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코헤이 나와 '매니폴드' (우) 아라리오 갤러리 전경 / 사이트 이미지
(좌) 코헤이 나와 '매니폴드' (우) 아라리오 갤러리 전경 / 사이트 이미지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 신부동의 신세계백화점 앞거리에는 여러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어 다소 독특한 모습을 자아낸다. 데미안 허스트, 아르망 페르난데스, 키스 해링, 코헤이 나와, 수보드 굽타, 성동훈, 김창일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현대 미술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들의 작품들이 아라리오 광장에 전시되어 있다.

이 중 김창일 작가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기업가로 (주)아라리오의 창시자며 아라리오 갤러리의 설립자이다. 2016년 아트넷 세계 톱 100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김창일은 천안을 시작으로 서울과 상하이에 총 3개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각각의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제껏 다른 갤러리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실험적인 방법으로 해외 미술과의 적극적인 연계를 시도하고 체계적인 전속작가 시스템을 도입해 동시대의 국내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고 반대로 해외 현대 미술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도 및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지속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세계 각지의 현대미술을 국내에 알리고 보다 많은 대중이 미술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지역 미술계의 플랫폼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린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에선 충남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21명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주로 한 작가에 대해 전시를 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전시에선 충남 출신의 한국화 작가들의 작품을 광범위하게 접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은 3층과 4층으로 총 70여 점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 전경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 전경

‘돌 굴러 가유~’ 혹자는 충남을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 말인즉슨 느긋하고 담담하다는 의미인데 많은 사람들이 충남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언급되는 특징이다. 어떤 상황에 쓰이냐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마냥 나쁜 뜻은 아니라는 것을 충남 사람으로서 느낀다.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은 이러한 충남의 특성을 담고 있는 한국 근대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1950년대 작품부터 금세기까지 아우르는 본 전시에서는 작품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작가들의 고뇌가 담겨있다.

서양화와 조각,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현대 미술의 과도기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도 때문일까, 작품들은 충남의 특징과 어우러져 조용하고 정적이지만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정겨운 마을과 친근한 자연 풍경, 조용한 색채는 서정적이고 그리운 느낌을 주지만 각자가 겪었던 시대정신에 대한 고뇌가 엿보인다.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 : 해후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 전시장 외부계단과 티켓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 전시장 외부계단과 티켓

외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면 전면에 넓은 전시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 공간은 개방형으로 3층과 4층 모두 깔끔한 화이트 톤의 벽면이 오직 작품만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고 빛의 조절을 통해 명암을 조절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간단한 전시 소개와 전시 작가들의 이름이 큰 벽면에 쓰여 있어 전시를 관람하기 전 간략한 내용을 알 수 있게 해놓았다.

(좌) 청전 이상범, ‘설경’, 연도미상, 수묵담채, 24x83.5cm (우) 심원 조중현, ‘화조(석류도)’, 연도미상, 수묵담채, 65x89cm
(좌) 청전 이상범, ‘설경’, 연도미상, 수묵담채, 24x83.5cm (우) 심원 조중현, ‘화조(석류도)’, 연도미상, 수묵담채, 65x89cm

3층에선 청전 이상범과 심원 조중현, 유천 김화경, 백현옥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그중 근대 한국화의 거장답게 부드럽고 몽롱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거친 필선으로 산수를 표현한 이상범의 그림에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수를 찾아볼 수 있다.

화조화를 그린 조중현의 그림에선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지저귀고 있는 한 쌍의 참새는 사랑스럽게 그려졌으며 나무에 달린 석류는 농익어 속의 과즙이 탐스럽다. 세심한 농담 조절과 함께 필치의 수려함이 돋보이는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유천 김화경, ‘사계산수’, 연도미상, 10폭 병풍 수묵채색
유천 김화경, ‘사계산수’, 연도미상, 10폭 병풍 수묵채색

전시장 가운데 있는 병풍은 유천 김화경의 작품으로 사계절의 풍경을 대관 산수로 그리고 있다. 짙은 농묵으로 광활한 산수를 그려 더욱 웅장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병풍 앞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있는데 대다수의 사람이 앉아 감상하는 것보다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보고 의자의 필요성에 의문을 느꼈다.

데미안 허스트, ‘탑댄스를 추는 예수’, 1999
데미안 허스트, ‘탑댄스를 추는 예수’, 1999

또 다른 전시공간인 4층으로 올라가는 중간엔 아라리오 갤러리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탑댄스를 추는 예수’가 있다. 바람으로 허공에 떠 있는 해골의 눈은 계단을 올라가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좌) 장욱진, ‘마을’, 1978, 캔버스에 유채, 20x15cm (우) 고암 이응노, ‘산사’, 연도미상, 수묵담채, 48x63.5cm
(좌) 장욱진, ‘마을’, 1978, 캔버스에 유채, 20x15cm (우) 고암 이응노, ‘산사’, 연도미상, 수묵담채, 48x63.5cm

4층에는 40여 점의 조각, 설치,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이 세 부분으로 분할되어 있기 때문에 3층보다 동선에 다소 혼란을 주지만 각 작품이 가진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면 공간 분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 구역 중 가장 큰 공간에서는 단연 장욱진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화풍부터 시골의 정감을 주는 그의 작품은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 친근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실을 새롭게 보자’는 슬로건 아래 모더니즘적 사조를 띠는 ‘신사실파’를 결성한 장욱진은 자연 사물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내면에 대해 탐구했다. ‘마을’ 역시 언뜻 보면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처럼 쉽고 단순하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들여다본다면 모든 요소를 단순화시킴으로써 사물이 가진 본질적인 요소를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암 이응노가 그린 ‘산사’ 역시 눈길을 끌었다. 그림 속에 흩뿌려진 검은 먹은 마치 잭슨 폴록의 ‘가을의 리듬 : 넘버30’을 연상케 했다. 유화가 아닌 수묵을 사용해 그린 ‘산사’는 동양적인 현대 미술의 탄생을 알린다.

박영숙, ‘먼 길 떠난 할머니’, 198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4x67cm
박영숙, ‘먼 길 떠난 할머니’, 198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4x67cm

두 번째 공간은 황규태, 박영숙 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포토몽타주를 사용한 일련의 작품들은 한국 근대 미술의 새로운 시도를 나타낸다. 박영숙은 포토몽타주 기법을 통해 그녀의 페미니스트적 행보를 보여준다. ‘먼 길 떠난 할머니’는 과거부터 이어진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그로 인한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이 표현되었다.

(좌)김웅현, ‘Hell Bovine and Pony’, 2016, 혼합매체, 136x216x105cm (우)노상균, ‘For the Worshipers(Rainbow) #95-2-2’, 2001, 폴리에스테르와 유리섬유 불상에 시퀸
(좌)김웅현, ‘Hell Bovine and Pony’, 2016, 혼합매체, 136x216x105cm (우)노상균, ‘For the Worshipers(Rainbow) #95-2-2’, 2001, 폴리에스테르와 유리섬유 불상에 시퀸

마지막 세 번째 공간에선 설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두운 공간 속 허공에 달린 유니콘의 모습을 한 작품과 불상, 비디오는 근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매체의 확장을 보여준다.

「낯익은 해후 : 충남 작가 소장전」에선 충남을 대표하는 한국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근현대 미술을 떠올렸을 때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데미안 허스트 등 외국의 작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가 지속해서 열린다면 언젠간 우리의 무의식 속에도 우리나라의 작가, 작품이 먼저 떠올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천안 아리라오 갤러리의 가장 큰 이점은 접근성이라 생각한다. 천안의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데 용이할 뿐만 아니라 혼자 조용히 들려 작품을 감상하는데 편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 예술의 대중화를 바란다는 이념을 가지고 설립한 만큼 그것에 부합한 행보를 앞으로도 보여주길 바란다.

나새빈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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