화의 방향이다. 공유라고 해서 비화폐 경제만이 아닌 화폐경제 안으로도 계속해서 진입하고 있다. 이 흐름이 식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유를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식문화 개선에도 나서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먹을 양보다 많은 음식을 한 경우나 대용량으로 생필품을 구매한 경우, SNS를 통해 연결된 사람과 제품을 나눠 쓰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재빠르게 이런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래서 관계지향 식문화의 세 번째 키워드는 공유 식문화다.여러 분야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사용자들은 요리게시판을 통해 음식도 나누고 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댓글이나 메일을 통해 지원자를 받아 선착순 또는 게시자가 직접 선별하는 방식인데 혼자 사는 자취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1인 가구 사이에서 치킨이나 족발 등 야식 메뉴를 나눠 먹는 ‘하프쉐어족’도 늘었다. 이러한 1인 가구의 욕구를 반영하여 최근 브릿지포비즈에서 공유 O2O서비스 ‘반반’을 출시했다. 이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여 20~30대의 독신 여성들은 가까운 지역을 기반으로 연결된 타인과 야식을 나눠먹을 수 있다. 현재는 야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지만 향후 생필품, 식재료와 식사까지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혼밥족을 연결해주는 소통 애플리케이션으로서 혼자 먹은 경험을 공유하는 SNS 플랫폼도 등장했다. ‘나혼자 먹는다’라는 이름의 이 플랫폼은 사용자의 위치, 메뉴, 사진 등을 공유하도록 돕는다. 활성화된 플랫폼은 아니지만 징후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들의 맥락을 이해한다면 비즈니스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일상적이고 익숙했던 ‘가족’의 해체는 정서, 심리적 해체와 연계된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상실감은 생각보다 크다. 여기에 경제적 곤란을 겪는 비율 역시 1인 가구가 더 크다는 현실이 작동하고 있다. 새로운 따뜻함이 식문화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따뜻함은 비즈니스 코드로 가져오기가 쉽지 않고, 아직 따뜻한 식문화와 비즈니스가 제대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지만 1인 가구의 증가, 혼밥 문화의 일상화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잠재적 성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단, 앞에서 살펴보았듯 단지 특정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콘텐츠나 흥미로운 스토리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고 정신적 활력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나래. 핫트렌드 2016 식문화 분과 연구위원성균관대 문화융합대학원 엔터테인먼트 경영 전공.새로운 식문화란 어떻게 생기는 걸까요? 나름대로 매주 새로운 음식을 찾아보고 맛을 평가하는 일을 취미로 가진 1인입니다. 그때마다 먹는다는 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이 되는 변화를 실감하지요. 앞으로도 트렌드적 관찰을 통해 식문화 변화의 맥락을 분석, 예측하고 싶습니다.<제공=한국트렌드연구소=http://www.whatsnewtrend.com>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