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렇게 앉았다. 파티 같던 흥겹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사라진 자정 무렵. 달빛 별빛 마저 차분해 바다는 온통 어둡다. 저 멀리 수평선은 검은 펜으로 그어놓은 듯 일직선으로 진하다. 바다에도 경계가 있을까? 순간 묻다 그만 두었다. 이럴려고 쌀쌀한 제주의 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파도 소리로 마음이 옮겨갔다. 두 눈이 저절로 감긴다. 졸음이 아니다. 그냥 듣고 싶었다. 바다가 전해주는 소리를.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도만 보내 나를 깎고 또 깎았다. 무시무시한 중력을 느끼고 두려웠고, 그래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버렸다. 나는 공간에 갇혔다. 그렇게 결론 내렸다. 도망칠 수 있을까? 아님 깨부술 수 있을까?

바닷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던 어시장. 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비릿하고 짭쪼름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먼저 코끝에 닿는다. 마치 난타 무대처럼 인정사정 없는 칼질로 생선 대가리가 도마에서 튕겨져 나오는 순간들이 보인다. 끔찍하다 눈을 감으려는 찰나, 흙탕물이 바지에 튄다. 아니 흙탕물이 뭐길래 내 마음을 콕콕 쑤셔대나? 생선의 생사 따위는 잊어버리고, 마음이 더러워진 바지에 머문다. 아뿔싸, 보이는 광경에 취했다.

감정적으로 큰 출렁임이 있을 때, 내 심상은 바다와 어시장으로 채워진다. 잔인한 장면, 자극적인 냄새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듯 그곳이 그립다. 아이도 노인도, 즐거움도 슬픔도, 삶도 죽음도, 경계없이 그곳에 한데 모여 있다. 한바탕 그렇게 추억이 재창조한 꿈을 꾸고 나면, 감정의 출렁임은 사라지고, 마침내 텅 빈 고요가 찾아온다.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다. 빌 공(空)에 사이 간(間)이 합쳐진 단어. 빈 곳인데도 사이가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마음을 풀고자 혹은 마음을 모으고자 '공간’을 찾는다. 형태를 갖춘 집과 카페, 거리, 여행지 등 3차원 공간은 시각적으로 대표적인 곳이다. 마음이 머무는 공간은 전체일 수 있고, 부분일 수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 창에 걸려 있는 '드림캐처’나 처마 끝 '물고기 풍경', 혹은 그저 취향에 맞는 소품이 있는 한 귀퉁이 역시 마음이 머무는 자리가 된다. 1차원인 점 하나 선 하나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 텅 빈 그 자리가 될 수 있다.

공간의 어느 틈이든 마음을 두고 생각이 멈추는 지점을 찾게 되면 '공간’은 드디어 사전적인 '빈 곳’이 된다. 1, 2초라도 상관없이 생각이 끼어들지 않는 틈, 그 공간들이 모이고 모이면 우리 안에 집중하는 텅 빈 자리, 그것을 유지하는 힘이 생긴다. 물리적 공간이 주는 소음과 복잡함도 이 틈이 유지되는 시간만큼 사라진다. 대신 사적인 내 안의 공간이 늘어난다. 생각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하다. 내 안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인 거리는 얼마나 될까?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4가지로 구분했다. 낯선 이와 대화하기 위한 편안한 사회적인 거리는 120에서 360cm는 돼야 한다. 여기에 친밀(45cm 이내)하거나 사적인(45~120cm), 공적인(360cm 이상) 거리는 있지만, 우리의 내적인 거리는 없다. 내 속에 분명 있는데, 친밀 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늠할 수 없어 불편한 진짜 내 공간. 한 길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의미도 분명하지 않는 미지의 공간. 틈이라도 벌려야 들여다볼 수 있을텐데….

내 안의 작은 틈 하나 벌리는 것을 우주 탐험에 빗대면 과할까? 공간은 영어로는 space로 바꿀 수 있고, space는 또 우주로 해석될 수 있다. 말장난 같지만 내가 벌린 틈이 우주의 시작이라고 해도 될 듯 싶다. 여기나 거기나 미지의 세계이므로. 생각의 멈춤, 찰나의 멈춤이 이 닫힌 공간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니 굳이 좋은 곳을 찾아, 귀한 것을 찾아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지 피라미드를 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막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본 적이 없네. 피라미드는 그저 수많은 돌들을 쌓아놓은 돌무더기일 뿐이야. 자네도 자네 정원에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다네."

우주만큼 텅 빈 내 공간에 지은 나만의 피라미드, 그 소중한 보물은 빈 틈, 공간에서 시작한다.

장윤정 eyjangnz@gmail.com 컴퓨터 전문지, 인터넷 신문, 인터넷 방송 분야에서 기자로, 기획자로 10여년 간 일했다. 출판 기획 및 교정을 틈틈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본 애보리진과 마오리족의 예술, 건강한 사회와 행복한 개인을 위한 명상과 실수행에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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