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영화간의연결고리④] 올여름 볼 만한 공포영화 추천

코로나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동안 어느덧 여름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역대급 더위가 예상되는 올해 여름에는 많은 관객들이 오싹함을 선사해 주는 공포 영화를 찾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한국의 대표 공포 영화를 꼽자면 단연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떠오르는데, 이 작품은 2003년에 개봉하여 17년째 역대 한국 공포영화 관객 수 1위를 지키고 있다. 한국형 공포 영화로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개봉 당시에도 흥행에 성공하여 임수정과 문근영은 큰 인기를 끌었으며 염정아 또한 배우로서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자매인 수미와 수연, 그리고 새엄마 은주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다루는 영화 ‘장화, 홍련’ 속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수미의 외삼촌 선규와 외숙모 미희, 은주, 그리고 아버지 무현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을 선택하고 싶다. 이 장면 속 선규와 미희는 신나게 수다를 떠는 은주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살벌한 분위기 속 침묵하던 미희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다. 미희는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고, 발작 중 그녀의 시선은 어두운 싱크대 밑으로 향한다. 선규와 무현은 미희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옆에서 서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은주 또한 갑자기 머리를 붙잡으며 비명을 지른다.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IMDB>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IMDB>

이 장면은 ‘장화, 홍련’의 중요한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바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이다. 어색한 식사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던 미희는 발작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선규에게 발작 중 싱크대 밑에서 여자아이를 봤다고 말한다. 미희의 발작은 연쇄반응처럼 은주의 히스테리를 불러일으켰고, 선규와 미희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은주는 싱크대 근처에서 미희가 목격했다던 초자연적인 무언가를 마주하는 듯하다. 선규와 무현이 보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는 은주와 미희를 괴롭히며, 그녀들이 느끼는 불안, 공포, 그리고 죄책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기에 히스테리로 표현된다. 뿐만 아니라 미희의 발작을 지켜보는 은주가 그녀와 함께 지르는 비명은 그녀들의 동질감을 암시한다.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장면 속 은주와 미희를 통해 묘사되는 여성들의 히스테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데, 수미와 수연 또한 영화 내내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지만 아버지 무현은 그녀들의 히스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무현의 그릇된 욕망으로 모든 비극이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고통받는 것은 그가 아니라 여성들이었다. 억압받는 그녀들은 끊임없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며, 미희와 은주의 발작은 그녀들의 고통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희와 은주가 목격하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는 그녀들의 자각이 얼마나 깊은지 상징하며, 둔감하고 무심한 무현과 대조된다.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IMDB>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IMDB>

‘괴로워하는 여성들’은 여러 문학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있다. 이 소설에는 종종 비명을 지르는 여성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남성 캐릭터들 중심으로 진행되는 줄거리 속 그녀들에 대한 고찰은 깊지 않다. 하지만 이런 묘사의 부재는 오히려 남성 중심의 사회 속 억압받는 여성의 고통은 남성 캐릭터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글로 쉽게 표현될 수 없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녀들조차 자신의 아픔을 형용할 수 없기에 절규하지만, 아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결국 ‘장화, 홍련’ 속 은주의 비명은 가부장적인 집안 및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반항이며, 두 자매와 새엄마 사이의 갈등은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사회 속 무너져가는 모습을 상징한다.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장화, 홍련'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이번 여름에는 '장화, 홍련'처럼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영화가 있을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미루었던 영화들이 관객들을 하루빨리 만나기 위해 대거 대기 중인데, 그중 한국 스릴러 영화로는 6월 4일 개봉을 확정 지은 송지효, 김무열 주연의 영화 ‘침입자’가 눈에 띈다. ‘침입자’는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초여름 관객들에게 오싹함을 선사해 줄 예정이다.

<영화 '침입자'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침입자'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침입자’는 사고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서진’ 앞에 25년 전 실종된 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유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유진’이 돌아온 후 가족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서진’은 동생의 비밀을 쫓다 엄청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장화, 홍련’이 비극적인 자매를 이야기했다면 ‘침입자’는 기묘한 남매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이번 여름 영화 ‘침입자’가 과연 한국 스릴러 영화로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해본다.

<영화 '침입자'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영화 '침입자'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정인혜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정인혜 기자는 미국에서 비교문학과 수학을 이중 전공하고 얼마 전 귀국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영화 마니아로 영화가 가진 매력을 하나하나 짚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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