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면 세뱃돈을 주기 위해 은행에 가서 신권(新券)으로 교환하느라 줄이 길게 이어졌다. 빳빳한 새 돈은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특별한 기분을 만나게 한다. 은행도 평상시에는 신권이 없고 명절 때도 교환 가능한 매수가 한정되어 어르신들은 일찍부터 서둘러 줄을 섰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 종이 화폐들이 사라지고 있다. 휴대폰 안에 넣어둔 신용카드가 플라스틱 카드도 먹어버리고 화폐 대신 결제를 한다. 버스나 택시는 물론 마트와 식당에서 종이화폐를 꺼낼 기회가 없다. 또 모바일뱅킹으로 자금이체가 단번에 되어버리니 은행에 갈 일도 없애버렸다. 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내는 혁명은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물물교환의 흔적이 남아있는 종이화폐를 디지털 화폐로 진화시켰다.

2차 세계대전 후 금본위제도를 시작하여 1971년 금태환성의 화폐가 아닌 은행 시스템으로 변화하여 금이 아닌 대출을 통해 화폐가 만들어졌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신용을 바탕으로 화폐를 만들고 대출을 통해 신용으로 창출된 통화는 점점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금본위제도가 탄생한 계기는 금화본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화폐의 가치를 금의 일정량 가치와 등가관계를 갖도록 하는 금본위제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나라에서 금화가 유통되는 금화본위를 유지하기 어려웠고 이를 보조하던 보조지폐와 수표의 비중이 높아지자 대중의 편의가 수렴되어 금본위제도가 붕괴했다. 이렇게 흔들리는 국제통화체제를 잡고자 생긴 것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이들은 미국 달러의 제한부 금태환과 고정환율시세를 매칭하여 안정을 찾았고 은행권의 발행액 제한을 두는 발권제도로 통화량을 관리한다.

문제는 점점 커지는 통화규모이다. 신용창출로 커지는 통화량은 적정량을 모른 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 역시 숫자로 이동되는 디지털 머니에 소비한도를 잃어버렸다. 과거에는 지갑 속에 들어있는 돈만큼 물건을 사고 없으면 다음 급여 때까지 절약하며 소비했다. 지폐를 쥐고 사용했던 때는 손에서 사라지는 지폐로 씀씀이를 조정했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도 쉽게 결제되는 신용카드와 손안에 뱅킹으로 숫자에 대한 감각이 없다. 예금을 모두 소비해도 신용으로 창출되는 부채를 채워 넣으며 소비를 한다. 한도를 모르고 사용하는 소비는 더 이상의 부채를 동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강제로 멈추게 된다. 사용하기 편리한 만큼 쉽게 만들어지는 신용불량의 상황이다.

세계의 기축통화국들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돈을 찍어내며 버틴다는 말을 한다. 이들 기축통화는 공급량을 조절하며 다른 통화가치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한도를 모른 채 만들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지난 2008년도 경험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바로 그런 것이다. 각 나라가 보유한 금의 양만큼 화폐를 가질 수 있고 중앙은행이 화폐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는 체계에 통화는 위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과 규모가 커진 경제는 물물교환의 수준이 아닌 보유한 통화량 이상을 요구했고 어쩔 수 없는 수요에 변화한 제도는 과도한 통화를 만들어냈다. 액면가를 그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공포를 준다. 태환의 의무를 벗어던진 화폐와 발권력의 독점이 만들어내는 폐해이다. 최근 우리는 가상화폐를 만났다.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도 없이 네트워크가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정부나 은행과 상관없는 거래를 한다. 가치를 보장하는 기준이 없는 화폐가 만드는 규모와 위험은 어느 정도인가.

김용훈 laurel5674@naver.com현 국민정치경제포럼의 원장이자 온 오프라인 신문과 웹에서 정치경제평론가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여권의 시와 에세이, 자기계발도서를 집필하여 글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사랑마흔에만나다’, ‘마음시’, ‘남자시’, ‘국민감정서1’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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