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화성의 스타트업 교과서] 창업의 산, 첫 위기를 넘다

발행일시 : 2016-11-28 00:10
[전화성의 스타트업 교과서] 창업의 산, 첫 위기를 넘다

사람들은 성공한 CEO들의 화려한 성공과 스토리에 주목하지만, 사실 그것을 이루고 있는 일은 생각만큼 화려하지 않다. 하나의 기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꾸준한 노력 정도? 페이스북 CEO인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는 ‘우리는 그저 6년 동안 열심히 코딩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스타그램의 CEO인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은 ‘회사는 제품 개발 50%와 각종 서류 관리와 같은 수많은 잡무 50%를 통해 세워진다.’고 했다. 이 말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결국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공이라는 화려한 껍데기를 보고 환상을 품고서 창업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필자에게도 골리앗을 이긴 다윗, 성공한 청년 사업가라는 쑥스러운 수식어가 따라붙곤 하지만, 생각해보면 창업 후 매일같이 했던 것은 직원들과 같이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는 일이었다. 목이 터져라, 귀가 뜨거워질 만큼 하루 종일 피자 주문을 받다 보면, 내가 CEO인지 피자 가게 아르바이트생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치킨 시장을 개척할 땐 치킨 가맹점들을 찾아다니며 생닭을 손질하기도 했고, 배달이 늦어 화가 난 고객에게 쌍욕을 듣고서 차 안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꿈꿔왔던 화려한 성공과는 달리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 재정 악화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이번 칼럼에서 필자가 지난 15년간 겪어왔던 일들을 풀어놓는 이유는 ‘이만큼 고생했다.’고 자화자찬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창업의 평범함과 고난함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또한 이 에피소드를 통해 각자의 기업을 경영할 때 참고할 만한 어떤 메시지를 얻어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 같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위기를 겪겠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 하듯이 기업을 경영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첫 번째 위기와 극복
2003년, 씨엔티테크를 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던 나는 군대 입대 문제로 잠시 사업을 어머니께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비록 대표이사 자리가 비워져 있어도 회사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매뉴얼로 만들어 어머니께 인수인계 했다.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내가 적어놓은 것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군 생활은 힘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그 속에서 느꼈던 의리와 정의 문화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씨엔티테크를 세우기 전에 카이스트 대학원을 다니며 학내 벤처로 SL2라는 음성인식 솔루션 업체를 만든 적이 있었다. 2년 만에 매출 50억 원을 달성하는 등 달콤한 성공을 맛보았지만, 투자자들과 믿었던 회사 동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며 경영권을 잃었다.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을 경계하고 좀처럼 믿지 못하던 나였지만, 군대는 달랐다. 그곳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진한 동기애와 의리, 정과 따뜻함이 있었다. 과거에 받은 상처들이 군 생활을 통해 모두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완전히 군 생활에 몰입했고, 회사 문제는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휴가를 얻어 회사로 향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회사 분위기는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충격적인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리부장의 말에 의하면, 회사가 거의 파산 직전이라고 했다. 두 귀로 똑똑히 듣고도 믿기 어려웠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하나도 빠짐없이,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경리부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잔고 400만 원이 찍힌 통장을 조용히 내밀었다.
“네가 입대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회사는 매달 5,000만 원씩 적자를 보기 시작했어. 무엇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어머니는 그 적지를 메우려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그래서 현재 안고 있는 빚이 무려 8억이야.”

필자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충격적이긴 했지만, 화가 나기보다 죄송한 마음이 더 컸다. 어머니는 군 생활을 하는 내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혼자 수습해보려 했을 것이다. 이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버틴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지릿해졌다. 나 편하자고 어머니께 무거운 짐을 지우고, 도망치듯 군대로 온 것은 아닌지 죄책감도 들었다.

[전화성의 스타트업 교과서] 창업의 산, 첫 위기를 넘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만 지금 담보가 안 잡혀있어. 오갈 데 없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폐업 신고하는 게 좋을 거야. 빚으로 돌려막기 하듯 운영하는 것도 이제 한계야.”

경리부장은 하루 빨리 폐업하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이대로 회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회사가 어려운데도 끝까지 버텨준 직원들을 배신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장 수습을 하고 싶어도 군대에 매인 몸이었기 때문에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머니께 제대할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유일하게 남은 집을 담보로 잡아 1억 원을 더 대출받았고, 직원들의 월급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만약 제대하고 나서도 회사를 일으키지 못한다면 앞으로 엄청난 빚에 허덕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리부장의 말대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회사도, 직원들도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제대하기만 하면 정말 모든 것을 원상복구 해놓으리라 다짐했다.

군대에 돌아와서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하루하루가 불안했고, 불편했다. 회사 걱정에, 어머니 걱정에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대체 회사가 파국에 치달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매뉴얼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하루 종일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하루가 정말 일 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대 날이 왔다. 제대를 축하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곧장 회사로 달려갔다. 그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각종 결재 서류들을 뒤져가며, 회사가 위기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어야 문제를 더 빨리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약 세 달 동안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회사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직원들과 함께 주문 전화도 받았다.

사실 처음엔 문제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내가 처음 맞닥뜨린 문제는 ‘8억 원의 빚’과 ‘적자 상태의 운영’이었지만, 이렇게 문제를 정의해서는 해결 방법이 서지 않았다. 문제가 너무 포괄적이고 막연했던 탓이다. 잘 정의된 문제는 해결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하고 명확해야 했다. 나는 문제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쪼개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적자가 된 원인 무엇인가? 고객사의 감소 때문인가? 가격 책정을 잘못했기 때문인가? 인건비의 과다지출 때문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쪼개서 심층적으로 분석하다 보니, 점차 문제의 본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회사에는 총 세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전화를 효율적으로 받을 수 없는 시스템에 있었다. 전화는 주문 전화와 주문 외 전화가 있는데, 주문 외 전화는 배달이 늦다, 피클이 없다 등과 같은 고객 불만 전화를 의미했다. 즉, 돈 되는 전화는 아닌 셈인데, 놀라운 것은 이 전화량이 무려 전체 전화의 40%를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콜센터를 설계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게다가 고객 불만 전화는 주문 전화보다 고객을 상대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진상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날에는 30분 이상 ‘죄송합니다.’만 반복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어떤 직원은 울면서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고, 그들의 마음이 진정되어 돌아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분명한 문제였다. 어떤 전화가 주문 전화인지, 또 어떤 전화가 고객 불만 전화인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응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문제는 과다한 인건비에 있었다. 외식업체 특성 상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을 제외하면 주문이 한산한 편인데,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나 그렇지 않은 시간대나 동일한 인원이 앉아 있으니 인건비가 과다하게 지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주문이 갑자기 몰릴 때를 대비해 최대 인원을 앉혀놓고 있었는데, 이러한 주먹구구식의 운영이 회사 재정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대별로 전화량을 예측해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문제는 시간 당 받는 주문 전화 건수가 너무 적다는 것에 있었다. 적어도 시간 당 15통은 받아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데, 직원 한 사람당 평균 8통을 받고 있으니 적자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근무할수록 시급을 올려주는 인사제도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 장기 근속자는 1시간에 평균 3-4통의 전화를 받을 정도로 나태해져 있었다. 설렁설렁 일하나, 열심히 일하나 시급은 같으니 열심히 일할 의욕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는 정말이지 온갖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종합 병원’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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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가지 문제를 노트에 적은 뒤, 다시 한 번 그것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문제가 명확해지니 해결 방향도 어렴풋하게나마 세울 수 있었다. 머릿속에 끼어있던 뿌연 안개가 점점 걷히는 느낌이었다. 문제도 알았고 방향성도 잡혔으니 이제부터 할 일은 거기에 맞는 적합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주문 전화와 주문 외 전화를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보통 2번 이상 걸려오는 전화는 불만 전화일 확률이 높았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온다면 주문•배송에 대한 문의일 확률이 높았다. 주문한 지 40분 이상 지났는데 전화를 걸어온다면 십중팔구 배달 지연 항의 전화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경우를 확률적으로 분석해서 주문 외 전화를 분리해내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휴리스틱 알고리즘(Heuristic Algorithm)을 활용한 콜 라우팅(Call Routing) 기술이라 부른다. 이 기술을 토대로 조직에도 변화를 주었다. 파트타이머들에게는 주문 전화만 집중적으로 받도록 하고, 주문 외 전화는 CS 전담부서를 따로 만들어 정직원들에게 받도록 했다. 그리고 CS부서는 정직원들이 승진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부서로 만들어 업무 성과를 평가했다. 아무래도 고객 불만 처리는 까다롭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보니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취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직원들은 불만 고객들을 더 잘 응대하기 위해 각종 매뉴얼을 개발하고, 개인별로 응대 스킬을 키우는 등 엄청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효율적이었던 전화 관리 시스템은 점차 효율적으로 바뀌어갔다.

다음으로는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화량을 예측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 쌓아온 데이터들을 모아서 분석하던 중 재미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 오는 날, 축구 경기와 같은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날, 졸업식 등 행사가 있는 날은 상대적으로 주문 전화가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발견한 일정한 규칙들을 토대로 그날그날의 전화량을 예측하는데 성공했다. 강우량, 습도, 온도, 스포츠 이벤트 유무, 졸업식 유무, 전주/전월/전년 전화 건수 등을 변수로 정해놓고 확률 모델을 만든 것이다.(앞서 설명한 WEKA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그렇게 전화량을 예측한 다음엔 주문 전화를 받는 파트타임 상담사들로부터 각자 근무 가능한 요일과 시간대를 적어 제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주문 수요(전화량)와 상담사들의 근무 가능한 일정을 매치시켜 자동으로 근무 시간표를 생성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즉, 주문량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대에는 더 많은 상담사들이 근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시간대에는 최소한의 상담사만 남아있도록 시스템을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전화량에 따라 상담사들을 탄력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마침내 과도하게 지출되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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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간 당 받는 주문 전화 건수를 늘리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첫 번째 문제 해결을 통해 파트타임 상담사들이 주문 전화만 받게 됐으니, 그들로 하여금 시간 당 15통 이상의 전화를 소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평균 8통을 소화하던 사람들에게 무슨 수로 15통 이상의 전화를 받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나 같아도 돈은 똑같은데 2배 가까이 업무량이 늘어나면 반감만 생길 것 같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옳거니! 전화를 많이 받을수록 돈을 더 주는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면 되잖아?’ 주문 전화 한통 당 300원을 매기면 계산이 얼추 맞아 떨어졌다. 시간 당 15통을 받으면 4,500원을 가져가게 되는데, 기존 시급이었던 4,000원 만큼 받으려면 직원들은 어떻게든 14~15통의 전화를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현장을 전혀 모르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결정은 아니었다. 세 달 동안 꼼짝 않고 회사에 머물면서 받은 주문 전화가 무려 3만 통에 달했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시간 당 2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만약 25통의 전화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시간 당 7,500원을 가져가는 셈이었다. 결국 열심히 해서 성과를 올리면 올릴수록 회사에도, 직원들에게도 이득이었다. 성과급 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였다.

나는 곧장 상담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환호의 소리가 나올 줄 알았던 사무실엔 고요한 정적만 흘렀다. 상담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들의 생각은 ‘전화를 많이 받을수록 돈이 올라간다.’에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고, ‘기존과 똑같이 8통을 받으면 2400원을 받는다.’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결국 ‘시급’이 아닌 ‘300원×전화 건수’를 주겠다는 제안은 ‘사장이 돈을 아끼려고 저런다.’는 식으로 소문이 돌았다. 설상가상 사람이 곧 재산인 콜센터에서 상담사의 30%가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그만큼 정당하게 보상을 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직원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고, 경영을 정상화시켜야 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시간 당 몇 통의 전화를 받는지 계산해서 시급과 성과급, 둘 중에 높은 금액을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시급을 받을 건지, 성과급을 받을 건지 여러분이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단, 오늘은 저도 같이 전화를 받을 텐데, 저보다 더 많은 전화를 받는 분껜 시간 당 만 원씩 보너스로 얹어 드리죠. 어때요? 내기 한 번 해볼까요?”

솔깃한 제안에 직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도발로 경기(?)가 시작됐다. 서로의 주문 건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콜센터 내부에 전광판도 설치했다. 숫자가 엎치락뒤치락 하며 올라가기 시작하자 회사 분위기는 순식간에 경마장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모두 각자의 전화 건수를 올리기 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1시간이 지난 후의 결과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나는 총 29통의 전화를 받았고, 뒤이어 27통, 20통의 전화를 받은 상담사들이 나타났다. 중간에 화장실에 갔다 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20통 이상을 받았다. 시간 당 평균 7,000원 이상을 번 셈이었다. 생산성 또한 순식간에 3배 이상 뛰어올랐다. 한 시간 두 시간 지나고, 어느 정도 숙달이 되고 나서부터는 전화를 받는 건수가 더 많아졌다. 심지어 30통 이상을 받으며 시급을 만 원 가까이 가져가는 상담사들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성과급의 강력함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만둔 상담사들 때문에 전주 대비 40% 정도 인원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전화 응대율이 80%였다면, 이날의 응대율은 무려 99.8%에 달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에서 벗어나 돈을 번 날이기도 했다. 어느새, 내 볼엔 눈물이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첫 번째 위기 속에서 정의한 세 가지 문제점을 기반으로 만든 세 가지 해결책은 회사를 기사회생 시켰다. 회사의 분위기도 180도로 바뀌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직원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이후 회사는 계속적으로 성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8억 원의 빚도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전화성 glory@cntt.co.kr 씨엔티테크의 창업자, CEO이자 현재 KBS 도전 K 스타트업 2016의 심사위원 멘토이며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KAIST 학내벤처 1호로 2000년 창업하였고, 전산학의 인공지능을 전공하였다. 14년간 이끌어온 씨엔티테크는 푸드테크 플랫폼 독보적 1위로 연 1조 규모의 외식주문 중개 거래량에 9년 연속 흑자행진중이다. 경제학을 독학하여 매일경제 TV에서 앵커로도 활동했고, 5개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푸드테크, 인공지능, 컨텐츠 생산, 코딩교육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한 엑셀러레이팅을 주도하고 있으며, 청년기업가상 국무총리상, ICT 혁신 대통령 상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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