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현대가 만나는 곳,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하 APMA)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서성환 회장의 수집 미술품을 기반으로 출발하였다. 현재 여성, 차, 공예 관련 미술품을 중심으로 한국 고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수집 및 전시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자 및 학회, 젊은 작가들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고 있다.

1979년 태평양박물관으로 설립되어 2004년 태평양박물관의 명칭을 디마오레 뮤지엄으로 변경하고 설립한지 30년이 지난 2009년에는 현재 명칭인 아모레퍼시픽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2018년 APMA는 각각 오산과 용인에서 운영하던 미술관을 아모레퍼시픽그룹 신사옥 미술관으로 통합하여 새롭게 문을 열었다.

개관 이래로 꾸준한 미술품 구매를 통해 현재 장신구, 도자기, 목가구, 서화 등 10,000점의 고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회화, 조각 등 현대미술품도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어 그야말로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HREE – FROM THE APMA COLLECTION」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THREE」는 2021년 APMA의 첫 전시로 이전에 선보인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에선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앞서 두 차례의 소장품 특별전이 성황리에 끝난 만큼 대중들의 기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작가 이불과 최우람을 비롯한 YBM의 게리 흄, 블랙다다로 유명한 아담 팬들턴까지 국내외 21세기를 대표하는 현대작가들이 대거 출동하였다. 작품들의 제작 시기는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로 이 시기 주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APMA의 전시실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총 7개의 전시실은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50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APMA는 탁 트인 전시장에 공간마다 어울리는 작품을 배치해 관람객들이 더욱 작품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Ernst Gamperl, <목공예 오브제>, 2010~2018
Ernst Gamperl, <목공예 오브제>, 2010~2018

Sterling Ruby, <창문. 솜사탕.>, 2019
Sterling Ruby, <창문. 솜사탕.>, 2019

1전시실에선 회화와 현대 공예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중앙에 있는 목공예 작품들은 에른스트 갬펄의 작품들로 마주 보고 있는 삼각형의 낮은 전시대 위에 오브제들이 올려져 있다.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작품의 특성을 관람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전시대를 두 개의 삼각형으로 만들고 그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보통의 큰 사각형 전시대였다면 작품을 사방으로 보는 데 어려울 것이고 두 개의 사각형 전시대였다면 전시공간을 더 차지할 뿐만 아니라 총 8면을 둘러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특성과 관람자를 배려한 전시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 포스터의 메인 그림이기도 한 ‘창문. 솜사탕’은 스털링 루비의 작품으로 캔버스 위에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콜라주한 작품이다. 그는 콜라주 작업을 ‘부정한 결합’이라 칭하고 상반되는 형태와 개념들을 캔버스 위에서 충동시킨다.

스털링 루비의 ‘창문. 솜사탕.’은 전시 포스터를 꾸미고 있는 작품으로 작가는 사회적 갈등이나 일상의 경험을 다양한 매체로 담아내고 있다.

그 밖에도 제니퍼 바틀렛의 금속 패널 회화 ‘보라색 통로’와 화면의 입체감을 극대화한 켈티 페리스의 ‘흐르는 강’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이 있다.

이불, ‘사이보그 W2’, 2000
이불, ‘사이보그 W2’, 2000

2전시실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설치 작가 이불과 최우람을 소개한다. 이불의 작품은 2000년 작품 ‘사이보그 W7’부터 2010년 작품 ‘스턴바우 No. 29’까지 총 네 점의 조각이 전시되어있다.

그중 ‘사이보그 W7’은 ‘이루어지지 않은 유토피아’에 대한 욕망과 좌절의 양면성을 담아내고 있다. 완벽함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열망, 그리고 그에 대한 한계와 좌절을 이야기하는 이불의 작품세계가 불완전한 형태로 독특하게 나타난다.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머리, 팔, 다리 일부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여기서 인간의 한계란 불멸을, 불완전한 형태는 기계가 동경하는 인간의 감성이 아닐까.

Fred Sandback, ‘무제(조각적 연구, 다섯 파트로 구성된 지지대 없는 작품)’, 1975
Fred Sandback, ‘무제(조각적 연구, 다섯 파트로 구성된 지지대 없는 작품)’, 1975

Deborah Kass, ‘우리는 영원히 어릴 것이다’, 2015
Deborah Kass, ‘우리는 영원히 어릴 것이다’, 2015

2전시실을 나와 1전시실을 거쳐 가장 작은 전시 공간인 3전시실로 들어서면 아크릴 실을 사용해 공간감을 형성한 프레드 샌드백의 ‘무제(조각적 연구, 다섯 파트로 구성된 지지대 없는 작품)’가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조각처럼 물리적이고 만져지는 부피감을 가지도 않고도 공간감을 형성할 수 있는 개방된 조각을 보여준다. 여러 개의 실은 공간을 형성하고 작가는 이 공간을 ‘보행자의 공간’이라 칭한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나도 할 수 있는 현대미술’이 이런 작품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이것을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란 걸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4, 5전시실에선 현대미술의 폭넓은 주제의식과 양식을 소개한다.

데보라 카스의 ‘우리는 영원히 어릴 것이다’라는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과연 오마주와 표절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지를 던져준다. 작가는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상징적인 남성 작가들의 대표 작업 양식을 흉내 낸 시리즈로 유명해졌다. 그의 작업은 오마주와 차용 그 경계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작가의 페미니즘적 관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은 Katy Perry의 ‘Teenage Dream’의 가사를 인용한 작품이다.

Joseph Kosuth, ‘하나이면서 세 개인 스톨’, 1965
Joseph Kosuth, ‘하나이면서 세 개인 스톨’, 1965

조셉 코수스는 미국의 개념 미술가로 언어를 예술의 도구로 사용하여 미술이 무엇인지 미술 작품의 본질에 의문을 제기한다. 선인장, 프라이팬, 전등, 삽 등으로 한 사물의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고 소통되는가에 대한 분석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스톨이란 대상에 대해 사진(상상의 대상), 텍스트(사유의 대상), 사물(지각의 대상)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 셋 중에 어떤 것이 진정한 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누군 간 쉽게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제작과 접근 방법, 재료에 있어서 유사한 점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작가가 뒤샹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강형구, ‘윤두서’, 2010
강형구, ‘윤두서’, 2010

가장 큰 전시공간인 6전시실에선 다양한 매체의 실험성이 돋보이는 대형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강형구의 ‘윤두서’ 초상은 대중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외형은 물론 내면과 대상의 인격까지 담아야 한다는 ‘전신’이 그의 극사실주의 화풍과 만나 눈동자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타오르는 것 같은 윤두서의 수염은 이러한 면모를 한층 부각시킨다.

Adam Pendleton, ‘나의 구성요소들’, 2019
Adam Pendleton, ‘나의 구성요소들’, 2019

총 8m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 ‘나의 구성요소들’은 블랙 다다 작업으로 유명한 아담 팬들턴의 작품이다. 그는 흑인 정체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벽면 가득 걸려있는 45피스의 그림은 자신의 콜라주 작업을 투명한 필름에 실크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역사적 사진,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책의 한 페이지, 아프리카 조각과 마스크 이미지 위에 작가가 직접 쓰거나 그린 글귀와 기하학적인 도형을 겹쳐 배치하여 추상과 언어,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추상, 구상, 언어를 넘나드는 패턴이 다소 난해하게 보일 수 있지만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달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김창열, ‘회귀’, 1990년대
김창열, ‘회귀’, 1990년대

마지막 7전시관은 지난 1월 5일 작고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창열 화백을 기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시된 작품은 그의 예술 철학이 담겨있는 ‘회귀’ 연작이다. 그가 물방울 화가로 알려졌듯 김창열 화백은 50여 년간 물방울이란 일관된 소재를 그렸다.

캔버스, 신문지, 마포 등 다양한 지지체에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부터 흘러내리거나 표면으로 스며드는 물방울까지 실제인 듯 아닌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형태의 물방울을 표현했다. 1980년대 중반 시작된 ‘회귀’ 연작은 천자문을 배경으로 한다. 동양의 철학과 정신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활자의 선이 물방울에 반사되어 입체감을 부각한다.

Philippe Parreno, ‘56개의 깜빡이는 전등’, 2013
Philippe Parreno, ‘56개의 깜빡이는 전등’, 2013

이번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에선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개성적인 전시공간을 통해 느껴볼 수 있었다. 좋은 음식이 플레이팅을 함으로서 더욱 좋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플레이팅이 정말 잘 된 전시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작품들의 다채로운 주제와 소재도 재밌는 관람 요소였다. 또 하나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APMA의 전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것이었다. ‘설마 이것도 작품일까?’라고 의구심을 갖게 하는 공간에 작품을 배치하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여성적 이미지의 아모레와 남성적 이미지의 퍼시픽이 만나 상반된 의미를 가진 이름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뜻이 있다. 과거의 고미술과 동시대의 현대미술을 통해 일상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는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나새빈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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