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동 ‘장 미쉘 바스키아’

1980년대 전 세계가 젊은 흑인 화가에 주목한다. 기존의 회화와 다른 이미지들의 구성과 조합은 천재의 탄생을 알렸고 그가 바로 오늘날 미국 미술의 신표현주의 및 신구 상회화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장 미쉘 바스키아’다.

이번 전시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바스키아를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면 ‘거리’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집에서 뛰쳐나와 방랑하며 거리나 지하철에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휘갈긴 그의 낙서는 예술이 되었다. 또 다른 낙서화가 알 디아즈와 만난 바스키아는 낙서 그룹 SAMO(Same Old Shit)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그래피티 아트를 시작한다. 스프레이로 그리는 낙서와 문자, 그림을 의미하는 그래피티 아트는 반항적인 10대와 흑인 등을 주류로 한 거리예술이었다. 바스키아는 뉴욕 소호 거리를 캔버스 삼아 세상에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그의 회화 스타일은 당시 예술계에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걸러지지 않은 날 것의 언어와 시각적 표현은 수많은 평론가와 비평가의 호평과 비난을 쏟아냈고 이 가운데 바스키아의 피부색은 작품과 상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피부색이 아닌 자신만을 봐주길 원했던 바스키아는 작품으로 이러한 욕망을 표출한다. 특히 ‘영웅’적인 흑인 아이콘은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바스키아가 평소에 존경했던 찰리 파커, 행크 아론 등 성공한 흑인 인물들이 그 예이다. 이 밖에도 만화, 해부학, 낙서, 인종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회화 언어로 작품 속에 나타낸다.

그리고 1982년 브루노 비쇼프 버거의 소개로 바스키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된다. 워홀은 바스키아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의 도움으로 바스키아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최측근에 의하면 바스키아는 자신의 회화 세계가 진전될수록 모험적인 20대 미술가와 진지한 20대 미술가 사이를 드나들기 힘들어했다고 전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승이자 친구, 어쩌면 그 이상의 관계였던 앤디 워홀이 1987년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고독감과 압박감, 흑인 예술가라는 인종 차별 등 살면서 이 모든 것을 극복해야 했던 바스키아는 더욱 약물에 의존하게 되고 1988년 헤로인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친다.

◇한국에서 바라본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이번 전시가 특별한 것은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를 150여 점의 대규모 작품들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2013년을 이래로 한국에서 전시된 적 없었던 만큼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다. 지난 10월 8일부터 시작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은 8년간의 강렬하고도 짧았던 바스키아의 삶을 조명한다.

전시는 군더더기 없이 바스키아의 작품과 캡션, 그를 알고 지냈던 유명인들의 말로 채워졌다. 각 구역마다 관람자가 이해하기 쉽게 쓰인 설명들은 작품의 이해를 도왔고 헷갈리지 않는 전시 동선은 감상하는 데 흐름을 잃지 않게 했다. 또한 중간의 다큐멘터리로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국내에서 최초 공개된 다큐멘터리로 러닝타임이 1시간 30분 정도라 관람 시간에 여유를 두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바스키아의 작품 속엔 여러 가지 사인(sign)이 나타난다. 1977년부터 79년 사이엔 SAMO라는 이름으로, 1980년부터는 ⓒ라는 저작권 표시와 왕관 기호가 사용된다. 이 왕관은 바스키아의 시그니처 기호로서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존경과 찬미 혹은 고유 날인을 상징한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들은 성공한 흑인들로 당시 차별받았던 흑인들에 주목해 왕관과 함께 나타낸다. 또한 죽음이란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바스키아는 해부학 지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반복적인 이니셜 사용과 제록스 기법은 그의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제록스 기법은 바스키아가 사용한 대표적 기법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이나 텍스트를 복사하고 이를 오려 붙이는 방법이다. 또한 토끼, 돼지, 펭귄, 의인화된 동물들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잔인한 인간성을 보여준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보통의 사람들은 창조하는 것에 대단함을 느낀다. 하지만 바스키아는 ‘지우는 것’에서 남들과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 유난히 지워지고 덧대진 작품들이 많은 이유다. 사람들을 주목시키고 집중시키기 위해 단어들에 선을 그어 글자를 읽고 싶게 만드는 의도는 바스키아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알 수 있다. 창조하는 것이 아닌 제거하는 것이 때로는 재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전시 공간에 입장하고 나가는 순간까지 짧았던 바스키아의 삶 속에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었다. 마돈나는 바스키아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바스키아는 미술이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싫어했다.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음악은 더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까”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그의 작품들은 미술을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거리의 낙서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경 / 사진 : 정지원 기자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재능도 있죠“라고 당당하게 말한 바스키아를 검은 피카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색인종이라는 것과 피카소라는 칭호를 모두 배제하더라도 바스키아는 바스키아 자체로 대단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는 잠실에 위치한 롯데뮤지엄에서 내년 2월 7일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나새빈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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