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희 컨설턴트
구경희 컨설턴트

54일간의 장마가 그치고 나니 귀뚜라미 소리가 계절을 알린다. 낮에는 제법 뜨겁기도 하지만 한여름의 더위와는 차이가 느껴진다. 계절만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2020년은 여름방학도 짧은 데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분위기라 입시생들의 고충이 배가 되고 있다.

대학 입시는 크게 수시와 정시로 나뉜다. 지금은 수시 준비가 한창이다. 수시 입시에는 주로 학교생활 기록부, 학생부 교과, 자기소개서, 추천서 등의 서류가 중심이 된다. 학생 입장에서 보면 자기소개서를 제외한 나머지 서류들은 이미 ‘손 쓸 수 없는 서류’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1학년부터 3학년 1학기까지의 모든 교과 성적과 활동들은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서류라는 의미이다.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발휘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자기소개서야말로 마지막 남은 본인의 필살기이다. 특히 서류 100%로 선발하는 경우 자기소개서 파워는 대단하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최후의 무기인 셈이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비법은 무엇일까? 모든 정답은 단순하다. 한때 자소서 문항 중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과 그 극복 과정을 쓰라>는 질문이 있었었다. 당시 학생들은 한결같이 자기는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면서 지금이라도 억지로 만들어야 하냐고 되물었었다. 자기소개서뿐만 아니라 모든 글의 기본은 정직이다. 진솔함이 빠지면 달걀 껍데기같이 맹숭한 글이 된다. 읽었을 때 걸리는 것은 없는데, 남는 것도 없다.

정직과 더불어 자기소개서를 잘 쓰기 위한 4가지 요소를 정리해 보았다.

① 솔직하게 쓰기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다. 한 치라도 거짓이 있다면 아무도 감동하게 할 수가 없다. 쓸 것이 없다고 지어낼 일이 아니다.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메모하다 보면 적어도 자기소개서 1번 2번 3번에 쓸 내용은 충분히 있다. 이 과정에서 메모는 필수이다. 추상적이고 뭉뚱그려생각 하면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학교 생활기록부도 기억을 되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② 구체적으로 쓰기

열심히, 매우, 잘, 이런 단어들은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의미를 모호하게 만든다. 무슨 경험을 했고, 그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극복 방법과 배운 점등을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글을 읽을 사람은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소개서로 처음 나를 만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써야 한다. 눈에 보이듯 구체적으로 쓰지 않으면 입학사정관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

③ 나만의 특별한 장점 부각하기

예를 들어 성실함, 부지런함 등을 설명하기보다는 학교 프로젝트나 동아리 활동 수행 중에 얼마나 창의적이고 집중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이롭다. 특정한 활동에 끈기 있게 집중하고 참여한 내용을 기술한다면 성실함이나 부지런함은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전공과 관련된 특별활동을 집중적으로 수행한 학생들의 합격률이 높았다.

④ 글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기

앞서 얘기했듯이 자기소개서를 읽는 사람은 나를 모르는 사람이다.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글로써 나를 온전히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거칠지만 나를 온전히 보여주는 글이야말로 화려한 글보다 매력적이다.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솔직한 글에서 나오는 글쓴이의 인품을 가늠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일주일 전 한 학생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를 읽어봐 달라고 했다. 처음 만난 학생이기에 개인적인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세 번을 읽었으나 전혀 어떤 학생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학교생활 탐방 기사를 읽은 기분이었다. 대략 두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은 지난 3년간의 학교생활을 상세히 기억해 냈고, 최대한 메모하였으며 본인도 잊고 있던 협업의 경험 등을 떠올렸다. 디자인을 전공하려는 학생이었는데 왜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지 ‘처음 결심한 순간’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했다. 학생에게 인터뷰 메모를 바탕으로, 위에 기술한 자기소개서 쓰기의 방법대로 다시 써오라고 했다. 수정이 아니라 다시 써보라고 했다. 사흘 뒤 이메일로 ‘새로 쓴 자기소개서’가 도착했다. 솔직했고, 구체적이었으며,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집요함이 아주 잘 나타나 있었다. 몇몇 표현들이 어색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것조차도 그 학생이니까 말이다.

자기소개서를 줄여서 자소서라고 한다. 워낙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해서 ‘자소설’이라고도 한다. 자기소개서에 자신의 긍정적이고 최적의 모습만을 담고 싶다 하더라도 ‘사과’ 같은 사람이 ‘포도’로 포장 되기는 어렵다. 아무리 유려한 단어를 쓴다 하더라도 ‘파란 사과’와 ‘빨간 사과’의 차이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아직 입시가 코 앞에 닥친 학생이 아니라면 근본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지향할 내 모습을 세우고 그 태도(Attitude)를 지키려 애쓴다면 자기소개서에 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를 지닌 학생이라면 누구보다 신선한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구경희 cesil1004@naver.com 대학 입시 및 진학 컨설턴트이다. 중고등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일방적 가르침보다는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존 버거를 존경하며 그의 태도를 본받으려 꿈꾼다. 진지하고 명랑 유쾌한 삶을 지향한다. 철학이 부재한 시대, ‘부모되기’의 어려움을 절감하며 부모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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