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핫트렌드 2016 (14)메이커 운동, 호모 파베르의 귀환과 가치 기반 소비

발행일시 : 2015-12-09 14:56

어린 시절 누구나 ‘만들기’의 경험을 한 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술 시간에서 과학 시간까지, 지점토 공예부터 과학 상자까지 우리는 단순한 형태이지만 예술품부터 기계까지 만들어본 경험을 한 번씩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조 공장이 점차 교외로, 끝내 교외를 넘어 해외로 이전하는 등 주변에서 완성품을 구하기는 더 쉬워졌지만, 만들기의 공정과 과정을 보는 일은 훨씬 드물어졌다. 만들기가 대형화되고 전문화되면서 개인 단위의 일상과는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에 사람들은 만들기라는 인간의 필연적 욕구로부터 격리당해 왔다.

이러한 시대에 만들기를 복원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뭔가를 만드는 인간이 바로 메이커(maker)라고 할 수 있다. 드론을 만드는 사람, 액세서리를 만드는 사람, 심지어는 크로켓을 만드는 사람도 모두 메이커다. 요컨대 어떤 물품의 생산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사람들을 메이커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메이커 운동’은 보통 사람들인 메이커들이 민주화된 생산수단을 이용하여 생산자의 역할을 하고, 새로운 방식의 공급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중심이 된 제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의미를 이 운동에 부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이커 운동의 흐름이 어떻게 뻗어나갈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일 것이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메이커 운동은 성장해감에 따라 점차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특히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시장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다소 독특한 방식의 제조·판매·소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메이커들은 단순히 제품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제작자, 소비와 소비자의 대안적 위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트렌드 요소 1. 메시지 중심적인 시장이 커질 것이다.

제작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제작, 창작을 통한 금전적 이익이라기보다 제작, 창작하는 행위 그 자체이거나 이를 통한 가치와 메시지의 생성이다.

이들은 제작을 통해 자신이 중요시하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권리를 지켜주는 노트북’이라는 Librem 13도 그런 제품 중 하나다. 칩 하나하나가 사용자의 사생활, 안전,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노트북은 기업의 마케팅을 위한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을 방지하며, 신분, 신용카드 정보, 은행 로그인 정보의 노출을 막아준다. 제품에는 운영체제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Pure OS가 사용되는 등 오픈소스가 적극 활용되었다. 제작자는 기존 운영체제는 사용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지 확실하지 않기에 Pure OS를 선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즉 안전한 컴퓨터라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제품인 것이다.

Figure 1 Librem 13의 모습 <출처> 퓨리즘Purism 공식 홈페이지(https://puri.sm/) <Figure 1 Librem 13의 모습 <출처> 퓨리즘Purism 공식 홈페이지(https://puri.sm/)>

이뿐만 아니라, 이에 대응하여 소비 과정에서도 제품이나 서비스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증가할 것이다. 물론 제품 자체의 성능을 고려하지만, 메시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제품을 선택하는 상황에서 기능과 가격뿐 아니라 제품에 내포된 창작자의 의도, 이념, 상념과 같은 가치적인 요소 역시 고려하는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다. Librem13 역시 한 대당 $1,624라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298,387를 모금해 119%로 펀딩에 성공했다.

가치 있는 스토리를 계속 보기 위해 취재비 항목으로 독자가 크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돈을 지불하는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소비하는 문화가 국내 사회에서도 확장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과거 윤리적 소비를 통해 소비자들이 간단한 소비라는 활동을 통해 윤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듯이, 앞으로는 메시지 소비를 통해 메시지를 지지하고, 짧은 시간 안에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증가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 기반 시장은 주로 크라우드 펀딩이나 소셜 펀딩 플랫폼에서 제품, 서비스, 콘텐츠에 대한 일종의 팬덤을 기반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트렌드 요소 2. 관계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시장이 커질 것이다.

이미 제작자 커뮤니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가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소프트웨어로 만들어가는 로봇기술 공유카페’를 줄인 ‘오로카’는 국내 최대 로보틱스 관련 커뮤니티로 3만 명에 가까운 회원을 자랑한다. 로봇 제작은 특히 ‘혼자 하기에 매우 벅찬 분야’이기에 ‘각자 자신 있는 분야의 지식을 공유하고, 다른 분야의 사람과 함께 협업하며 풀뿌리 오픈 로보틱스’를 실현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이들은 밝히고 있다. 최근에는 회원들이 협업하여 로버(ROVER)라는 무인 비행기 드론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아두이노 관련 강의와 교육 자료를 공유하는 ‘아두이노 스토리’, 라즈베리 파이 관련 정보를 번역하고 공유하며, 프로그램 개발을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커뮤니티인 ‘산딸기 마을’도 존재한다.

또한 누구나 제작에 필요한 3D 프린팅 도안을 공유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인스트럭터블(instructable), 씽기버스(thingiverse)와 같은 온라인 거점이 되는 플랫폼 역시 존재한다. 특히 씽기버스에는 130,000명이 넘는 가입자들이 엔지니어링, 쿼드콥터, 아두이노, 아즈베리파이, 스케치업 등 제작 관련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룹’이 존재하며, 이 그룹들에서는 각각 몇백 명부터 몇천 명까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에도 메이커스엔(makersN)이라는 플랫폼에서 다양한 3D 모델 도안을 올리고, 또 내려받을 수 있다.

제작자 커뮤니티는 온오프라인 거점을 통해 형성되어, 주제에 따라 더 다양화될 것이며, 제작자들이 직접 협업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러한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제품의 팬덤을 형성하여 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는 기본적으로 구매자와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기에, 이러한 팬덤을 유지하기에도 유리하다.

트렌드 요소 3. 제작과 산업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다.

원격 제어가 가능한 수중 탐사선(OpenROV)을 개발한 데이비드 랭(David Lang)은 원래 엔지니어링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그는 오래전부터 수중 동굴을 탐사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 로봇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openROV.c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심지어 해양 공학자들과도 협업할 수 있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 공개했고, 11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펀딩 받았다. 그는 메이커 협업 공간의 하나인 테크숍(Techshop)에서 그의 첫 제품을 제작했으며, 무엇보다 오픈소스로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제작에 참여하길 원하는 자발적인 제작자들로 이뤄진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Figure 2 OpenROV v2.8 Kit <출처> OpenROV 공식 판매 사이트(http://store.openrov.com/) <Figure 2 OpenROV v2.8 Kit <출처> OpenROV 공식 판매 사이트(http://store.openrov.com/)>

이 사례를 통해 오픈소스 문화, 메이커 스페이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등 다양한 요소들이 메이커 운동의 산업화를 용이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은 제품을 대중과 미디어에 노출해 메이커가 만든 제품이 개인적 사용에 그치지 않고 대중에 확산되고 흥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크라우드 펀딩은 향후 수요을 예상할 수 있게 해 산업화 성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애미널 몰릭(Aminul Mollick) 펜실베니아 대학 경영학 교수가 2014년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펀딩에 성공한 기업의 향후 생존율은 90%로, 30%에 그치는 일반 벤처 기업보다 생존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사업화 과정 자체를 도와주는 플랫폼도 존재한다. ‘모두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도록 돕는다’는 쉐이프웨이즈(Shapeways)라는 플랫폼은 제작자가 3D 디자인 파일만 업로드 하고, 자신의 페이팔 계정만 이에 연동하면 다른 모든 판매의 부수적 과정을 도맡는다. 플랫폼에서 3.5%의 수수료를 받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물품을 3D 프린팅하며, 이를 배송하고, 이에 대한 고객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쉐이프웨이즈는 또한 상점을 여는 튜토리얼과 참고할 수 있는 성공 사례까지 제공해 제작자를 가이드하고 있다.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메이커는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무려 두 배가 늘었으며, 플랫폼에는 매달 120,00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올라오며, 400,000명이 넘는 커뮤니티 멤버가 이용한다. 포노코(www.ponoko.com)라는 플랫폼도 개인 디자인을 제품으로 제작하는 것을 돕는데, 이 플랫폼은 디자이너들이 업로드된 개인 디자인에 대해 끝없는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처럼 제품을 산업화하기 유리한 지형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의 대두 덕분에 메이커의 제품이 산업화되는 일이 더욱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메이킹만을 단일한 ‘업’으로 삼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제레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가장 좋은 것을 결합한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작은 중소기업들이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수평적인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은 이러한 큰 공급망을 취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대부분의 생산을 중소기업에 위탁해, 분산형 자본주의가 실현될 것이다.” 오픈소스로 인해 지식이 유동화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이 유동화되고, 개인 생산 도구를 통해 생산이 유동화되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경제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트워크를 촉진하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 더욱 흥행할 것이며, 메이커 운동을 통해 소수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던 일방향적 생산 체계가 제작자들의 상호 네트워크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핫트렌드 2016 (14)메이커 운동, 호모 파베르의 귀환과 가치 기반 소비

윤해림

핫트렌드 2016 제작 문화 관련 연구위원

現 더 브릿지The Bridge International 연구원

메이커 운동은 물론이고 탈중심화와 이를 통한 개인 주체의 회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적 층위가 몸-노동의 층위와 조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제공=한국트렌드연구소=http://www.whatsnewtre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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