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힘들었는지 6시40분에 깼다. 7시에 요가클래스가 있다했는데 부랴부랴 로비로 갔다. 요가클래스 어디냐고 물으니 요가선생한테 전화를 하는데 받지를 않는단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요가선생님은 나타나질 않고 요가 해보겠다고 모인 여자들끼리 투덜대며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오니 남편이 강변산책이나 가자고 한다. 강변으로 나가니 떠오르는 해를 받으며 명상에 잠겨있다. 방해할까봐 살짝 지났다. 밤에 본 강변하고는 또다른 분위기다. 해가 뜨면서 물안개가 펴서 몽환적이다.

식당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먹으니 상쾌하다. 이 리조트는 새소리와 사람들 대화소리 외에는 들리는 소리가 없다. 호텔 입구에 새들의 오케스트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서있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건너편에 어제 하니문패키지로 캠파이어하던 신혼부부가 잔뜩 인상을 쓰고 있다. 밤사이에 뭔일이 있었는지 남편하고 둘이서 소설 몇권을 썼다. 서로 티각태각거리는 것이 귀엽다. 앞날을 위해 좋은말 해주고 싶었는데 참았다. 원하지않는 노친네들의 충고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방에 와서 대충 정리하고 티벳캠프로 갔다. 쿠살나가르에 온 목적이다. 중국의 탄압으로 망명해온 티벳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티벳캠프안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이라도 머물려면 델리 인도정부의 퍼밋을 받아야한다. 퍼밋을 얻으려면 5개월이 걸린다 한다. 우리는 숙박하지않는 관광목적이라 퍼밋이 필요없다.

캠프라 해서 작은 동네인줄 알았다. 오토릭샤를 타고 골든탬플로 가자고 했다. 티벳마을로 들어가는데 스님이 라이방쓰고 오토바이타고 길을 달리신다. 신선한 충격이다. 너무 빨리 달리셔서 사진을 못찍었다.

골든팸플은 외형적으로는 현대화된 사원같았는데 내부는 티벳사원하고 비슷하다. 달라이라마와 링보체의 사진이 걸려있다. 마침 예불시간이라 살짝 볼수있었다. 라마불교의식대로 악기를 사용하면서 하는것이 특이하다.

본당에 들어가서 고개숙이고 기도를 하는데 울컥 눈물이 흐른다. 엄마 살아생전 하던 말이 떠오른다. 전생에도 너는 내자식이었을게다...엄마를 떠나보내며 오빠가 엄마에게 했던 인사가 머리를 스쳤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엄마로 태어나달라고...엄마는 여리고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그 여린 사람이 우리 4남매를 강하고 독립적으로 길렀다.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 4남매는 제대로 자라기 어려웠을거다. 희생하고 고생하고 살다가 간 엄마가 난 항상 그립고 애달프다.

사후세계가 어떨지 우리는 모른다. 티벳불교가 맘에 가장 와닿는 부분은 현실에서 윤회를 증명하는 점이다. 다시 태어나서 엄마를 만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세상이 어떨지는 가보질 않아서 알수가 없다. 이세상에서 다시 엄마를 만나고 싶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엄마라 난 엄마의 믿음을 존중하고 그 믿음이 이뤄지길 바란다.

골든템플을 나와보니 저멀리 큰 사원이 보인다. 타쉬룽포라 불리는 뉴템플이라 한다.땡볕에 걷기 싫어서 릭샤를 탔다.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큰행사를 치뤘는지 마당이 어수선하다. 법당으로 들어갔다. 순로대로 돌아서 불상앞에서 시부모님과 엄마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한국사람같아 보이는 키큰 아가씨가 보인다. 말을 걸어보니 한국사람이 맞다. 법회가 있어서 수개월전부터 준비해서 왔단다. 관광이나 여행으로는 올 이유가 없는곳이라 서로 놀랬다.

한국에 티벳사원이 서울 부산 두곳에 있단다. 티벳사원에서 일하는 아가씨라 한다. 한국에서 온 일행들이 더 있다. 아가씨 두명과 나이 지긋한 어머니 보살들이시다. 티벳사원 스님을 모시고 왔는데 티벳스님께선 한국말을 잘 하신다. 만나서 반가왔다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키큰 아가씨가 쫓아오더니 백루피짜리 여러장을 내손에 쥐어준다. 스님께서 우리 부부 식사라도 하라고 주신 돈이란다. 스치는 인연이지만 여행 잘하라고 주시는 돈이란다. 말도 안되는 일이다. 바로 스님께 가서 저희가 대접해야하는 일이라 사양했다. 스님께서 시간이 있으면 안내해주겠다 하셔서 이런 저런 설명을 듣게 되었다.

지난주까지 달라이라마가 티벳캠프에 오셔서 법회를 하셨다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몇분이 법회참석으로 오게 된거란다. 법당에 걸린 사진들을 설명해주신다. 어린아이얼굴은 링포체라마의 환생이란다. 중국정부에서 가족과 함께 잡아간후에 20년동안 소식을 알수 없다고 슬퍼하신다. 불상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신다. 주물이 아닌 방짜로 만들었는데 너무 잘생긴 불상이라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수더분하니 잘생기셨다.

스님께서 캠프1에 가서 점심드실거니 같이 가자하신다. 안그래도 캠프1에 가고 싶었는데 같이 갔다.캠프1에는 티벳시장이 있다. 티벳캠프에는 만명정도의 티벳망명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 스님은 4천명정도라 한다. 캠프1 시장안은 티벳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시장이다. 우리도 따라서 구경하는데 스님이 가방 2개를 사서 주신다. 그것까지 거절하긴 어려워서 받았다.

어제 저녁 호텔에 스님들이 오셔서 식사했던 이야기를 했다. 고기도 드시더라고 이야기했더니 티벳불교에는 고기를 먹지말라는 교리는 없다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장구경을 했다.

한눈파는 사이에 스님일행을 놓쳤다.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우리끼리 점심 먹자고 식당을 찾았다. 티벳캠프에 왔으니 툭바와 모모가 먹고 싶어졌다. 근데 식당들이 죄다 문을 닫았다. 세라사원쪽에 가서 구경하고 그쪽에서 먹자고 릭샤를 타고 갔다. 세라사원구경하고 나와서 식당을 찾으니 거기도 문을 닫았다.

지나가는 스님께 여쭤보니 캠프4에 가면 문을 연 식당이 있을지도 모른단다. 다시 릭샤를 타려고 보니 스님 한 분이 앉아계신다. 합승을 했다. 내가 가운데 껴 앉았다.

스님이 인자한 얼굴로 물어보신다. 코리아? 예스...내리면서 포토 오케이? 여쭈니 찍으라 하신다.

캠프4 한 식당에 들어갔다. 오늘은 안한단다. 왜 안하냐고 물으니 굿데이라서 안한단다. 티벳사람들은 영어는 잘 못해도 알아듣게 또박또박 말을 한다. 짧은 영어지만 짜증나진 않는다.

결국 처음왔던 골든템플로 왔다. 관광사원이니 식당영업을 할것 같아서다. 호텔로 가서 먹어도 되겠지만 티벳음식이 먹고싶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모모와 초멘을 시켰다. 아쉽게도 툭바는 안한다.

점심먹고 나와서 사고싶었던 하얀색 상의와 스카프 모자등을 샀다. 만원도 안쓰고 3개나 득템했다. 영어를 잘하는 가게아저씨께 물었다. 왜 식당들이 문을 닫았냐? 달라이라마가 오셔서 그동안 바빴단다. 티벳캠프전체가 붐비고 손님치느라 힘들어서 오늘 푹 쉬는거란다. 붐빌때 오지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달라이라마는 예전에 오사카에서 친견한적 있다. 난 큰 감흥은 없었고 그냥 유명한 종교인을 실제로 만난 정도의 감흥이었던지라 이번에 못만난것이 아쉬울 것은 없었다. 당시에도 달라이라마의 설법은 책에서 얻을수 있는 지식들이었던지라 신앙심이 깊지않은 나는 시어머님과 함께하는 여행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셨던 시어머님의 감동은 특별하셨다. 점심도 먹고 쇼핑도 하고 구경도 다해서 뿌듯하다. 티벳캠프를 구경한건 이번 여행에서 생각지도 않은 보너스다. 빨리 중국정부와 원만하게 해결해서 티벳사람들이 고국에서 잘 살게되었으면 좋겠다.

호텔로 돌아와서 3시30분에 섬건너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강안에 있는 섬들을 건너는 액티비티인데 9명이 참여했다. 씩씩하게 생긴 젊은 선생님이 우리를 안내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다. 신혼부부한쌍과 올드한 부부 3팀과 젊은 아가씨가 일행인데 아가씨는 노약한 부모와 일행이다. 결국 내가 딸과 함께온 부부를 돕게 되었다. 아버지 손도 잡아드리고 엄마도 잡아드리고 딸도 잡아줬다.

강을 건너면서 섬을 걸어다니는 것은 넘 잼있었다. 물을 거슬러서 건너기도 하고 비탈길을 올라가기도 하고 줄잡고 내려가기도 했다. 섬투어를 끝내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같이 섬걷기를 하고나니 급 친해졌다. 우리는 방으로 와서 목욕하고 빨래해서 옷을 널고 쉬었다.

6시에 예약한 아유르베다맛사지를 하러갔다. 맛사지를 하기는 하는데 식도에서 장까지 교통상황이 좋지않다. 인도에 와서 인도식으로 먹는 동안은 장내사정이 놀랍게도 원활했다. 인도음식은 다른건 모르겠지만 몸안 소통을 위해서는 최고의 음식이다.

아침에 눈뜨면 바로 신호가 오고 식도에서 대장끝까지 뚫리는지라 여행중에도 매일이 상쾌했었다. 함피에서부터 로얄오키드 체인호텔에 묵으면서 파스타와 빵을 잔뜩 먹었더니 교통상황이 다시 서울시내 출퇴근시간으로 바뀌고 장내에는 가스가 가득 차서 계속 로켓발사를 해댄다. 부글부글 기분도 꾸리꾸리하다.

그런참에 아유르베다맛사지를 하려니 찜찜하다. 그래도 목이 뻐근해서 안할수는 없고 스파로 갔다. 아가씨들이 반가이 맞아준다. 내 담당아가씨가 안내를 해준다. 병원에서 받은것과 큰 차이는 없는데 시설이 고급스럽고 조명등이 은은하고 사운드가 명상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빤주도 일회용 빤주를 준다. 일회용 빤주로 갈아입고 스팀실로 안내를 한다. 그냥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건식사우나인데 스팀실이라 한다. 15분후에 오겠단다.

아가씨는 입안에 사탕 하나 물고 영어를 하는듯 하다. 그러고보니 인도사람들이 영어하는 것이 사탕 물고 영어하는 식이다. 그래도 아가씨영어는 짧고 천천히 하니 겨우 짐작으로 알아듣기는 하겠다.

맛사지 자체는 케랄라병원에서 받은것과 비슷하다. 다만 내 속사정이 편치않아 로켓발사를 참아야하니 불편하다. 배맛사지를 할때는 거의 아가씨손길따라 나도 돌 지경이었다. 다행히 로켓발사는 미룰수 있었다.

맛사지를 받느라 멍때리고 누워있는데 낮에 티벳마을다녀온 생각과 엄마생각들이 겹쳐서 자꾸 난다. 생각따라 눈물이 자꾸 흐른다. 깜깜한데도 보였는지 아가씨가 티슈로 눈가를 닦아주며 어디가 불편한지 묻는다.

불편한건 속사정인데 눈물은 마음에서 나오는거다. 괜찮다고 다 좋다고 안심시켰다.

엎드려서 등쪽을 하는데 눈물에다 콧물까지 나온다. 아가씨가 알까봐 가만 있으니 코도 막힌다. 눈물 콧물 거기다 로켓발사직전이다.

그래도 눈감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려고 최선을 다하는데 이어지는 엄마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맛사지를 다 마치고 아가씨들 3명이 나한테 몰려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다들 케랄라가 고향이라 한다. 케랄라가 아유르베다의 본고장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나도 마치 케랄라출신이 된듯 케랄라이야기로 같이 흥분했다. 고향이 그리운 아가씨들이 고향이야기만 나와도 좋은가보다.

맛사지를 받고나니 목이 좀 나아진듯 싶다. 저녁먹을때 식당에서 옆테이블의 섬투어를 같이 했던 부부가 딸부부를 데리고 저녁을 먹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친한척을 한다. 같이 도강을 몇번 했더니 국경이라도 함께 넘은 전우애가 생긴듯 반가와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옆자리에 앉았는데 바로 후회를 했다.난 등을 돌린 자리에 앉아서 소리만 들리는데 네명이 동시에 떠든다.

4명이 앉아있는데 4사람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다니 신기하다. 이가족은 대화에 특별한 신공이 있나싶다. 남편한테 신기하다고 했더니 바라보는 쪽에 있는 남편이 설명을 해준다. 사위는 전화를 붙들고 떠들고 있고 부모는 같이 동시에 떠들고 딸은 핸폰화면을 보고 중얼댄단다. 쳐다보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들리는 소리들이 신기하고 잼있기는 한데 밥먹는 내내 쉬지않고 4명이 같이 떠드니 귀가 아플 지경이다. 안면트고 인사까지 나누고 전우애까지 생긴 마당에 다른 자리로 옮길수도 없다. 할수없이 저녁을 다 먹고 바로 일어났다. 오늘은 점심때 티벳모모를 먹은것 빼고는 인도식으로 먹었다. 입맛보다는 내 속사정이 더 중요해졌다.

저작권자 © 넥스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