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비뇨기과의사회 제공
사진=대한비뇨기과의사회 제공

비뇨기과 의사를 연이어 자살로 내몬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을 폐지하라는 의료계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아직까지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논란이 커지는 중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시 소재 모 비뇨기과의원 원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마귀 제거 비용을 이중으로 청구한 혐의로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통보를 받은 후다.

이에 앞서 작년 7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안산 소재 한 병원의 비뇨기과 전문의는 건보공단의 현지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했다.

의사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접한 대한비뇨기과의사회는 공분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5일부터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펼치며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리고 건보공단으로 나눠진 현장조사의 일원화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보건당국의 이중조사는 법률 위반이다. 현행 행정조사기본법 제4조에는 유사하거나 동일한 사안에 공동조사 등을 실시함으로써 행정조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특히 비뇨기과의사회는 현장조사를 위한 무리한 요구가 의사들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현장 조사와 함께 방대한 자료제출 요구, 협박에 가까운 서명 요구 등 강압적인 조사행태가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의료계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비뇨기과의사회와 함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대한개원의협의회를 비롯해 산부인과·소청과·외과·흉부외과·이비인후과·정신과 등 전문과목별 개원의단체들도 건보공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0일에는 대한정형외과의사회가 비뇨기과의사회 입장에 동의하는 성명서를 공개했다. 이들은 "현행 보험심사 부당청구로 인한 현지확인 및 현지조사 제도는 사실상 의료인의 부도덕성을 임의 전제하는 위법적 제도"라고 강조했다.

또 이날 오전 8시 대한비뇨기과의사회 어홍선 회장과 도성훈 정책기획이사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과 김숙희 서울시의사회 회장, 노만희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건보공단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진종오 건보공단 서울지역본부장과 면담하고 향후 이와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한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건보공단 측은 이들에게 사망사건과 관련,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상급기관에 의료계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10일 면담 후 이르면 오늘(11일) 제도 개선방안 등을 의료계에 전달하겠다는 관측이 있지만 이는 아직까지 불투명한 실정이다. 또 건보공단이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도 전혀 예측이 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건보공단 노조가 의료계에 자체적으로 대응하면서 도마에 올랐다. 노조는 비뇨기과의사회가 1인 시위를 시작한 5일 의료계에 즉각 반발했다. 의료계가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업무를 무력화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건보공단 노조는 "유명을 달리한 의료인과 관련해 일부 의료계가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며 보험자인 건보공단의 기본적인 역할조차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지 하는 우려가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의료계가 해당 의료인을 자살로 이르게 한 원인의 사실관계를 규명하고자 요청한다면 노조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전했다.

황재용 기자 (hsoul3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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