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바보같은 사랑을 한 남자와 용감한 사랑을 한 여자가 만나면, 영화 '화양연화'

발행일시 : 2020-12-15 09:25
영화 '화양연화' 포스터 <영화 '화양연화' 포스터>

사랑에 관한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말하라고 하면, 적잖은 사람이 <화양연화>를 들지 싶다. 나도 그렇다. 흔히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를 사랑과 이별에 관한 성찰로 소개하는데 '이별'은 빠져야 한다.

이별이 대체로 사랑의 중단 혹은 종료를 뜻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관점에 따라 이별은 사랑의 구성요소이거나 사랑의 연장이다. <화양연화>는 '대체로'가 아니라 '꼭 그렇지만은 않은' 영화에 속한다. 오히려 이별로 사랑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드문 예에 속한다고 해야겠다.
 
◇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위
 
<화양연화(花樣年華, 영어제목 In The Mood For Love)>는 기를 쓰고 악평하려고 시도해도 악평이 불가능한 영화이다.

2000년 개봉한 이 영화의 명성은 단적으로 2016년 BBC가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위'로 선정한 것에서 확인된다. 참고로 1위는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였다. 해외 언론의 <화양연화> 평 중에서 뉴욕타임스의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 사랑을 서정시의 형식으로 보여준다면, 그중 영화라는 영상언어로 표현할 거의 최대치를 <화양연화>가 구현했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 엇갈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
 
슬픈 사랑을 그렸음은 분명하다. 본원적 엇갈림을 깔고 시작된 사랑에서 두 사람은 통념상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동의하듯 두 사람의 사랑은 빛을 잃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말은 애초에 틀린 말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란 말 자체가 사랑의 성취를 내포한다. 사랑은 실패하지 않는다. 사람이 실패할 뿐이다. <화양연화>의 두 사람이 실패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왕가위 감독의 카메라 앵글은 실패한 사랑을 배척한다. 주인공 남녀만 영상에 나올 뿐 남녀의 배우자들은 목소리나 뒷모습 정도로만 그려진다. 왕가위 감독이 묘사한 영화 속 사랑의 세계는 전적으로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다. 사랑을 개념화하면 전적인 상호 대상화라고 규정할 수 있다. 서로의 시야에 한 사람만이 존재하는 상황을 왕가위는 영화에 설정했다. 그것이 전적인 상호대상화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영화가 묘사한 것과 같은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되는 힘을 얻는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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