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고 호텔셔틀버스를 타고 대협곡으로 갔다. 버스가 일찍 출발하니 덩달아 하루의 시작이 빠르다. 대협곡입구에 가방 맡기는 곳이 있다. 우리는 작은 배낭이라 그냥 들어가려는데 남편의 배낭이 통과가 안된다. 모바일폰이외에 카메라도 맡겨야 한단다. 할 수없이 카메라와 배낭을 맡겼다.

다행히 매표소 줄이 길지않다.

표를 사서 먼저 유리다리쪽으로 들어갔다.

아침이라 다리아래면에 이슬이 맺혀 계곡 아래가 잘 보이지않는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선명하게 보이면 다리가 후들거릴 판이다. 다리 중간쯤 갔는데 왠 미친X가 펄쩍 뛰며 쾅쾅거린다. 깜짝 놀라서 하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인구가 많은 나라다 보니 별별 인간이 다 있다.

유리 다리를 왕복하고 나와서 대협곡입구로 갔다. 대부분의 단체관광객은 유리 다리만 보고 나가느라 대협곡 쪽은 사람이 많지않다.

일단 입장하면 같은 길을 돌아오지 못하는 일방통행인데다 계곡아래쪽길 10킬로를 무조건 걸어야 한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아찔하다.

이 깊은 계곡에 어떻게 계단을 만들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중간부터는 미끄럼 타고 내려가는 구간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서 타고 내려가는데 우리는 그냥 걸어내려 갔다. 내 앞에 내려가던 야쿠자처럼 생긴 아저씨가 날 보더니 동영상을 찍는다. 그러면서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예쁘다고 너스레를 뜬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선글라스까지 썼더니 예뻐 보였 나보다. 내 눈에는 중국여자애들이 백배 더 예뻐 보이는구만.. 취향도 독특한 아저씨다.

남편이 그 장면을 보더니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내년쯤엔 내가 주인공인 야동이 어디에 올라서 세상을 돌아다닐지도 모른단다. 불가능이 없는 중국인들이 내 동영상으로 어떻게 편집을 해서 돌릴지 모를 일이다. 남편과 둘이 웃기는 상상을 하며 잠시 즐거웠다. 세상이 별 오해를 한들 우리 둘이 서로 믿으니 상관없다. 계곡 아래 강 따라 걷는 길이 한적해서 좋다. 길 초입에 길고 험한 길이라고 써있다. 걸어보니 길기는 한데 험한 길은 아니다. 강 따라 나무데크로 길을 잘 만들어 놓아 사색하면서 걷기 딱 좋은 길이다.

대협곡의 속살을 보는 아름다운 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선착장이 있다. 거기서부터는 길이 없어지고 배를 탄다.

길지않은 구간이지만 잠시 배타는 즐거움이 있다. 배에서 내려서 배낭을 찾으러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왜 배낭과 카메라 등을 반입 금지시키는지 이해가 안된다. 하여간 배낭을 찾고 무릉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오질 않는다.

할 수없이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오니 아까 출발한 무릉원행 버스가 차가 막혀 길 중간에 갇혀 있다. 걷는 것이 더 빠른 상황인것이다. 고맙게도 버스에 올라타긴 했는데 꼼짝없이 길 안에 갇혔다. 덕분에 버스를 타긴 했으니 할말이 없다.

우리가 아침부터 서둘러 대협곡을 마친 것이 다행이다. 양방향으로 차들이 밀려 대협곡입장하는 단체관광객들은 대부분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기까지 한다.

겨우 정체를 벗어나 무릉원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장가계 마지막 코스인 보봉호로 갔다.

보봉호는 상선착장과 하선착장이 있는데 우리는 버스를 타지않는 하선착장표를 샀다. 사실은 말이 통하지않아서 주는 대로 표를 받으니 버스를 탈수 없는 티켓이다. 많이 걸은 후라 다리가 아픈데 걷자니 짜증이 나서 매표원아가씨를 욕했다. 하지만 하선착장에 도착하니 욕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중간 산책로가 아름답고 내려오는 절벽 계단도 볼만하다. 우리를 알아봐준 매표원이 오히려 고마워졌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보트를 타니 가이드아가씨가 설명을 한다. 지나가는 다른 배를 만나면 요웨이라고 서로 손 흔들며 외쳐주라고 한다. 출발하자 호숫가집에서 여자가 나와서 노래를 한다. 노래를 구성지게도 잘한다. 배가 보봉호를 한바퀴 돌고 이번에는 남자가 노래 부르는 집을 지난다. 남자도 노래를 잘한다. 노래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운남성 리장고성의 노래주고 받던 광경이 떠오른다. 배가 선착장에 도착할 즈음 가이드아가씨가 노래를 한다. 가이드아가씨도 노래를 잘한다. 다들 박수를 치며 환호하며 내렸다.

생각보다 보봉호 배타는 시간이 지루하지가 않았다. 무릉원 시내로 나와서 과일을 사러 마트에 들어가니 두리안부터 별별 과일을 다 판다. 두리안을 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망고 잭프룻 리찌를 사고 보니 장유와인도 있다. 술 못 먹는 내게 딱 맞는 금딱지 장유와인을 한 병 샀다. 욕조에 뜨겁게 물 받아서 경치 즐기며 마실 심산이다. 미리 알아 놓은 무릉원 맛집 1위식당으로 갔다. 중국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입에 맞는 중국식 식사를 했다. 이 동네 음식이 유난히 향이 강해 힘들었는데 이집 음식은 사천훠궈향도 안나도 잡내가 전혀 없다. 쇠고기 돼지고기 가지요리등등을 시켰는데 다 맛있게 먹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왔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남편이 쇼핑한 것을 바닥에 떨어뜨려서 와인병이 깨졌다. 내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와장창 들렸다. 호텔 벨보이가 메이관시라며 위로를 하는데 난 전혀 위로가 안된다. 과일만 따로 꺼내고 나머지는 청소부가 와서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부기를 타고 방으로 왔다. 남편이 미안한지 룸 서비스로 제일 좋은 와인을 하나 시키란다. 모진 맘먹고 룸서비스메뉴를 뒤지는데 와인이 없다. 와인은 커녕 맥주도 없다. 이 리조트가 환경 친화적이라더니 음주 친화는 아닌 듯 싶다. 할 수없이 로비로 가서 호텔 안에 와인 파는 상점이 없냐고 물으니 길 건너 가게가 있다고 알려준다.

길을 건너서 가보니 와인은 하나도 없고 장가계 바이주만 있다. 할 수없이 바이주 제일 작은 것과 사이다를 사왔다.
그냥 넘기기엔 이 밤이 너무 억울하다. 예약한 맛사지시간이 되어서 맛사지 받으러 갔다. 전신맛사지를 받고 나니 온몸이 노곤노곤 좋다. 방 번호를 알려주고 달아 놓으라 했더니 그러면 15%가 더 붙는단다. 현금으로 지불하면 15%안내도 되니깐 현금으로 내라고 한다. 가지고 온 돈이 없다고 하니 점원이 방까지 따라와서 받겠단다. 점원과 함께 부기를 타고 방으로 와서 현금으로 줬다. 많은 호텔을 다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드디어 길고 긴 하루가 끝났는데 꿈꾸던 와인이 없다. 바이주는 내 취향이 아니다. 사이다와 섞어서 컵에 부어놓고 조금 맛보고 그냥 바라만 봤다. 아...2% 부족한 하루의 마무리다.

허미경 여행전문기자(mgheo@nextdaily.co.kr)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 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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