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윤웅 IT전문 잡지 기자
길윤웅 IT전문 잡지 기자

오래전 한 사람이 생각이 난다. 모임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일이 터졌다. 맞은편에 앉았던 그가 내가 물었다. 그를 몇 번 보면서 상대에게 던지는 질문이 남다르다 생각했다. 남다른 질문을 좋아하지만 곤란한 질문은 싫다. 그가 던진 질문은 후자에 가깝다.

어느 대학을 다니지 않았느냐, 고등학교를 어디서 나왔는지, 나를 그때 어디선가 봤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갑자기 그가 왜 내게 그런 질문을 했을까. 그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할 성격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어느 대학에서 봤는지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하지 못했다. 뭘 알고 싶어 했던 걸까.

내 기억에 없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나를 안다’라고 할 때 몰려오는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치 취조하듯 물었다. 순간, 뭐지 싶었다. 대답 안 해 줄 것도 아니었지만 뭔가 미행을 당한 듯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걸 왜 묻는지, 그와는 그날 저녁 이후 연락을 끊었다.

이야기하다 보면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내놓고 싶지 않은 말도 있다. 가리고 싶은 것도 있고 드러내 놓고 싶은 것도 있다. 아직 그렇게 다 이야기하고 지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따라서 일에 따라서 질문과 답이 다르다. 그렇다고 거짓말은 아니다.

상대에 따라서 우리는 질문과 답을 가리거나 미룬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감정의 차이가 있고 그 높이를 같이 맞추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때 일은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궁금한 것들은 남겨두는 것, 그것이 긴장하게 하고, 서로의 신뢰를 더 갖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 알려고 할 이유도 없다. 기억은 한쪽으로 기운다.

한 2년 전에 블로그 안부 게시판에 누군가 글을 남겼다. 자신의 책을 보낼 테니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신인 작가로서 홍보하고 싶은데 출판사조차 신경써 주지 않는 현실에 본인이 나서서 책을 알리는 데 나선 것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읽고는 내가 전에 기자로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놀란 눈치였다.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이다. 무슨 일일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내가 감추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굳이 전에 무엇을 했었는지 이야기해 줄 것도 아니었다.

지금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가 더 앞선 질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알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한다.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 것조차도 꺼내놓으려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엘리 위젤은 198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이다. 그는 15살의 나이에 수감자 중 90%가 죽어 나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을 운명에 처했지만 1945년 수용소가 미군에 의해 해방되면서 극적으로 자유를 얻었다. 그 후 그는 공부하는 삶을 멈추지 않고 보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며 인권에 관심을 두고 활동해왔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 배움이라고 말하는 엘리 위젤, 변화를 이끌고 생각을 바꾸는 데 가르치는 일만큼 큰일이 없다. 그의 제자이며 조교로 활동한 아리엘 버거는 그런 엘리 위젤의 삶과 그가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책으로 옮겼다. 그 책이 <나의 기억을 보라>이다.

가르치는 삶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엘리 위젤은 우정의 최고 단계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상대에 대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남겨두는 것이 우정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엘리 위젤은 신비주의자들의 오랜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접근하는 법도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보지 말고, 마치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처럼 비슷하거나 친숙한 느낌 자체를 낯선 것으로 여기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내게 우정의 최고 단계는 서로를 끝까지 다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대신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놀라워하며 그 사람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99쪽, <나의 기억을 보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혹은 상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사는가. 무엇을 알려고 하는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모른 채 엉뚱한 것을 붙들고 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미루어 짐작할 일도 아니다. 모른다고 불안해할 일은 더 아니다.

길윤웅 yunung.kil@gmail.com 필자는 IT전문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한글과컴퓨터 인터넷 사업부를 거쳐 콘텐츠 제휴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진행 했다. 디자인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과 제작 활동에 관심을 갖고 산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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