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어설픈 FBI가 만든 끔찍한 세상, 영화 '그날이 온다'

발행일시 : 2020-12-08 14:00
영화 '그날이 온다' 포스터 <영화 '그날이 온다' 포스터>

배급사에서는 <그날이 온다>를 “비폭력주의 혁명가 ‘모세’(마샨트 데이비스)가 농장에서 쫓겨날 위기로 월세를 구하려다, 실적 꽝 FBI 요원 ‘켄드라’(안나 켄드릭)와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그려낸 예측불가 범죄 코미디”라고 소개한다.

짐작건대 마케팅상의 고려에서 비롯했겠지만, 이 영화가 추구한 강력한 사회비판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예측불가 범죄 코미디라는 표현에서 틀리지 않은 말은 ‘예측불가’이고, ‘코미디’는 아무튼 웃기기는 하니까 맞는 말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틀린 말은 ‘범죄’이다. 통상 FBI가 범인을 잡는다고 할 때, 또한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할 때 이 영화에서는 범인이 저지르는 범죄가 나오지 않는다.

영화 '그날이 온다' 스틸컷 <영화 '그날이 온다' 스틸컷>

그러므로 ‘범죄’가 틀린 말 같기는 한데, ‘A=A’라는 동일률의 함정에서 빠져나온다면 국가기관에 의한 범죄가 나오기에 결론적으로 범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경찰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형용모순이 이 영화의 기본구도이다. 나아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범인을 (범죄를 저지른) 경찰이 체포하여 감옥에 보낸다. 주체의 동일률이 무너진 반면 관계의 동일률은 유지된다. 반어나 풍자의 기본조건이 성립하는 셈이다. 이것을 비극으로 그릴지 희극으로 그릴지는 창작자의 선택이다.

영화 '그날이 온다' 스틸컷 <영화 '그날이 온다' 스틸컷>

영화는 의도에 부응했고, 작품성에서도 성공적이었다. 각본과 연출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모세 역의 신예 마샨트 데이비스가 자신의 몫을 다했고, 어떤 측면에서 모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인 FBI 요원 켄드라 역을 맡은 안나 켄드릭이 영화가 풍자의 힘을 발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극중 켄드라를 통해 관객은 한국 경찰에서 대공업무를 수행한 고문기술자 같은 비인간적 캐릭터에 비해, 평범하고 관점에 따라 ‘인간적인’ 미국 경찰 캐릭터가 결과적으로 더 사악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민주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국가기관은 언제나 그런 사악에 빠져들 수 있고, 때로 질주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Film Bunker) 코미디를 통해 새삼 인식하게 된다.

개봉: 2020. 12. 09
감독: 크리스토퍼 모리스
출연: 마샨트 데이비스, 안나 켄드릭
상영 등급: 15세 관람가
상영 시간: 87분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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