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치용의 시네마 인문학]20세기 할리우드 영화의 거장들이 페인트공인 된 이유, 영화 '아이리시맨'

발행일시 : 2020-08-24 09:35

'아이리시맨'은 영화로 작성한 미국 현대사의 연대기이다.

사건의 중심축은 1975년에 일어난 미국의 장기 미제사건 ‘지미 호파 실종사건’으로, 인생의 로드무비이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 출구를 마주한 사람이 갖게 되는 통찰 같은 섬광을 내비친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이고, 로버트 드 니로ㆍ알 파치노ㆍ조 페시가 주연이다. 이름들만으로도 영화의 윤곽이 그려지며, 20세기 할리우드의 대표적 영화인들이 남긴 비망록이도 한 영화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1942년생이다. 스코세이지 감독과 오랫동안 영화작업을 함께하였고, <아이리시맨> 또한 공동작업을 먼저 제안한 로버트 드니로는 1943년생으로 감독보다 한 살 어리다. 알 알 파치노는 1940년생, 조 페시가 1943년생이다. 20세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인인 이들이 인생의 종착점에 근접하며 함께 만든 영화가 <아이리시맨>이다. 실제로 조 페시는 사실상 은퇴상태였기에 이 영화 출연을 위해 복귀한 셈이다.

80살을 코앞에 둔 스코세이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로버트 드니로와 나는 70대입니다. 삶을 다르게 인식하게 되었고 영화의 재료를 바라보는 방향도 달라졌죠. 우리는 주인공과 그들의 주변 인물, 믿을 수 있고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의 인간성을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이 다룰 수 있어요. 이 영화는 신의, 사랑, 믿음, 궁극적으로는 배신에 관한 것입니다.”(보도자료)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황당하게 한국 정치사의 3김을 떠올렸다. 김대중(1924년생)ㆍ김영삼(1927년)을 먼저 보내고 지난해 숨진 김종필(1926년생)이 말년에 3김 시대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의, 사랑, 믿음, 궁극적으로는 배신. 한 마디로 인생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이 마지막에 배신을 배치한 이유는, 그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확언할 수 없지만 인간이 죽기 살기로 삶을 추궁하며 마침내 사랑하고 믿는 이들을 배신하기까지 하지만, 종국에는 삶으로부터 배신당하기를 결코 회피할 수 없다는 깨달음 같은 걸 반영하지 않았을까.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컷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컷>

영화 후반부의 한 장면. FBI 수사관들이 시런을 찾아와서 신의를 지킬 사람들 모두가 죽었으니 이제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달고 간청한다. 그러면서 누가 죽고 또 누가 죽었는지를 설명한다. 어떤 이의 죽음에 시런이 묻는다. “누가 죽였냐?” 수사관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암이 그랬다”고 대답한다. 관객들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 대목이야말로 스코르세지 감독이 말한 ‘궁극적인 배신’이 아닐까 한다. “Painter"는 서로가 서로에게 페인트 칠하며 어둠이든 밝음이든 삶의 한가운데서 죽어가야 “Painter"이다. 암에게 처단당한 말로(末路)는 “Painter"에게 삶의 배신인데, 궁극적으로 누구나 직면하게 된다. 이 영화의 내레이터 또한 “Painter"에게 당하지 않고 철저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화려했던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의 초입에 요양병원에서 자연사한다.

만일 인생이란 행로에 모퉁이 비스무리 한 것이 있다면, 이 영화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아서 출구를 마주한 사람이 갖게 되는 통찰 같은 섬광을 내비친다. 그러하기에 감독을 자신의 영화를 실내악에 비유했다.

이 영화는 맨 앞에 이야기하였듯 로드무비이며, 약간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여서 다시 표현하면 인생 로드무비이다. 동시에 20세기 할리우드의 대표적 영화인들이 남긴 비망록이기도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이들을 한 작품에는 보는 날은 더 이상 없지 싶다.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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