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나 왜 스승의 날이 5월 15일인지는 모르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스승의 의미가 많이 변한 것처럼 스승의 날 역시 몇 번의 변화를 겪었는데, 현재의 스승의 날은 1965년 지정된 날짜로서 바로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이다. 세종대왕은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위인이자 과학, 예술, 정치, 언어 등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민족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면 왜 스승의 날이 세종대왕 탄신일인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히 한글을 비롯한 업적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그에 더해 한석규와 뮤지컬 한 편이 떠오른다.

뮤지컬 '세종 1446'이 바로 그것이다.

뮤지컬 '세종 1446'은 2018년 처음 무대에 올랐고 2019년 재연 공연을 보았다. ⓒ윤영옥
뮤지컬 '세종 1446'은 2018년 처음 무대에 올랐고 2019년 재연 공연을 보았다. ⓒ윤영옥

공연을 보고 난 후,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멍한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기 짝이 없는 긴 공연이었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감동적이었다.

형(정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 왕권 강화를 위해 왕위는 장자계승을 해야한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큰아들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하지만 양녕의 행실이 너무 방탕하고 폐륜적이라 태종은 양녕을 폐하고 셋째인 충녕대군을 세자책봉한다.

우리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건 그런 사실뿐이지만 뮤지컬에서는 그 사실에 '감정'을 넣었다.

양녕은 말한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술과 여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고.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보았으니…… 후에 동생이 왕의 자리를 괴로워할 때 환상으로 나타난 양녕은 나처럼 그 자리를 버리라고 한다. 양녕은 자신이 왕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담감과 두려움이 그로 하여금 현실 도피적인 행각을 하도록 만든 게 아닐까.

그래서 세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세자가 된 충녕은 세자책봉 두 달 후에 왕이 된다. 그가 바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왕 세종이다. 하지만 즉위 직후의 세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달랐다. 유약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들은 세종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상왕인 태종 역시 대신들의 말을 들으라며 압박을 한다. 조선은 왕이 아닌 사대부의 나라라며, 세종을 꼭두각시 취급하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국정을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이 정말 어찌나 밉고 화가 나던지.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이들은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 이익에만 눈이 멀었다.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아직은 힘이 없어 괴로워하는 세종에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곁에 있는 중전 소헌왕후인데 태종은 외척의 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중전의 아버지를 죽이고 중전의 어머니와 다른 가족을 전부 노비로 만들어버린다.​ 다른 것은 못 지켜도 중전은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세종은 그 약속도 지킬 수가 없었고 소헌왕후는 자신이 중전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가족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참 잔혹한 시대.

그런 왕후에게 태종은 묻는다.
"내가 원망스럽습니까?"

소헌왕후의 대답도 슬프다.
'제가 원망할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원망조차 할 수 없는 무력감이라니. 중전의 자리는 그런 것인가 보다. 그러니 조선 시대에 딸이 중전이 되는 것을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왕이나 왕세자가 비나 빈을 얻을 때는 전국에 금혼령이 내려지고 양반 가문의 딸 가운데 적당한 사람이 추려지고 마지막 삼간택까지 올라가면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한 나머지 두 명은 평생 결혼을 할 수 없었다고 하니 내가 부모라면, 내 딸이 중전이나 세자빈이 되는 것도 싫고 삼간택까지 올라가는 것도 싫었을 것 같다.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그렇게 소헌왕후는 부모를 잃고 좌불안석인 가운데 개기일식이 일어나자 달이 태양을 가리는 건 왕의 곁에 있는 왕후가 왕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뜻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대신들은 이걸 또 기회 삼아 중전까지 내치려고 한다. 그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다가 1막 마지막에 세종은 드디어 자신의 친정을 공언한다. 상왕인 태종에게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고 대신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할 것임을 밝히는 장면은 정말 핵사이다! 너무 속시원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내 예상과 다른 작품이었음을 알게 됐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제목이 '세종 1446'이어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그린 공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1막이 진행되는 동안 한글 얘기는 전혀 나오지를 않아서 언제 나오지? 언제 나오지? 하면서 봤는데 이건 그냥 한글 창제 하나만을 다룬 게 아니라 세종의 재임 기간 전체를 다루고 있었다. (물론 한글 창제도 나온다.)

​이 작품에서 신선하고 인상적인 인물은 장영실이었다. 개기일식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왕후에 대해 적개심을 가질 때, 장영실은 이건 그냥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외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장영실은 이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인데 조선이 조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명나라의 역법을 따르기 때문에 날짜와 시간이 맞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고, 그 진심과 재능을 알아본 세종은 장영실을 명나라로 국비유학을 보낸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장영실은 드디어 천문기구를 만들게 되고, 대신들은 또 이걸 트집 잡아 이 일은 명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살 것이고 그럼 조선은 위험하니 장영실을 죽이라고 상소한다.

세종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티고 있을 때, 장영실이 어려운 결심을 하는데 이게 역사와 전혀 다른 부분임에도, 굉장히 신선하고 그럴 듯했다.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것 때문에 세종이 정치적 위험에 빠지자 스스로 간의에 불을 지른다. 대신들은(그 중 특히 세종에 대한 원한이 있는 전해운은) 명나라 사신이 와서 그걸 보고 세종에 대노해야 하는데 보기 전에 불타서 아쉬워한다. 장영실은 천한 신분인 자신을 믿어주고 기회를 준 세종이 위험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세종의 큰 뜻이 꺾이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스스로 희생을 한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장영실의 마지막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많은 성과를 냈는데, 왕의 가마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곤장 맞고 파직 당하고 그 이후의 기록은 전무하다는 것이.

세종 역시 그렇게 총애하던 장영실을 (그동안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장영실을 지켜왔으면서) 왜 고작 그런 이유로 내쳤을까 의아했는데, 이걸 보니 어쩌면 장영실이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의 어떤 상황상 세종 역시 장영실의 의중을 알고 그랬을 것 같기도.

그렇게 장영실이 죽자 세종은 괴로워한다. 사랑하는 중전의 가족도 지키지를 못했고 자신의 뜻을 함께 이루어갈 장영실도 지키지를 못한 자책감에 시달린다.

​"사람을 죽여 사는 왕이 되지 않겠다.
사람을 살려 사는 왕이 되겠다."

이렇게 외치며 왕이 되었는데 자신의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자신은 오로지 백성을 위한 길을 걸었다 생각했는데 이게 과연 맞는 길인지 확신도 사라졌다. 왕의 자리란 이런 것인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소헌왕후가 말한다. 죄인의 딸로 살면서도 지금까지 생을 놓지 못한 건, 세종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어서였노라고.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그러니 길을 잃으셨거든 천천히 다시 살펴보시옵소서.
전하의 뜻이 길을 밝힐 것입니다."


세종은 백성들의 눈을 밝힐 문자를 만들기로 하고 한글을 만든다. 역시 대신들은 반대하고. 하지만 세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로지 백성들의 위하는 마음. 그 마음은 세종에 원한을 갖고 있던 전해운에게까지 전해진다.

세종은 전해운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 놀라는 그에게 세종이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나 자신을 경계할 수 있었다. 만일 나의 진심이 변하거든, 내가 다른 길로 가거든 얼마든지 나를 죽여도 좋다."

그 말을 남기고 세종은 밖으로 나가고 그곳에 남은 전해운은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적어 놓은 글을 읽는다.

"나는 들판의 이름 없는 꽃들을 부르고자 이 글자를 만든다."

비로소 세종의 진심을 알게 된 전해운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탄식한다.

"내가 벽에 갇혀서 그 가없는 은혜를 몰랐구나."​

​아! 정말 딱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너무 당연히 한글을 쓰면서 그 은혜를 모른다. 미세먼지 가득한 세상이 되어서야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을 알고 코로나19로 제약이 많은 삶을 살게 되어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듯이 우리가 한글을 편안하게 쓰는 한 그 소중함을 끝내 모를 것이다. ​그냥 세종대왕은 위대한 왕이지, 천재적인 사람이지, 훌륭한 임금이지.라고만 생각할 뿐 세종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어려움을 이기고 한글을 만들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세종은 계속 말한다.​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이다.
조선은 백성의 나라이다.

​백성은 이 나라의 주인! 이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갖는 것. 그 옛날, 문자는 권력이었다. 권력 있는 사람들만이 문자를 사용하고 지식을 나눌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그 '권력'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그 혜택을 지금도 우리가 누리고 있음을 두말할 나위 없다. ​한글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리가 한자를 쓰고 있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사회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땅의 민주주의의 시작은 세종대왕이었구나. 내가 그 가없는 은혜를 모르고 살았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인간 세종이 슈퍼맨이 아니었다는 것을 전달하려 한 거였다. 세종대왕은 익히 알다시피 너무도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 세종대왕은 너무 완벽한 사람이다. 세종대왕의 단점이라면 너무 편식이 심해서 고기만 먹었다는 거, 그래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거. 그런 거밖에 없지 않나. 어려서부터 책도 엄청나게 읽고 똑똑하고 카리스마 있고 뚝심 있고 추진력 있고 결단력 있고. '이 이상 완벽한 왕은 있을 수 없다!'를 보여주는 이상적 모델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세종도 많이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뮤지컬 '세종 1446'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HJ컬쳐

세종대왕이 위대한 이유는 많은 위업을 달성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고난을 견디고 이겨냈기 때문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 같아서 정말정말 좋았다. 내용도 너무 훌륭했지만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도 기대 이상! 음악도 무대도 좋았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작품이 오픈런 공연 아니라는 것. 이 작품은 정말 극장 용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되면 좋겠다. 공연 내용과 극장도 너무 잘 어울리고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도 많이많이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 되면 세종대왕이 생각나고,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한글이 생각나고, 한글을 생각하면 민주주의가 생각난다. 그러니 5월이 되면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윤영옥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윤영옥 기자는 우리나라에 현대 뮤지컬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공연을 보며 자라온 뮤지컬 덕후다. 서랍 속에 고이 간직했던 티켓북을 꺼내어 추억 속 뮤지컬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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