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PARASITE)

영화 '기생충' 포스터
영화 '기생충' 포스터

"'기생충'은 카프카 소설 속 인물들의 뭉툭하면서도 단호한 전형성, 그들을 닮은 인물들의 역사성과 사회성, 그것에 관한 생생한 아비투스 등을 기존과 다른 문법으로 포착한 디테일을 통해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다"

"서로 만날 일 없을 것 같던 극과 극 가족의 만남을 통해 예측불허의 웃음과 긴장감을 선보일 '기생충'은 현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까지 담아내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 것"(영화제작사)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선 굵은 전형성을 보여주는 데에도 성공한다. 선이 굵다고 디테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디테일이 넘치게 살아 있다. 후경으로 배치된 그 디테일은 인물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관한 생생한 아비투스를 다른 문법으로 포착함으로써 오히려 인물들이 자잘하지 않고 굵직하게 형상화할 공간을 열어준다. 그것은 카프카의 소설 속 인물들의 뭉툭하면서도 단호한 전형성과 닮았다.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불가해한 존재에 좌절하면서도 주어진 형이상학적 무게를 기꺼이 받아내려는, 최종심급의 존엄이 유머와 위트 속에 구현되었듯이 <기생충>의 인물들도 그렇게 그려진다.

불가해한 자신의 존재는 마찬가지로 불가해한 다른 존재와 대면하며, 소통불능 속에서 최종적으로 세계의 비참에 어떤 식으로든 맞선다. 봉 감독은 <기생충>에서 형이상학을 전면적으로 끄집어낸다. 그러나 그 형이상학은 철학이나 소설이 아닌, 영상의 형이상학이기에 아마도 극소수의 관객을 빼고는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이 형이상학은 동시에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우화이다. 본질적 고통 앞에서, 그 고통을 극복할 가능성이 전무하다면 인간은 고통에 진지해질 수 없다. 만일 누군가 거기에다 진지함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폭력은 오직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이어야 한다. 각성하였듯 본능에 따랐듯 권리로서 폭력은 언제나 억압받는 자에게만 부여되며, 억압하는 자들의 폭력은 비록 너무 드물게 일어나지만 철폐되어야 한다.

영화로 그려지는 형이상학과 우화는 그러므로 사회과학이 아니라, 예컨대 카프카 소설의 전범을 따라야 하는데, <기생충>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목격하였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세계와의 거리는 희극적 현현 속에 극복 불가능한 비극을 담았다.

영화는 수미상관으로 구성되었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보여주고 결코 회신을 받지 못할 말걸기(예를 들어 모스부호를 이용한 통신)를 시도한 뒤에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것은 하나의 원환으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보여주지만, 돌아와서 같은 자리인 듯한 그 자리는 사실 같은 자리가 아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듯 다르며, 해피엔딩으로 보이는가 하면 해피엔딩이 아닌 듯도 하다. 기생충과 숙주라는 이분법이 내재와 초월이 뒤섞인 흥미로운 영화적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다양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데에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냄새’도 상상할 수 있다.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31분
개봉 2019년 5월 30일
감독 봉준호
출연 송강호(기택), 이선균(동익), 조여정(연교) 등
관람등급 15세 관람가

안치용 carmine.draco@gmail.com 영화평론가 겸 인문학자로 읽고 쓰는 일을 하며 산다. 흔히 한국CSR연구소 소장으로 소개된다.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 집행위원장,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 등의 직책을 함께 수행한다. 언론⋅연구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 및 사회책임 의제를 확산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태는 한편 지속가능바람청년학교, 대한민국지속가능청소년단 등을 운영하면서 대학생⋅청소년들과 미래 의제를 토론하고 있다. 가천대 경희대 카이스트 한국외대 등에서 비전임교원으로 경영학과 언론학, 글쓰기를 가르쳤다. 경향신문에서 경제⋅산업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로 22년을 일했다. 학부는 문학, 석사는 경제학,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 <선거파업> <한국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등 30권 가까운 저⋅역서가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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