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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수집의 연속물, 아르코 미술관 기획초대전 「정재철 : 사랑과 평화」

발행일시 : 2021-07-08 07:38
아르코 미술관 전경 / 사진: 아르코 미술관 누리집 제공 <아르코 미술관 전경 / 사진: 아르코 미술관 누리집 제공>

◇ 아르코 미술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아르코 미술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의 미술관으로 1974년 당시 전시장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예술가들에게 전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미술회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후 1979년 한국의 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을 신축하고 이전하면서 현재의 미술관이 되었다. 붉은색 벽돌 건물이 트레이드 마크인 아르코 미술관은 오늘날 대학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기획전을 중심으로 전시를 개최하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은 현대 미술의 패러다임을 이끄는 공공미술관으로서의 역할하고 있다. 한국 동시대 미술 현장의 역량 있는 신진 작가와 더불어 기획자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시한다. 아르코 미술관 내부에 있는 아르코 아카이브는 동시대 시각예술의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공간으로 미술관의 주요 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아카이빙, 연구, 창조적 활용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접근성 높은 위치를 잘 활용해 보다 새롭고 실험적인 한국 현대 미술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는 아르코 미술관은 동시대 미술관 중 가치 높은 현대 미술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재철 : 사랑과 평화」

7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열리는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은 2021년 아르코 미술관 기획초대전으로 지난해 타계한 정재철 작가의 작고 1주기 전이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가 국내외를 이동하며 수행한 참여 미술 형식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현장 작업의 결과물과 작가가 남긴 기록, 수집품을 재구성하고 작가가 지향한 예술적 실천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전시 포스터 / 아르코 미술관 누리집 제공 <전시 포스터 / 아르코 미술관 누리집 제공>

정재철(1959~2020) 작가는 1988년 중앙미술 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조각 매체를 다루는 작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후 1995년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류 워크숍을 계기로 해외 레지던시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이는 작가의 미술언어를 성찰하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작가는 여행과 이동을 통한 개념적이고 수행 중심의 미술언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2000년 이후를 작업에 대한 태도와 방법론적인 변화의 전환점으로 보고, 현장 작업을 통해 작가의 미술에 대한 태도 변화와 성찰, 사회적 문제를 향한 시선을 보여준다.

전시는 크게 4개의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 전시실에선 작가가 남긴 사진과 영상, 루트맵, 여행 일지 등 기록 매체를 중심으로 작가의 프로젝트 중 하나인 ‘실크로드 프로젝트’(2004~2011)를 재맥락화한다. 인도와 중앙아시아, 중국, 유럽 등 실크로드를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재철 작가는 우연한 만남과 교류, 사건과 상황을 만들고 기록했다. 지도 바깥에 존재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형성한 교류, 네크워크 안에서 낯선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를 수용하는 작가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다.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제2 전시실에선 ‘사물의 물질성에서 발굴한 순환적 가치와 생기’라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프로젝트인 ‘블루오션 프로젝트’(2013~2020)는 인류의 공유지인 해양 오염을 물질적 증거물을 제시해 인류에게 간섭하고 사건을 촉진시키는 비인간 사물들의 연결망을 보여준다. 앞서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이동하는 주체가 만남과 교류를 수행하며 주제의 바깥을 향했다면, ‘블루오션 프로젝트’의 비인간 사물의 순환과 상생하는 힘에 대한 존중은 공유지라는 경계 너머로 작동하는 공동선을 향해있다.

같은 전시실의 ‘로컬처럼 살기’는 작가가 재개발 지역에서 가져온 화분과 씨앗, 돌을 전시 형태로 탈바꿈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아카이브 공간은 작가의 조각에서 출발해 확장된 조형언어를 살펴보는 동시에 장소와 시간과 관련한 참여적 형식의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와 접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 사랑과 평화가 담긴 두 개의 프로젝트와 작품들

정재철 작가는 앞서 말했듯 1990년대 조각이란 예술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렇게 세간의 기대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을 통한 작품 활동’이었다. 혹자는 작가를 일컬어 ‘여행과 삶이 곧 예술’이었던 사람이라 말한다. 이 말은 그의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총 1, 2, 3차에 걸쳐 진행된 프로젝트로 1차는 서울에서 출발해 중국, 파키스탄, 인도, 네팔 국가의 22개 지점을 거쳐 길을 가는 위치의 징표로 던져진 현수막 로드를 만들고 이를 마을 자체에서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에서 우리나라 글씨가 있는 현수막이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된 것이 마치 해당 장소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폐현수막이 그들의 햇빛가리개로 재탄생되었는데 해당 지역의 문화에 맞게 변형된 디자인은 요즘 말로 ‘힙’해 보인다.

정재철, ‘설치’, 2008(추정) <정재철, ‘설치’, 2008(추정)>

2008년 2차로 시작한 ‘뉴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거래와 교환이 성사되는 장 ‘바자르’라는 주제로 확장하였으며 파키스탄, 이란, 터키의 13개 지점에서 실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3차 프로젝트는 터키, 그리스, 유럽을 통과해 런던에서 끝을 맺었다.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과 평화’는 프로젝트가 마지막으로 진행된 런던에서 팔러먼트 광장을 점거한 반전 시위 캠프의 천막 위에 한글로 적은 문구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재철 작가가 작업을 통해 무엇을 추구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다양한 나라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만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엽서를 주고받은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엽서 내용 속에서도 경계를 넘나들어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지향한 작가의 가치관이 나타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여행을 하며 남긴 엄청난 양의 기록물이었다. 전시장 가운데에 진열된 많은 양의 기록물과 수집품은 작가의 인생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정재철 : 사랑과 평화’ 전시 전경>

제2 전시실에선 ‘블로오션 프로젝트’와 함께 ‘로컬처럼 살기’, ‘아카이브’가 전시되고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블루오션 프로젝트 중 크라켄 부분을 전시한 공간으로 멀리서 봤을 땐 ‘저게 뭔가’ 싶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곧 바다에서 떠밀려온 각종 해양 쓰레기인 것을 알 수 있다. 신발부터 모자, 옷, 그물, 병뚜껑 등 정말 다양한 생활 쓰레기들이 작품을 이루고 있다. 페트병 중에서는 일본어가 적힌 것들도 많아 이런 해양 오염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벽면에 붙여진 ‘북해 남도 해류 전도’와 ‘제주 일화도’는 작가가 직접 움직인 범위 속에서 획득한 데이터를 표현하고 있다. 맨 처음 북한 부분이 그려져 있지 않아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작가가 가보지 못한 곳이라 ‘표시’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방위, 범례 등 지도의 요소를 차용해 해류의 경로 속 발견한 해양 쓰레기의 비가기적 네크워트는 크라켄을 통해 보게 한다.

정재철, ‘블루오션 프로젝트-크라켄 부분’, 2021년 재설치 <정재철, ‘블루오션 프로젝트-크라켄 부분’, 2021년 재설치>

‘로컬처럼 살기’ 부분에선 정재철 작가가 과천 가루대마을에서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된 후 버려진 꽃과 나무를 과천 주변에서 수집한 화분에 심거나 사져와 키워낸 화분 일부가 전시되었다.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마지막 아카이브에서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수행적 언어로 전환되기 전 시기와 조각에서 확장되는 공공성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그는 조각에서 권위 있는 상들을 휩쓸 정도로 조각가로 주목받았다. 조각에서 출발하여 확장된 조형언어를 살펴보는 동시에 장소와 시간과 관련한 참여적 형식의 공공미술, 커뮤니티 아트와의 접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정재철 작가가 생전에 떠났던 여행길에 동참하면서 그의 가치관과 사회를 보는 관점,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작가의 태도와 문제의식에 기반해 기존 공유지에 대한 생각, 새롭게 펼쳐지는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새빈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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