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사과의 비밀』 1, 2권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리그 1위!
베스트리그 최단기 상위권 진입!
이야기동네, 각권 278페이지, 1만6500원, 아르망 지음

합정동 절두산 기슭에 뱀파이어들이 집단 서식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전해져왔다.

합정동과 망원동, 서교동 일대에 자주 출몰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의 존재. 

그들이 마침내 움직인다.

곳곳에 비밀이 서린 합정동과 망원동 골목길

소설은 코로나 시대의 우울함과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줄 흥미진진한 뱀파이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대사회의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신앙과 세속의 관계, 이종 생명체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 18세기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시작하여 합정동, 뱀파이어 증후군인 포르피린증 치료제에서 우생학적인 유전자 선별을 위한 인공 자궁 공장까지, 소설은 인간계와 뱀파이어계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21세기 서울 합정동에 뱀파이어가 산다!
인간보다 인간을 더 사랑한 뱀파이어 파스칼.

250년 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흉년과 역병의 유행 탓에 굶주림에 지치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인육까지 먹는 타락한 세상에서 파스칼은 의술로 병든 사람을 구하려 의사 수업을 받지만 무력감과 허무함을 느끼고 악마의 유혹에 빠진다. 파우스트가 의뭉스러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젊음과 능력을 부여받는 대신에 착한 영혼을 포기했지만, 파스칼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불쌍한 인간들의 피를 빠는 대신에 그들에게 영원불멸의 생명을 주었다. 어느 날 파스칼은 호숫가에서 얼굴을 씻다가 햇빛에 반사된 입가의 피들과 뾰족한 송곳니를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흡혈귀가 되어버린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날 이후 인간으로서 절대 저질러선 안될 악행을 범했다는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며, 하루를 살더라도 대낮의 따스함과 야밤의 고요함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진실한 삶을 살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성당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운 주느비에브 수녀의 뒤를 따라 난생처음 미사의 현장을 접한다. 그 후 꿈틀대는 내면의 격정 속에 며칠 동안 성당에 몰래 들어가서 무릎을 ‘다시 인간으로 살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다. 마침내 신의 부름을 받아, 그는 조선 땅으로 선교를 떠나는 토마스 신부와 주느비에브 수녀의 수호천사가 된다. 신은 “나의 뜻이 담긴 과일이니, 그 씨앗을 동방에 가져가 심어라. 그리하여 인간계에 만연한 불신과 배신의 마음을 털어버리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라”라고 말했고, 파스칼은 신의 뜻대로 조선 땅에 푸른 사과의 의미를 전파했다. 저주받은 아담과 이브의 빨간 사과가 인류를 전쟁과 혼란으로 내몰았고, 인류를 한데 묶으려던 스티브 잡스의 은빛 사과가 고독과 외로움 속에 잿빛으로 변질했다면, 파릇한 푸른 사과는 인류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신의 과일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 파스칼은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를 비행하며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을 구하는데 '발랄한 4차원 소녀'가 등장했다.

파스칼은 양화대교에서 남자친구의 커밍아웃에 홧김에 몸을 던진 '강민주'를 구해냈지만, 그녀의 목덜미에 조그만 상처를 내고 만다. 그 후 파스칼은 신비한 힘으로 민주를 뱀파이어의 세계에 초대한다. 민주는 파스칼에서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드는 뱀(Vam)균을 건네받았다고 믿으며, 이제나저제나 송곳니가 나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송곳니는 돌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주는 스스로를 뱀파이어라고 믿으며 뱀파이어계와 인간계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신이 부여하고, 파스칼과 그의 동료 뱀파이어들이 꿈꿔온 푸른 사과의 대의가 민주를 통해 하나둘 실현된다. 뭐 하나 잘하는 것 없어, 학교에서 집에서나 존재감 없이 취급받아온 민주는 더 이상 인간계의 ‘아무것도 아니다’가 아니다. 푸른 사과의 비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특별한 경험 속에서 소녀는 인간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고독함과 외로움에 삶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젊은이들을 구해내고, 인간 자궁 공장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돈에 미친 병원들의 우생학적인 음모를 분쇄하고, 초고층 빌딩 건축으로 졸지에 위기에 처한 나지막한 골목길의 길냥이와 강아지들, 비둘기, 그리고 낮은 돌담의 꽃과 나무들을 아끼고, 성소수자뿐 아니라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만일 민주가 뱀파이어로 변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뱀파이어들과 더불어 영겁의 세월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뱀파이어계는 기이하게도 더 이상 인간을 물지 않으며,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뱀파이어들은 수년 전에 망원정에 모여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더 이상 인간들을 물지 않기로 다 함께 뜻을 모았었다. 그런데 파스칼의 뱀균이 민주에게 퍼진다면 그 결과는 어찌될 것인가?

민주는 뱀파이어들이 선언한 ‘망원동 5대 강령’을 반복해 외우면서 뱀파이어계에 한 발 더 깊이 내딛으며, 인간과 뱀파이어 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징검다리가 되어간다.

<망원동 5대 강령>

첫째, 인간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친구이며, 우리는 절대로 인간의 피를 탐하지 않는다.

둘째, 동물은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친구이며, 우리는 절대로 동물의 피를 탐하지 않는다.

셋째, 우리는 불에 익히지 않거나 가공되지 않은 육류와 생선류는 먹지 않는다.

넷째, 우리는 몸에 부족한 비타민, 단백질, 지방, 철분, 인, 마그네슘 등 영양소를 인간이나 동물의 피가 아닌, 영양제에서 섭취하도록 한다.

다섯째, 우리는 궁극적으로 비건주의를 지향하며, 이를 위해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청결을 위해 비린내를 없애는 레몬 향을 상시 구비한다.

출간전에 프리뷰를 한 번역가 이푸로라씨는 “표면적으로는 미디어에서 흔히 접하다 보니 친숙할 정도인 뱀파이어를 모티프로 삼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줄거리가 흘러가서 좋았다.”고 말한다. 식상한 줄거리에 익숙한 독자로서는 그 자체가 반전인 셈이다. 한국 사회를 투영하는 내용이 깔려있고, 타락과 구원을 떠올리게 하는 전개는 너무 심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다. 작가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것들과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고 믿는 것들이 한데 섞인 채로 사는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해 봤을, 하지만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을 뒤범벅함으로써 책을 읽는 내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그는 “처음에는 정독으로, 두 번째는 (본의 아니게) 속독으로 읽어내려가면서 '있을 법하지 않지만,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한 타인의 삶'을 두 번이나 살아 볼 수 있어서 모처럼 즐거웠다. 귀한 첫 작품을 미리 접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많이 많이, 널리 널리 읽히면 좋겠다”고 말한다..

책 말미의 작가 아르망의 말이 인상적이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빨간 벽돌의 낮은 담장에 살짝 기대어 낮잠을 자고, 담장 너머로 떨어진 대추와 감을 쪼아 먹던 비둘기는 아장아장 행인들의 발자국을 따라다니고, 잿빛 하늘을 뒤덮은 고층 아파트에 현기증을 느낀 젊은이들은 나지막한 골목길에서 숨을 고르고, 그리고 그날 나는, 그의 꿈을 꾸었다. 파스칼. 그는 나를 망원동과 합정동을 지나 절두산 기슭에 있는 뱀파이어 아지트로 데리고 갔다. (...) 니콜라, 셀린, 루즈, 쇼브, 뤼넷트, 카레, 블랑… 파스칼과 그의 친구들은 깊은 포옹으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동이 트고 날이 밝아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파스칼은 펜을 쥐듯 내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네가 보고 네가 느낀 대로 그대로 쓰면 돼.’“

그날 이후, 아르망은 민주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글이 막히면 절두산 주변을 산책하고 합정동과 망원동 사이를 오가며, 서교동, 연남동, 연희동, 경의선 숲길, 상수동의 꼬불꼬불 골목길을 거닐면서 그들이 이끄는 대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글을 쓰는 것은 그이면서도 그가 아니기도 했다. 어떨 때는 민주와 파스칼이기도 했고, 어떨 때는 니콜라, 셀린, 루즈, 쇼브이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을때쯤에 파스칼이 화자인 민주에게 한 말들이 계속 맴돈다.

"우리는 너의 능력을 빌려서 인류의 미래를 구하고 싶어. 아담이 금단의 빨간 사과를 먹고 인류의 시초가 되었고, 스티브 잡스가 그 후 흐트러진 인류를 한데 묶으려 설익은 사과를 베어 물었지만, 정작 인간 계는 혼돈과 방황을 거듭하고 있어. 우리는 너와 더불어 사랑의 과즙이 풍부한 푸른 사과를 심어 인간계에 결핍된 공감력을 다시 재생시킬 거야."

“하지만 넌 달랐어. 친구들의 아픔과 슬픔과 분노에 늘 함께 감응하고 더불어 행동하려 노력했어. 가끔 그게 지나치다 보니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혔고, 더러 엄마를 실망하게 했지만 말이야. 너의 공감 능력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온 인간 중에 역대 최고급이야. 공감 능력은 고차원적인 고등수학 문제가 아니고, 영어 단어 같은 꼬부랑 언어도 아냐. 더욱이 네 말대로 사람을 속이는 마약 같은 과학도 아니며, 도둑놈들이 위선을 떠는 도덕 실력도 아냐. 시간의 블랙홀을 통해 우리는 너의 지난 10년을 들여다봤어. 훔쳐봐서 미안해. 중학 2학년이던 네가 도덕 교과서에서 도덕을 지우고 그 자리에 굵은 펜으로 도둑이라고 쓴 걸 보고서 깜짝 놀랐어. 참, 그때 왜 그랬니?”

“우리가 자꾸 인간들을 뱀파이어로 만들면, 머지않아 모든 인간이 뱀파이어가 될 거야. 더 이상 인간의 피를 마시지 못한 우리 뱀파이어들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우리 동족끼리 혈투를 벌이든지, 또는 피에 굶주린 나머지 생쥐나 박쥐,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의 멸종 탓에 졸지에 버려진 반려견과 반려묘를 잡으러 다녀야 할 비극적 상황을 맞게 될 거야.”

“우리가 인간과 더불어 피와 DNA를 서로 나눈 것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이뤄진 인류애적인 교감이었어. 민주가 즐겨 본 소설과 영화에서는 뱀파이어는 가해자고 인간은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야. 뱀파이어나 인간 모두 리비도적인 쾌감을 얻은 거지. 인간은 늘 갈망해 온 영원불변의 꿈을 실현하여, 일종의 나르시시즘적 리비도를 충족할 수 있었지. 하지만, 우리의 리비도적인 욕망만을 충족한다면 인간의 씨는 말라버릴 거야. 이제, 우리는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생을 도모해야 할 때가 되었어. 민주, 네가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할 거야.”

“우리 뱀파이어계에 들어오기 전, 인간계에서 수학자로 활동했던 마태(Mathé)가 작성한 뱀파이어 개체 수에 대한 예측보고서를 소개할까. 내년 1월 1일에 최초의 뱀파이어가 있다고 가정하면, 현재 인간들의 수가 68억 명이니 한 달에 한 번 사람의 피를 빨아 마신다더라도, 2월 1일에는 뱀파이어가 2명이고 인구수는 67억9999만9999명이 되지. 뱀파이어 수는 3월 1일 4명, 4월 1일 8명, 5월 1일에는 16명으로 늘어나게 되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32개월이 지나면, 뱀파이어 수가 42억9496만7296명으로 남아있는 사람 수를 넘게 되고, 33개월이 지나면 인간들은 자취를 감추게 될 거야.”

이효진 EBS <지식채널 e> 작가는 추천의 글을 통해 “비건을 지향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인간의 목숨을 구해주는 뱀파이어라니. 인간의 MBTI를 분석하며 인간의 아픔을 어루만져줄 ‘공감력 증강팀’까지 만드는 정성이란! 지금까지 이런 뱀파이어는 처음이었다. 잡스의 ‘메마른 사과’를 대체하는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사과를 꿈꾸는 이들. “내일 지구가 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뻔한 말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통찰은 합정동 뱀파이어를 향한 팬심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뱀파이어 소설 장르의 계보가 있다면, 새로운 획을 그을만한 놀랍고 흥미로운 소설이다”고 말한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도 “책은 분명 4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소설이 끝나질 않는다. 이상하고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아니 읽을수록 점점 더 이야기가 풍부해지는 소설이다. 이토록 광대한 세계관을 품은 소설이 있었던가. 이토록 개성 강한 캐릭터를 내세운 소설이 있었던가. 우리가 알던 그 합정동이 아니며 우리가 알던 그 뱀파이어가 아니다. 선교사의 수호천사로 조선 땅을 밟은 뱀파이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합정동이라니! 인간의 피를 빨지 않고 영양제를 먹는 젠더리스의 존재로 섹스를 하지 않는 뱀파이어라니. 읽는 내내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이건 도대체 뭔가. 여긴 도대체 어딘가. 물론 내 질문의 종착지는 작가였다. 도대체 작가는 누구인가.”라고 궁금증을 남겼다.

작가 아르망은 책 말미의 소개란에 파리와 서울의 뒷골목에 대한 동네 이야기를 채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푸른 사과의 비밀>은 작가가 지난 수년간 합정동과 망원동 사이에 살면서 고불고불 골목길에서 마주치며 서로 안부를 건넨 뱀파이어, 상처 많은 젊은이, 고양이와 비둘기,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꿈과 현실의 교착점에서 시공을 함께하는 인간계 너머의 생명체에 대한 발칙한 상상을 자주 즐긴다는 작가, 망원동 그 어디에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글·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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