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준-김병서 감독의 영화 <백두산>은 극화하는 많은 방법 가운데 비교적 정공법을 택했다.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을 파멸적 재앙으로 몰아넣을 백두산 폭발을 상정하고 남한과 북한의 영웅적 인물들이 합심하여 최악의 폭발을 막아내는 스토리다.

일단 백두산이 분화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시작하기에 CG는 필수다. 분화 외에 폭발에 따른 연쇄적 재난인 지진·범람 등의 표현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영화의 성패의 첫 관문은 CG의 완성도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CG에 불만을 느끼지는 못했다. 극의 전개과정에서 약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 다른 말로 조금 과하다는 대목이 없지는 않았지만, 워낙 드라마틱한 CG에 익숙해져서인지 넘어갈 수 있었다.

영화 '백두산' 포스터
영화 '백두산' 포스터

다음 단계는 줄거리. 그것도 약간의 비약이 있지만 넘어갈 수 있었다. 백두산 밑 10·20·28·32km 지점에 4개의 마그마방(房)이 존재한다는 기존 탐사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아래에 있는 마그마방의 폭발력이 가장 크다고 설정하고 그 마그마방이 폭발하기 전에 마그마방의 옆구리에 구멍을 만들어 마그마방에 농축된 마그마를 (분화구가 아니라) 지하로 유출함으로써 괴멸적인 최후의 폭발을 막아낸다는 줄거리. 상식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다만 지하의 마그마방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서 마그마를 지하로 흘려보낸다는 해법이 실제 실현가능한 것인지는 전문가들이 따져볼 문제이지 싶다. 영화가 과학다큐멘터리가 아닌 한 그런 설정이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영화 '백두산' 스틸컷
영화 '백두산' 스틸컷

영화에서 미국은 한반도 비상상황에서 가장 큰 적대세력이고 중국 또한 적대세력으로 잠시 등장하며, 우호세력은 리준평으로 대표되는 북한이다. 한반도를 구하기 위해 영웅적인 희생을 결행하는 이는 북한군 리준평이며, 리준평의 딸을 자기 딸처럼 키우는 이는 남한군 조인창이다. 위기를 넘어선 뒤 복구작업 또한 남북한의 협력과 공조 속에 진행되는 것으로 극화하였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이익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했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 제작진의 국제정치 감각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한반도와 한민족, 가족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인공들의 주된 행동 동기를 설명한 데는 다소 ‘국뽕’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국제정치에 관한 냉철한 인식이 약간의 ‘국뽕’적인 취향과 어울리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자칫 ‘상업적 반미’라는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도 있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과 같은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미국이 실제로 영화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타의에 의해 원하지 않은 상황에 던져진 남북한 군인들의 행동 또한 충분한 개연성을 갖는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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