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소설로 치면 성장소설인데, 압축적으로 대학 졸업 즈음이란 청춘의 한 시기를 포착하여 인생의 변태(變態)를 그려낸다. 영화 '졸업'을 텍스트 중심으로 파악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화면 중심으로 바라보면 후반부에 집중되긴 하지만 로드무비이다.

1967년에 개봉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은, 대부분의 영화 평론가나 애호가가 주저 없이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꼽는 영화이다.

부모에 의해 양육되고 그들의 여망에 부합한 삶을 산 벤자민의 엄친아적 수동성, 그리고 졸업과 함께 찾아온 좌표상실의 은유는 물이다. 물은 주인공의 성적 탐닉(耽溺)의 은유이기도 하다. 물은 헤엄쳐 건너거나 빠져죽거나 사이의 양자택일을 요구한다.

영화 '졸업' 스틸컷
영화 '졸업' 스틸컷

로빈슨 부인이 이 모든 물의 대표 격이다. 관능의 화신인 로빈슨 부인은 청년 벤자민에게 성애와 쾌락을 알려주는, 어떤 의미에서는 후견인이지만 더불어 금단의 열매이기도 하다.

로빈슨 부인은 동시에 1960년대 미국 중산층의 사회적 통념과 질서를 대표한다. 로빈슨 부인을 통하여 벤자민은 미성년기와 작별한다. 그가 맞닥뜨린 성년기는 불안과 무기력 대신 열정과 투쟁을 제안한다. 영화적 완성도와 결부된 동화적 구조는 많은 관객을 열광하게 하지만, 동화적 구조에 필수적인 이분법은 세계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세계의 진실이란 것은 말하자면 언제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법인데, 동화는 그것을 하나의 면 하나의 층으로만 그려내어야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졸업'은 좋은 영화이다. 영화가 철학을 담아내지만 철학 자체는 아니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좋은 영화이다.

일면적 세계 해석을 통해, 그 두드러짐을 통해, 그 결여를 통해 오히려 세계를 성찰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남성 중심적이란 한계를 갖지만 무엇보다 청춘의 '통과의례'의 전형성을 창출했다는 측면에서 영화사적 의의를 지닌다. 50년이 더 지났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매혹적인 영화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데에는 사이몬&가펑클의 영화음악 또한 한몫 하였지 싶다.

'The Sound of Silence', 'Mrs. Robinson', 'Scarborough Fair', 'April Come She Will' 등 영화와 잘 어울리는 그들의 노래가 영화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개봉 : 1971, 1988, 2020
감독 : 마이크 니콜스
출연 : 앤 밴크로프트, 더스틴 호프만, 캐서린 로스
상영시간 : 106분
등급 : 15세 관람가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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