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대답에 따라 죽음이 결정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당당히 진실을 말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살기 위해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철학을 이단이라 인정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쓴 모든 책이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질 것임이 선고됨에도 갈릴레오의 입에서는 판결에 대한 반박의 말이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위대한 과학자라고 하여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에 갈릴레오의 선택은 비겁해 보이기보다 인간미 넘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죽음을 영원히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병든 몸으로 '대화'의 속편을 집필 중이던 갈릴레오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시공간이 없는 곳이자 죽음이라 불리는 것을 향하게 된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의 갈릴레오에게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의 마지막 여정을 가이드 하여 주기 위해 찾아온다. 사후세계라 불리는 시공간 속에서 함께하는 여정 중에 갈릴레오는 프톨레마이우스, 프레디, 강도(사기꾼) 등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극이 진행된다.

험난한 여정을 지나며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자신의 신념을 부정하고 뒤따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스러움에 정신적인 괴로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갈릴레오가 여정에 올라 제일 먼저 만나는 인물은 코페르니쿠스다. 천동설이 절대 진리로 여겨지던 시기에 지동설을 주장해 자신이 새로운 진실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코페르니쿠스와 만나 대화하길 바라지만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오의 행동을 그저 박수와 칭찬을 위한 행동이라며 갈릴레오의 행동을 비난한다. 자신의 행동이 부정당하자 그는 코페르니쿠스도 자신과 다름없이 비겁하긴 똑같다고 말하며 자신의 선택을 변호한다.

그 후에 만나고, 생각하는 인물들도 비슷한 포메이션을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갈릴레오는 스스로가 한 행동을 부정당하기도 하고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꿈을 꾼다. 아직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이 많기에 그 꿈을 잠시 멈출지라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그러한 갈릴레오를 보면서 관객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기는 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처럼 열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극을 대할 필요가 있다. 삶을 위해 비겁한 선택을 했던 갈릴레오이지만 그가 끝까지 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를 충분히 빛나게 한다. ‘나도 그처럼 꿈을 꿀 수 있을까?’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여정의 마지막 재판에서조차도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진실을 부정하는 갈릴레오를 보면서 예수를 부정하던 베드로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세 번을 부정하던 베드로와 ‘모두 증거 하라. 태양이 돈다.’라고 마지막 재판에서 진술하는 갈릴레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하지만 뮤지컬 '최후진술'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곁에는 그를 지지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 윌리엄과 함께 한 여정을 통해 자극을 받은 갈릴레오는 드디어 진실된 고백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는 거짓됨이었으니.'

자신의 죄를 헛된 욕망이라고 말하던 갈릴레오가 진정한 죄는 자신의 눈과 입을 막던 거짓됨이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무대 위 윌리엄과 무대 아래의 관객 모두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제 내게 시간이 없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
나 이제 말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돈다

용감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에는 후련하게 하고 싶었던 말을 외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과 함께하게 된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외치는 그의 생생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관객들 역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여정을 함께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거짓을 부정하기도 하면서 갈릴레오의 모습 속에서 관객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현실과 끝없이 타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또다시 사랑에 빠지며, 누군가에게는 이런 나를 이해해달라고 외치고 싶은 그 인간적인 모습에 진실을 말하는 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에 살아가며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조금씩 쌓인 용기들을 통해 최후에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내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지금까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여정을 중심으로 하는 뮤지컬 '최후진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이 극의 묘미는 갈릴레오를 '영원히 살 수 있게' 하기 위한 무대 위 주인공을 이끌어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여정에 중점을 두고 보면 더욱 배가 된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 윌리엄은 1000명의 영혼을 인도하는 것을 임무로 받게 되고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여정 중에도 주머니에 연필과 종이를 넣고 다니며 혹시라도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쓸 이야기들을 메모해 둔다.

저승의 임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향하고 있는 모습은 갈릴레오 못지않게 꿈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윌리엄을 보여준다.

윌리엄은 천국으로의 임무 중 마지막 주인공인 갈릴레오를 위하여 재판에 끼어든다.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이드로서 정해진 규칙이 있었고 재판에 관여하면 아니 되었지만 윌리엄은 갈릴레오가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너 햄릿보다 비천하고 맥베스보다 소심하고
로미오처럼 독약을 마시거나 담을 넘지도 못해
너 브루노가 그리워도 죽음 앞에 작아지고
매일 아침 꿈에서 깨어나 또다시 꿈을 꾸는
나의 주인공 막이 내리기 전에
마지막 그 순간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

언제나 비극 만을 써왔던 윌리엄이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결말을 변경한다.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윌리엄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에게 하나의 시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쓴 희곡에서 주인공들에게 늘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다주었던 윌리엄이 자신의 삶이라는 무대에서는 결말을 바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윌리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이 공연의 색다른 면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윌리엄 역의 배우는 갈릴레오의 여정에서 나오는 모든 상대역을 연기한다. 이는 윌리엄이 모든 역들을 직접 연기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게 해준다.

비극만을 쓰던 작가 윌리엄의 마지막 이야기 주인공은 그의 작품 궤도를 멋지게 벗어난다. 분명 진실을 말하며 끝나야 하는데 갈릴레오는 계속해서 스스로 진실을 부정하는 힘든 길로 발을 들인다.

윌리엄은 정해진 것만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설정해둔 결말과는 다르게 향하는 갈릴레오를 위해 직접 개입을 하며 진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도와주고 주인공이 원하는 마지막을 보며 윌리엄은 벅찬 듯 울며 별이 된 자신의 주인공을 바라본다.

이처럼 극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느껴지는 대상은 날마다 다르지만 앞서 서술한 느낌은 2층에서 볼 때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별을 본다면 조명들이 하나 둘 켜져 별처럼 빛나고, 소품을 조금만 바꾸면 택시로 변한다.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윌리엄이 만든 작고 소중한 이야기를 지켜보는 기분은 무척이나 흐뭇하다.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뮤지컬 ‘최후진술’ / 이미지 출처 : 공식 SNS

처음으로 최후진술을 보러 간다면 중간에 갑자기 넘버에 맞춰 춤을 추는 관객들과 배우에 놀랄 것이다. 프레디가 외치는 'love is love'에 맞춰 관객들은 열심히 손을 움직인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지만 따라 하며 공연에 참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뮤지컬 '최후진술'의 재미있는 점은 관객의 선택에 따라 나오는 넘버와 등장인물이 바뀌는 것이다. 맨 앞자리 관객 중 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고ㅡ카타리나가 선택할 거야ㅡ 윌리엄과 갈릴레오 중 한 명에게 새장을 건네게 하여 윌리엄이 받았을 때에는 '아임 어 댄서'라는 넘버가 진행되고 갈릴레오가 받았을 때에는 '비극 작가'라는 넘버가 진행되기에 최소 두 번은 봐야 극의 모든 넘버들을 감상할 수 있다.

2인 극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하는 뮤지컬 '최후진술'은 극 중 배우가 무대 뒤로 퇴장해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아서 '배우 혹사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뮤지컬 넘버를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공연이 아닌가 한다. 100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무려 23개의 넘버가 있으니 뮤지컬 '최후진술'을 관람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넘버 하나 정도는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 마음에 드는 넘버를 찾고 배우들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선인 라이프&컬처팀 객원기자 lifencultur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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