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과연, 선택을 가로막는 이 막연한 불안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내가 다루는 상품에 대한 확신이다. 확신이 있어야 고객의 불안을 잠재우고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
흔히 건축가들은 건축물에 대해 “MASS”란 말을 사용한다. 어원 그대로 “덩어리”인 셈이다. 매스 디자인(MASS DESIGN)이란 말은 건축물을 덩어리 개념으로 디자인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형태를 만드는 일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는 요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한방을 꿈꾼다. 그래서 로또도 사고, 주식 매매도 하고, 부동산 등에도 투자한다.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한방이 생기지 않는다. 로또는 엄청난 확률을 뚫기가 힘들고, 개미들은 주식 시장에서 패배자일 가능성이 아주 높고, 부동산은 소수를 제외하고 쓴물을 마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열렬한 채식주의자 아이작 바쉐비스 싱어(Isaac Bashevis Singer, 197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국의 작가)는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채식주의자와 채식주의를 강조하고, 언급했다.
섐록은 아일랜드의 상징인 세 잎 클로버를 말한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 축일(St. Patrick’s Day) 축제에 보면 녹색 옷을 입은 이들이 뺨에 이 섐록을 그리고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며칠 전 나름의 기대감을 안고 역사적 장소인 홍릉수목원을 방문하였다. 도시 속의 숲을 경험한다는 설레임은 등산과는 다른 기분이다. 특히 수목원은 숲을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교육장소가 아닌가.
사람들이 사진매체를 일상속에서 만나면서, 고민과 생각을 위한 행위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또한, 어딘가로 떠나거나 일상과 다른 또 다른 일상을 만날 때에도 늘 사진과 함께 한다. 아마도 필자가 보여준 두 장의 사진이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사진의 방식이 아닐까.
결혼식은 두 번으로 나눠서 진행이 된다. 첫번째는 신랑 신부의 양가 가족들이 가장 큰 어른을 중심으로 가족 간의 결합을 합의하고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선물과 음식을 주는 형태로 진행이 된다. 특이한 점은 베트남에는 예식장 문화가 없다.
장기불황, 저성장, 고령화, 가계부채, 보호주의 강화 등 불확실과 불투명한 우리나라 경제는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 내 놓은 전망마다 부정적이어서 국내 중소기업들은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기업가정신을 잃지 않고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가는 중소기업 들도 있다.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직장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상이 되는 모든 직원들은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업무성과를 잘 내려는 노력을 한다. 수많은 부서의 직원들이 동일 선상에 놓여 있어 뛰어난 성과가 아니면 굳이 그 사람을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가치이다. 이색적인 스펙이나 능력 그로 인한 가치가 현실적인 차이를 만들어 낸다.
큰 스푼 안에 작은 스푼이 포개어지면 어떻고, 제트패킹을 해서 여자 등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면 어떠랴.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따스한 체온을 나눈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상대에 대한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생기는 감정이라지만, 가장 절절하게 그리운 건 체온이 아닐까 싶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삶 자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삶’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병원에 가면 수없이 많은 환자들이 자신들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실제로 필자를 찾아오는 건축주들 중 상당수는 설계 업자, 시공 업자와의 분쟁으로 처절하고 절실하게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설계의 중요성을 간과했다고 입을 모은다.
영업은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하는 사람에게 성공으로 보상한다.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불성실하고 지속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영업을 할 때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고, 받은 명함을 꼼꼼히 정리하고 끝나기 무섭게 또다시 새 건물로 향하고 영업 일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상징적인 치유력은 기대되는 것 같다. 특히, 잘못된 국정 운영으로 상처받고 착취당하고 고통 당한 시민들을 직접 손을 대어서 치유해 줄 수는 없지만, 굽고 치우쳤던 방식들을 바로 잡음으로써 치유자가 되는 상징적인 능력은 아직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