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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장르가 된 소설가 김영하, 대표 소설 추천

발행일시 : 2020-05-08 03:14

그 이름으로 장르가 된 소설가 김영하.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각색 참여,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각색상 수상),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원작자)을 통해 그의 작품을 간접적으로 접한 적이 있거나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등을 통해 얼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들 ⓒ윤영옥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들 ⓒ윤영옥>

김영하의 7년 만의 장편소설 ‘작별 인사’가 지난 2월 밀리의 서재를 통해 선공개 되었다.

자신이 휴머노이드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가 만들어지고 배아를 불법 복제해서 장기 이식을 위한 클론을 만들어내는 세상. 인간의 기술력이 진보하여 만들어낸 미래는 결국 인간의 종말을 가져온다. 지구에서 인간세가 끝이 나자 비로소 지구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구절은, 제발 예언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작별 인사 김영하(소설가) 저 | 밀리의서재 | 2020.02.12 ⓒ윤영옥 <작별 인사 김영하(소설가) 저 | 밀리의서재 | 2020.02.12 ⓒ윤영옥>

그때가 언제일지 가늠도 어려운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개연성이 있으며 김영하 작가의 여타 소설과 같이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어려운 흡입력과 가독성을 자랑하는 이 매력적인 소설은 밀리의 서재와 계약이 끝나면 일반 서점에서도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작별 인사’가 더 많은 대중에게 공개되기를 기다리며 본 기자의 취향에 의거한 김영하 소설 베스트를 뽑아 본다. (순서는 출판년도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6년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책의 제목은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프랑수아즈 사강이 법정에서 했던 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문학동네 | 1996.08.20 ⓒ윤영옥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문학동네 | 1996.08.20 ⓒ윤영옥>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등단한 지 오래되었는데 늘 '주목받는 신인 작가'로만 불린다는 억울함을 토로(?)한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은 그 누구도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는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지만, 작가 김영하를 오랫동안 주목받는 신인 작가의 범주에 묶여 있게 한 것은 바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강렬함 때문이 아닐까.

​화자인 '나'의 직업은 자살안내인이다. 삶을 살아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죽음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나'의 고객인 유디트와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단절된 관계와 황폐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작품 전반적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애련하거나 비통하지 않고 메마르고 관조적인 문체는, 오히려 허무한 삶과 매혹적인 죽음을 그려내는 데 더 효과적이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 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자살안내인이라는 소재는 소설적 허구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그 환상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 작품은 20여 년 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소설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제목만 읽어도 무척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살다 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어쩐지 모든 일이 뒤틀려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루종일 평생 한 번 일어날까말까 한 일들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나씩 하나씩 찾아온다. 내겐 오늘이 그랬다.”

위에 인용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면서 화자인 '나'의 말도 안 되는 하루를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아침에 면도하는데, 산 지 얼마 안 된 튼튼하기 그지없는 면도기가 툭 부러져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보통은 하루에 한 번만 일어나도 운이 없다고 할 일들이 연속적으로 '나'에게 닥쳐오고, 출근길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계단을 달려 내려가다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문학과지성사 | 1999.07.07 ⓒ윤영옥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문학과지성사 | 1999.07.07 ⓒ윤영옥>

'나'는 '그 남자'를 직접 도와주지는 못하고 경비에게 말해주거나 119에 신고하겠다고 하고 출근을 서두르는데 공교롭게도 경비는 순찰 중이었고 '나'는 휴대폰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에게 우연하면서도 불운한 사건은 계속되고 그 불운은 '나' 역시 엘리베이터 문에 끼는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그 사고로 '나'는 아침에 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가 어떻게 엘리베이터에 끼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구출된 후 그를 도와준 119 대원에게 물어도, 직접 119에 전화를 걸어도, 이웃들에게 물어봐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 온종일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그 의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결국 해결되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배우 권해효 주연의 TV단막극(베스트극장 제 392화, 2000년 2월 18일 방영)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황당한 에피소드가 가득한 한 남자의 불운한 하루로만 보고 웃어넘기기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의 처지가 너무 딱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서늘해지기까지 한다. 만약 내가 그런 사고를 당해도 아무도 나의 상황을 모르고,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른 채(심지어 도움받지 못하고 스스로 나와야 했을 수도) 바쁜 세상사에 묻혀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검은 꽃

‘검은 꽃’은 일제강점기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간 조선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멕시코 농장으로 팔려간 조선인들의 수난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후반부는 더이상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멕시코 이민자들의 후일담을 판타지에 버무려 그려내었으나 결국 그들의 쓸쓸하고 서러운 인생은 우리 아픈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검은꽃 | 문학동네 | 2003.08.20 ⓒ윤영옥 <검은꽃 | 문학동네 | 2003.08.20 ⓒ윤영옥>

이 기사를 쓰기 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들춰보니 이 소설 ‘검은 꽃’은 무척 좋아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시대적 배경이 같다. 스러져가는 나라의 백성들은 본국에서도 타국에서도 비극적 운명을 피하기는 어려웠다는 데에 마음이 쓰리고. 또 하나 ‘검은 꽃’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연수'와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이 겹쳐 보인다.

이연수가 고애신처럼 의병이 되어 독립 운동에 가담한 건 아니지만, 몰락한 왕족이었으나 여전히 양반의 허세를 버리지 못한 아버지와 달리 현실에 빨리 눈을 떠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개척해 나간 그 강인함이 그렇다.

 “그들이 떠나온 나라는 물에 떨어진 잉크방울처럼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TV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접하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불평불만을 반성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에 감사하게 된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우리나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나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그 암울하고 슬픈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준 그분들 덕분에.

◇오직 두 사람

‘오직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후 7년 만에 나온 소설집이다. 책 표지의 제목 아래 한 줄이 책의 전반적인 주제를 말해주고 있다.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

오직 두 사람 | 문학동네 | 2017.05.25 ⓒ윤영옥 <오직 두 사람 | 문학동네 | 2017.05.25 ⓒ윤영옥>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뿐 아니더라도 이 책에는 어두운, 우울한, 사는 게 뜻대로 안 되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고독, 그들의 어둠…… 하지만 그들만의 어둠이라 할 수 없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책 속 내용과 인물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되기 때문일 것이며, 그 공감의 근원은 소설 속 사건들이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한 일이고 내가 겪을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작가의 말 중에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하는 일. 그런 일이 닥쳐왔을 때 인간이 어떤 혼란에 빠지게 되는가를 미리 짐작해보고자 한다면, 이 책은 정답과 해답은 주지 못해도 적어도 그 고뇌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 맘대로 뽑은) 김영하 작가 대표 소설 네 권을 소개했다. 글의 분량 때문에 줄이고 줄여서 네 권이지, 어느 책 하나 대표작 아닌 것이 없다.

소설 외에 에세이 중에서 한 권을 뽑자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추천한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01.21 ⓒ윤영옥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01.21 ⓒ윤영옥>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 등을 겸임하며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과 인기와 지위를 누리다가 돌연 모든 것을 접고 한국을 떠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머무르며 생활한 이야기를 쓴, 말하자면 여행 에세이인데, 요즘에 유행하는 '○○에서 한 달 살기'의 선구자적 버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책에 낙서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어쩐 일인지 이 책에는 이 문장 아래 줄이 그어져 있다.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자기 운명에 대한 예언이 된다.

이름이 장르가 된 소설가 김영하, 대표 소설 추천

정말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그냥 책 읽기를 좋아하고 김영하 작가의 책을 좋아했던 내가 김영하 작가 책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책을 들춰보면서, 읽은 적 없으셨던 분들은 김영하의 소설 세계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작별 인사'를 기다리면 되겠다. 읽을 책이 많으니 '작별인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최근 ‘오래 준비해온 대답’으로 재출간되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 (김영하의 시칠리아) | 복복서가 | 2020.04.29)

윤영옥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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