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범죄가 끊이지 않으니 뉴스 보기도 무서운 세상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인가 하는 회의감에 강력 범죄자를 괴물로 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인간일 뿐 괴물이 아니다. 괴물이라 하면, 그들의 범죄가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은가. 괴물은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에 공감할 수 없고,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을 해할 수 있는 존재니까.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어느 괴물은 그들보다 나았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중심 캐릭터인 ‘괴물’ 말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대극장 창작 뮤지컬이다. 초연은 보지 못하고 재연 공연을 보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에 놀랐던 것은 '소재와 주제의 독특함, 신선함'이었다. 아무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창작 뮤지컬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15년 공연 티켓 ⓒ윤영옥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15년 공연 티켓 ⓒ윤영옥

지금까지 한국 대극장 창작 뮤지컬의 내용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됐다. ‘명성황후’, ‘영웅’, ‘선덕여왕’ 등과 같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아니면 ​사랑 얘기.

그 가운데 ‘프랑켄슈타인’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가 아닐 수 없는데 작품 속에서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적다.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리면서 초연보다 더 로맨스를 줄였다고 한다. 그래서 빅터 박사의 연인인 줄리아 역할의 비중이 ​매우 적다. 굳이 왜 연인 역할이 설정되어 있는지​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줄리아가 왜 그리 지고지순하게 빅터를 사랑하는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빅터를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는 설명이 부족해 보였는데 굳이 이 작품 속에서 '줄리아'가 필요한 이유를 찾자면 나중에 괴물에게 죽임을 당해 빅터를 괴롭게 만들기 위해서밖에 없는 듯하다.

2015년 공연 포스터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공연 포스터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앙리 뒤프레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우정도 조금 이해는 안 됐다. 초연 때도 그 부분이 약해서 재연 공연에 보강했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역시 뭐 때문에 앙리가 빅터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는지, 그 정도로 빅터가 앙리에게 감동을 주었나? 생각해보면 대체 어느 장면에서 그런 감정이 나타나는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자기 목숨을 구해줘서??라고 생각하려 해도 좀 과잉 감정 아닌가 싶다.

대사나 노래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내가 대신 죽을 테니 너의 큰 뜻을 이루길 바란다는 건데…… 암튼 뭐, 그렇다니 그런 걸로!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빅터는 자기 대신 사형 당한 친구 앙리를 되살리기 위해 '괴물'을 만들었는데 그 괴물과 서로 복수의 대상이 된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괴물은 자신이 겪은 비참한 삶에 대한 복수를 위해 빅터의 주변 인물을 모두 죽이고 또 빅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 괴물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에게 복수하느냐, 복수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니다.

​이 작품은 내게 인간의 조건과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실험실에서 깨어난 괴물은 빅터의 집사를 죽이고 빅터의 총을 피해 탈출한다. (처음에 집사를 죽인 건, 그가 처음부터 폭력적이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막 깨어난 직후라 자신의 신체와 힘을 ​통제할 수 없었고 낯선 환경에서 다른 대상들을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숲을 헤매던 괴물은 격투장의 하녀 까트린느의 목숨을 구해주고 격투장의 주인에게 잡혀 노예가 된다. 2막 초반부는 이 격투장 장면이 대부분인데 실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차마 볼 수 없이 끔찍했다. 격투장 주인 부부는 괴물을 짐승처럼 취급하고 학대한다. 그리고 계속 말한다.

“넌 인간이 아니야, 괴물이야!”

이 격투장 사람들과 괴물을 보며 생각하게 됐다.​ 상대를 죽여야 끝나는 게임을 시키고 즐기는 '사람'과 아무리 힘이 세도 결국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괴물' 중에 누가 더 인간답다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괴물에게 독약을 건네는 '까트린느'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까트린느에게 손을 흔드는 '괴물' 중에 누가 더 인간답다 할 수 있을까? ​(물론 까트린느가 괴물에게 독약을 주는 데에는 그 나름의 절박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인간들과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인간​보다 인간적인 괴물의 대비를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 고통 받고 배신 당한 괴물은 이런 불행을 겪게 만든 빅터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빅터 앞에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빅터의 누나 엘렌, 줄리아의 아버지, 줄리아 등 빅터의 주변 인물들을 차례차례 죽인 후, 자신을 찾으려면 북극으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괴물은 사라지고 빅터는 괴물을 죽이기 위해 북극으로 찾아간다.

​북극에서 만난 빅터와 괴물. 괴물은 기꺼이 빅터에게 죽어 준다. 난 괴물이 일부러 빅터에게 ‘죽어 줬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복수를 위해. ​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5년 공연 사진 / 이미지출처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괴물의 마지막 대사​가 정말 가슴 아프다.

“​주위를 둘러봐. 넌 이제 혼자가 되는 거야. 혼자가 된다는 슬픔. ​빅터, 이해하겠어? 이게 나의 복수야.”

​괴물이 빅터에게 복수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들에게 많이 맞고 모욕 당하고 학대 받아서가 아니다. 괴물은 외로웠던 거다. 만약 괴물에게 단 한 명만이라도 온정을 베푸는 사람이 있었다면 괴물은 빅터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괴물이 까트린느를 통해 처음 배운 것이 '손을 흔드는 행위'라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타인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이었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의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안에 갇힌 괴물이 작은 틈으로 손을 내밀어 독약잔을 넣어준 카트린느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왜 이리 슬픈지.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 읽은 책의 한 부분을 빌려온다. 강제윤 님의 '섬 택리지'​의 일부이다.

국제해양법은 사람이 사는 섬이라 해서 모두 유인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섬에 두 세대 이상 거주하고 식수가 있고, 나무가 자라야 유인도라 한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그 섬은 유인도가 아니다. 물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섬이라면 사람이 살 수 없으니 유인도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물이 있고 나무가 자라고 한 세대가 거주하는 섬을 유인도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보기에 타당하지 않은 듯한 이 규정은 사람살이(有人)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이기도 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니 사람이 살아도 홀로(한 세대) 사는 섬은 유인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감성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법조차도 사람살이에 대해 규정짓고 있는 기본 전제는 '함께 한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기본 조건을 박탈당한 괴물은 스스로는 인간이고 싶어 했지만 인간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을 만든 빅터에게 같은 형태의 고통을 주는 복수를 택했다.

​괴물 스스로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게 만들고 공연을 보는 관객에게 또한 인간​의 조건과 가치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정말 특별하다.

마지막으로 격하게 공감했던 빅터의 대사 한마디를 남겨 본다.

​"신을 믿어 지독하게. 하지만 그건 축복을 통해서가 아니야. 저주를 통해서지.
만약 신이 없다면 누가 이 세상을 이런 지옥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윤영옥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윤영옥 기자는 우리나라에 현대 뮤지컬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공연을 보며 자라온 뮤지컬 덕후다. 서랍 속에 고이 간직했던 티켓북을 꺼내어 추억 속 뮤지컬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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