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밤 아주대 병원서...'세계 경영 신화' 영면 속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아주대병원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7년 3월 고 김회장이 서울에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뉴스1 DB)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아주대병원에서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7년 3월 고 김회장이 서울에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뉴스1 DB)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다.

김 전 회장은 이날 밤 11시50분 경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에세이집을 펴내며 1999년 외환위기로 해체되기 전까지 대우그룹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우며 세계 경영을 설파한 대표적 1세대 경영인인다.

고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귀국 후 아주대 병원에서 통원 진료를 받았으며 올 하반기쯤부터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억력이 서서히 감퇴하는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며, 평소 뜻에 따라 연명 치료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1936년 대구 출생인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우뚝 섰다가 외환위기 이후 부도덕한 경영자로 내몰리는 등 영욕의 세월이었다. 그가 일군 대우그룹은 한때 현대그룹에 이어 자산규모 기준 2위에 올랐으나 1999년 과다한 부채와 유동성 부족으로 해체됐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 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김 전 회장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대우그룹의 시초인 대우실업은 1969년 호주 시드니에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지사를 세웠다. 1970년대 경제성장과 중동 붐, 수출 호조에 따라 급격하게 사세를 확장했고, 특히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1972년에는 국내기업 수출 5위를 기록하는 등 파죽지세였다. 1975년에는 종합상사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는 45세 때인 1981년 대우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급격한 경영 확장을 이뤄냈고, 1990년대에는 해외에 역량을 집중시키며 세계경영을 본격화했다.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달러로 당시 우리나라 수출총액 1323억달러중 약 14%나 될 정도였다.

이처럼 승승장구한 그는 샐러리맨들의 우상이 됐고, 1989년 그의 자전적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적인 확장 전략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상황에선 독이 됐고,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당시 GM과의 마지막 협상,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모두 실패하면서 대우그룹은 해체에 들어갔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며 빈소는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유족은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다.

온라인뉴스팀 onnews2@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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