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著 '예수가 완성한다' (사진제공=마인드큐브)
안치용著 '예수가 완성한다' (사진제공=마인드큐브)

서평 <예수가 완성한다>(안치용 지음, 마인드큐브)

이 책 1부 초반부에 이어령이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주변에서 욕먹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필자 안치용 또한 뒤늦게 기독교인이 되면서 비슷한 소리를 들은 일화가 나온다. 필자에게는 더 큰 의혹의 시선이 쏠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그가 그냥 기독교에 귀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학대학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2018년 2학기에 필자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스님이 되기 위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듯 세상과 완전히 단절한 것이 아니고 속세의 인연을 유지한 채 속세의 일을 병행하며 신학대학원을 다닌 것이기는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경악 그 자체였다고 필자는 전한다. 필자와 가까운 사람 중에 어떤 이는 "신학공부까지는 괜찮지만, 쪽팔리니까 제발 나중에 목사 한다는 말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는 이야기가 서문에 나온다.

기독교인이 되는 기쁨 중에 가장 큰 기쁨은 당연히 예수를 통한 인간과 세상의 구원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말한다. 부수적으로는 역사에 드러난 인간 예수와 그의 사유를 성찰하며 그와 대화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란다. 기독교인 되는 이러한 기쁨을 확인하면서 다른 기독교인은 물론 비기독교인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 애초에 필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 뒤늦게 기독교에 입문한 어느 진보주의자의 예수찾기 정도를 목표로 했다. 어떤 이들은 흡족해하지 않을 테지만 필자 안치용 방식의 간증인 셈이다.

그러나 집필 중에 원고작성의 방향이 살짝 바뀌게 된다. '개독교'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명확히 지시하듯, 이제 기독교는 더는 기독교가 아니고 기독교와 개독교로 분화한 상태이며, 개독교 안에는 예수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예수교'로 간주된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즉 세상이 기독교를 예수가 있는 기독교와 예수가 없는 '개독교'로 구분하여 파악하지 않고 통칭 기독교로 보고 있다는 데에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코로나 국면을 거치면서 신천지를 비롯하여 전광훈의 '광화문 교단'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능가하는 사회의 바이러스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가뜩이나 위태롭던 기독교의 위상은 더 추락한다. 또한 정부의 방역정책에 적극 협조하는 다른 종교와 달리 유독 개신교 일부 교회들이 종교의 자유 운운하며 주일예배를 고수하여 기독교는 더욱더 부끄러운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부끄러움을 외면하며 혼자 예수를 만난 기쁨을 논한 게 부끄럽다는 것이 필자의 고백이다.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마는 정말로 '진짜 예수'가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 필자의 진단이다. 여기저기서 마치 자신이 예수인 양 예수의 대리인인 양 신도들을 현혹하며 예수의 이름을 욕보이는 거짓 선지자들이 넘쳐난다. 특히 코로나19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야흐로 세계적인 재앙의 시대에 돌입한 이 때, 이들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으면서 사회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예견된 일이다.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50대 인문학』, 『선거파업』 등의 저술과 사회활동을 통해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를 탐색하여 더 나은 세상의 비전을 찾고자 노력하는 진보주의자 안치용은 '기독교인임이 부끄러운 세상'을 반성하기 위해 '진짜 예수'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지금의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보수주의 신앙이 입체적인 예수를 거부하고 '복음주의'라는 일면만 보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명징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빈틈 없는 논리를 전개하며 성경 속에 나타난 예수의 진면목을 드러내보인다. '예수는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는 신앙의 요체며, 믿음은 논리적인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복음주의의 논리조차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확고함을 통해 오히려 반박하고 있다. "예수가 잠자는 내 영혼을 힘차게 일깨웠음은 물론이고 내 사유의 강력한 근거가 되어주었다는 점은 적시한다"는 신앙고백의 그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천국'의 근시안적인 믿음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을 통해 역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치용은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해, 때로는 불경한 질문의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동일인이든 아니든 예수가 하나님의 기획 전체를 알고 있었다면, 부활하여 승천할 것까지 미리 계획하고 인지하고 있었다면, 그 십자가 사건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할리우드 액션'이 된다", "예수가 이중인격이라는 성격장애를 겪었을까.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또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그런 판단을 내릴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그런 판단은 예수에게서 신성을 완전히 배제했을 때 가능하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병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신앙의 존엄 앞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질문까지 차근차근 밟아들어간다. 거침없는 논리 전개로 이런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을 찾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힘은 결국 불경함을 파훼하는 단정한 논리로 승화한다.

이렇듯 예수와 하나님이 기독교인의 독점물이 아닌 모든 인류의 복음이 되기 위해 ‘교회, 교회정치, 교회관계, 교회네트워크’ 등을 넘어서 오직 예수에 집중한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인류 역사상 우리에게 명시적이고 확고하게 주어진 계시는 예수 외에 없다"며, "있어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원래 답의 정의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 진술은 예수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싶다"라고 진보주의자의 '예수찾기'의 치열한 결의를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의 신앙을 논리적으로 이해해보고픈 진보적 기독교인에게 전하는 '복음'이다.

"신은, 인간이 단박에 파악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내용과 행태를 제시할 수 있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그를 찾고자 하는 사람 앞에 그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기꺼이 보여주지만, 내 생각에 그 길은 항상 미로이다. 성서라는 인간의 언어로 된 텍스트 또한 그 미로의 한 형태다. 그중 계시의 가장 유력한 가능성의 하나로 제시된 현존 성서에서조차 해석의 무한한 다층성이 발견되며 그 속에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 아래 자신에겐 적합한 경로를 찾아 나선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꼭 성서를 통해서만 나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세계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성서로 그는 세계를 통해서도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다"

세상 혹은 (상식적인)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를 생각하는 안치용은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사회에선 주로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한다. 시민사회를 무대로 크게 두 방향의 일을 한다. 언론‧연구 운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SARKA)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지속가능성을 비롯한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공유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50대 인문학』,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세상에 희망을 일구는 사회적기업 63』, 『착한 경영, 따뜻한 돈』 등 약 30권의 저역서가 있다.

이윤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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