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배터리 리스 방식으로 초기 가격 낮춘다
반값 배터리로 가격 낮아질 테슬라와 경쟁 '부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지난해 9월 열린 배터리데이를 통해 “18개월 안에 배터리 원가를 56% 절감하고 2만5000달러(약 2900만원)대의 전기차를 선보이겠다”고 말해 업계를 뒤흔들었다. 실제로 테슬라는 지난달 컨퍼런스 콜을 통해 하반기부터 생산 가격이 반 이상 저렴한 신형 배터리를 장착한 '모델Y' 차량 생산이 가능하다고도 밝혔다.

올해를 ‘전기차 원년’으로 삼겠다는 현대차로서는 테슬라의 이같은 행보는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에 대응하듯 현대차 역시 ‘반값 전기차’ 시대를 이끌기 위한 플랜을 내놔 주목된다. 전기차 가격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제외한 가격에 차량을 판매하는 이른바 ‘배터리 리스’ 사업을 통해서다.

현대차는 18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에서 산업통상자원부·현대글로비스·LG에너지솔루션·KST모빌리티와 ‘전기 택시 배터리 대여 및 사용후 배터리 활용 실증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테슬라 모델Y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테슬라 모델Y

이 사업에 따르면 택시 플랫폼 사업자는 전기차를 구매한 뒤 바로 배터리 소유권을 리스 운영사에 매각한다. 이후 사업자는 전기차 보유 기간 동안 월 단위로 배터리 리스비를 지급하게 된다. 사실상 사업자는 초기에 배터리 가격 만큼의 부담을 빼고 전기차를 구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전기 택시에 탑재된 배터리를 새로운 배터리로 교체할 때 확보되는 사용 후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만들어 전기차 급속 충전에 활용한다. 전기료가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ESS를 충전하고, 전기료가 비싼 낮 시간대에 ESS를 활용해 전기차를 충전해 비용을 절감한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2MWh급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에너지저장장치 모습 .
현대차 울산공장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와 연계한 2MWh급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 에너지저장장치 모습 .

현대차는 실증 사업을 총괄하면서 전기차 '코나 일렉트릭'을 택시 플랫폼 사업자인 KST모빌리티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보증과 교체용 배터리 판매를 담당하고 현대글로비스는 배터리 대여 서비스 운영과 사용 후 배터리 회수물류를 수행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사용 후 배터리를 매입해 안전성 및 잔존 가치를 분석한다. 또 사용 후 배터리로 ESS를 제작해 전기차 급속 충전기에 탑재하고, 해당 충전기를 차량 운용사인 KST모빌리티에 판매한다.

KST모빌리티는 전기차 기반의 택시 가맹 서비스를 운영하고 택시 충전에 ESS 급속 충전기를 활용하게 된다. 또 전기 택시 운행을 통해 수집되는 주행 및 배터리 데이터는 MOU 참여 기업에 제공하는 순환이 이뤄진다.

현대차 자체 개발 전기차 플랫폼 'E-GMP'.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 자체 개발 전기차 플랫폼 'E-GMP'. 사진=현대차그룹

◇ 전기택시에서 일반 구매자로 개념 확대는 가능...배터리 자체 가격 낮춰야 승산 비판도

이번 업무협약은 택시로 한정돼 있지만, 일반 구매자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대여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고객들은 배터리를 뺀 값을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어 전기차 보급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초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테슬라의 ‘반값 배터리’에 대항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배터리 리스 사업은 원래 배터리값을 차를 사용하면서 꾸준히 지불하는 것에 불과하다. 배터리 자체의 가격이 낮춰진 것이 아니라 선지불 해야 하는 것을 추후 상환한다는 개념으로 바꾼 것뿐이다.

추후 테슬라가 반값 배터리를 앞세워 차량 자체의 가격을 낮추고 시장에 선보인다면, 소비자들은 장기적으로 어떤 차를 구매하는 것이 메리트가 있는지를 비교하게 될 것이다. 과연 그때도 유리함을 가져갈 수 있을까?

현대차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테슬라가 배터리 가격을 반값으로 낮춘 상태에서 리스 사업까지 뛰어들때다. 동등한 입장이면 배터리 가격이 낮은 편이 훨씬 큰 장점이 된다. 국내 고객들이 보조금에 민감한 것을 고려해 차량 가격을 500만원 가까이 낮출 정도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테슬라가 리스 사업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현대차는 궁극적으로 테슬라처럼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최근 코나 일렉트릭에서 발생해 논란이 됐던 화재 등 안전성은 기본이고 성능도 더 좋아져야 한다.

테슬라보다 먼저 반값 전기차를 선보이겠다는 현대차. 그러나 소비자들은 미래에 낼 비용도 꼼꼼하게 계산해보면서 구매한다. 현대차의 ‘전기차 원년’의 포부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호 기자 dlghcap@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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