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 역자 조이스박 / 출판사 녹색광선

살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결국은 누구나 젊음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사랑, 건강, 가족, 부, 명예와 같은 가치들이 행복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며 삶에 머물렀다가 사라지곤 한다.

피츠제럴드는 일찌감치 인생의 변성을 간파하고 탁월한 문장으로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였다. 환상을 좇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이르게 된다.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표면 아래 처절한 환멸의 구렁텅이도 잘 묘사하고 있으며, 수많은 단편 소설은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단편집 '행복의 나락'에 수록된 다섯 작품 속에서 환상과 환멸이라는 샴쌍둥이를 만날 수 있다. 주로 아름다운 여인을 좇는 남자의 환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을 좇는 여자의 환상(새로 돋은 잎) 역시 다루고 있다. 불과 세 시간에 걸친 환상과 환멸의 변주(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에 걸쳐 환상이 환멸로 변하는 경험 겨울 꿈과 오, 붉은 머리 마녀)도 실려 있다. 환상으로 시작해 환멸로 끝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서 환상에 환멸이 따라오는 전개는 시간순이지만, 우리 삶의 의미는 시간순과 무관하지 않은가. 환멸을 겪으면서도 환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물들을 창조해 낸 피츠제럴의 위대함을 조우할 수 있다. 퇴색되거나 잃어버린 것들과 마주한 순간 우리 자신에 정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리라.

이향선기자 hsle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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