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 아름답고 빛나는 느와르의 걸작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발행일시 : 2020-09-08 15:40

영화 한 편을 보고 훌륭한 소설 한 편을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는 장르를 넘어서 매우 빼어난 작품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가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는 나아가 소설을 능가하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영화로 제작된 20세기의 서사시라고 불러도 좋겠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스틸컷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스틸컷>

이 영화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주인공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가 아편에 취해 웃고 있는 모습이다. 아편굴의 침상 위에 누워 천장 역할을 하는 얇은 막으로 된 덮개 아래에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으로 손색이 없다. 내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엔딩을 설명한다고 하여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직접 본 관객이 느낀 감정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다.

누들스의 운명의 여인으로 그가 평생을 사랑한 데보라(엘리자베스 맥고번)가 그들의 고향인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떠나기 전날 누들스가 데보라에게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 누들스가 홀로 바닷가를 서성이는 장면을 보자. 이 장면에서 어느 순간 지평선이 수평선으로 바뀌며 화면을 횡단한 수평선 아래에서 누들스는 잦아든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조금 지나 비슷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맥스(제임스 우즈)가 바닷가에서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가 서서히 화면을 횡단한 수평선 아래에 잠기는 장면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제니퍼 코넬리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 출연한 제니퍼 코넬리>

비슷한 두 장면에서 나타난 미묘한 차이는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한다. 우선 누들스에게 갈대밭이 만든 첫 번째 선과 바다가 만든 두 번째 선이 차례로 주어진 반면 맥스에게는 하나의 선, 즉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저편에 만들어진 수평선만이 주어진다. 누들스는 끝내 등을 보인 채이지만 맥스는 서성이다 관객과 관객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할 누들스 일행에게로 돌아서서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바다와 해를 등지고 서 있어 맥스의 시선을 파악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두 장면의 배경음악이 다르다. 누들스의 바닷가 장면에 깔린 음악은 '데보라의 테마'이고, 맥스의 바닷가 장면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타이틀 곡이 깔린다.

이탈리안 웨스턴의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음악은 마찬가지로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았다. 엔딩에서 대사 없이 깔린 음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타이틀곡이고, 엔딩의 엔딩 즉 누들스가 웃는 맨 마지막 장면에 흐른 음악은 ‘데보라의 테마’이다. 수평선이 나온 두 장면과 엔딩은 이 영화가 사랑과 우정에 관한 작품으로 누들스와 맥스라는 판이한 인물의 인생행로를 통해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었음을 말한다. 관객이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인물은 거의 이견 없이 누들스이지 싶다. 그는 삶으로부터 배신당하는데 때로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지만 삶을 배신하지는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맥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면이다.
 
1933년과 1968년 중 어느 시점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영화의 느낌이 달라진다. 1933년이면 갱스터무비 또느 느와르 장르에 근접하고, 1968년이면 드라마에 가깝다.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노년에 돌입한 1968년의 누들스가 1933년에 황망하게 떠난 뉴욕의 떠난 바로 그 장소에 돌아와서 차를 빌리기 위해 서류를 작성하려고 돋보기를 쓰는 장면이 장르 구분의 신호로 여겨진다.

사랑과 우정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던 시절, 욕망과 배신에 내몰려 젊음을 떠난 누들스. 그에게 35년은 정지한 시간이었고 증발한 나날이었다. 35년 만에 많은 것이 교직한, 아름답고 추한 것이 공존한 삶의 패브릭을 목도하면서 누들스는 비로소 35년을 회복한다고 하겠다. 엔딩의 웃음의 의미는 20대 후반 청년이 연인을 상상하며 퍼지는 사랑의 웃음이기도 하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초로의 달관의 웃음이기도 하다.

상영시간 : 251분
2015 .04.09 재개봉, 1984 .12 개봉
감독 :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 로버트 드 니로(누들스), 제임스 우즈(맥스), 엘리자베스 맥거번(데보라)
상영등급 : [국내] 청소년 관람불가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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