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에는 만남이 답이다.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오래된 산, 보고 싶은 언덕, 그리운 나무와 꽃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즐겁다. 마음이 무겁거나 위로받고 싶은 날에는 나무 가득한 숲길을 고독하게 산책하는 것도 괜찮다. 일상의 작은 숲도 좋지만, 친구를 만나는 마음으로 먼 곳에 있는 나무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권할 만하다. 월정사 전나무숲길,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학동리 메타세콰이어길도 좋고, 노거수 가득한 설악산 장수대도 가볼만한 곳이다. 세상의 온갖 시름과 원망들로부터 나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나무와의 만남이 좋다.평창 동계올림픽
당신은 어느 시절을 살고 있는가? 우리 함께 2018년에 존재하는데 당신은 혹시 2010년쯤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남다른 호기심의 얼리 어답터로 2020년쯤에 다가가 모험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며칠 전 만난 택시 기사가 무인택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는 모습은 오히려 고무적이었다. 무인매장, 무인호텔, 무인주차장, 로봇기자… 갑작스러운 세상의 변화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노동자보다는 고민하는 이가 많을수록 희망적이지 않겠는가?엘빈 토플러는 19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기록의 전당 알렉산드리아도서관에 갔다. 지중해를 등진 그 거대한 외벽에는 세상에 존재했던 다양한 글자들이 공존과 연대의 기억을 품고 불규칙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깥 길을 따라 걷다가 반가운 한글 월, 강, 름, 세를 발견했는데 끝에 걸린 더 큰 두 글자를 조합하니 `세월`이 되었다. 2300년 세월 동안 인류사의 수많은 기록과 망각과 재생이 반복되는 그곳에서 만난 그 특별한 이름은 우리들에게 아픈 기억의 선물이었다.그날은 타이타닉 참사 102주기의 다음 날이었다. 해양대를 갓 졸업한 입사 4개월차 혈
하나의 언어로 생활하는 것을 흑백의 시선이라 가정하면 두 가지 언어로 사는 것은 컬러가 되고, 세 개 이상의 언어로 살아가는 것은 3D컬러의 삶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언어 하나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관점에 새로운 가치관으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입체적 정체성을 경험한 사람의 당당한 주장에 일리가 있었다. 영어가 모어인 미국 시민 로버트 파우저는 고교시절 스페인어를 배웠고,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라틴어를 공부했으며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몽골어를 취미처럼 공부했다.
백록담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바다, 진달래 꽃밭을 지나 뚜벅뚜벅 오른 고산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불어오는 봄바람에 벅찬 감동이 꿈틀거렸다. 희망과 평화와 자부심을 만끽하는 순간, 심장으로부터 폭발하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장엄한 시의 리듬이 시작되었다. 강렬한 몇 번의 두드림은 능선을 타고 말 달리는 질주로 이어졌다. 거칠게 내달리던 절규는 해변의 파도 앞에서 차갑고 허무하게 부서진다. 역사를 자각하기 전까지 제주는 항상 기쁨과 위로의 땅이었다. 아름다운 한라산은 그저
영춘화를 개나리로 착각하면서 우리들의 봄은 시작되었다. 햇살 좋은 남산길 함께 걷던 책 꽤나 읽는 팔방미인 후배에게 요새 추천할만한 소설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란히 걷던 선배도 귀 기울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국내 소설은 좋아하지 않으며 오로지 시만 좋다고 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시와는 달리 우리 소설은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어 외국 소설만 읽게 되었다고 했다. 계절 마다 좋아하는 작품이 따로 있을 만큼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한 순간의 표절 시비와 부적절한 대응으로 평생의 업적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 북간도 옛터를 찾아간 것은 내 청춘의 기쁨이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개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참으로 좋아하는 것은 삶의 앎, 그 사람의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과 입으로 읽는 독서를 벗어나 마음과 발로 읽어 내는 실천적 독서를 계획하게 되었다. 필사는 기본이고, 명동소학교와 묘비와 자화상의 우물을 거듭 찾았다. 교토의 도시샤대학 나무그늘 아래 아담한 시비 앞에서 묵상하고 헌화하며 자화상과 서시를 낭송했다. 압천을 바라보
사무실 한 켠에 우주에서 바라 본 아름답고 경이로운 지구 사진이 있다. 외계의 시선으로 내 고향 창백한 푸른 점을 종종 바라볼 수 있는 평화는 혼자서 누리기엔 아까운 축복이다. 작은 일에 분개하고, 사소한 슬픔에 좌절하며 비참한 현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나약한 지구인. 그들에게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는 여유를 전파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벽에서 무너져 가는 친구를 만났을 때 반드시 권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36년 전에 출간되었으나 여전히 미래지향적인 칼 세이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