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영국신사, 매너 있는 신사이다. 과연 영국 남자는 모두 신사일까? 필자는 가끔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 생각해보곤 하는데 영국사람들의 매너가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일상 생활에서 종종 있다.

우선 문을 잘 잡아주는 것. 앞에 가던 남자가 나와 꽤나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잡고 있기에 일행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나를 위한 것이었다. 살짝 뛰어가 문을 받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니 ‘No problem’이라며 웃으며 가는데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감동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필자도 급하지 않은 이상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여유 있게 문을 잡아주려고 한다.

올해 초에 잠시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마트에서 뒤에 카트를 끌고 오는 사람이 있기에 내 카트를 안에 밀어 놓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었다. 내가 문을 잡자 뒷사람은 바로 카트를 밀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버렸고 그 뒤에 사람들은 문잡고 있는 나를 보고 슬슬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뛰어 주차장으로 들어가버렸다. 총 세대의 카트가 지나가면서 고맙다고 인사한 사람은 한 명이었고 아무도 그 문을 넘겨 받지 않아 도어맨처럼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문을 놓고 내 카트를 끌었다. 씁쓸하면서 안타까웠다.

카트를 지키며 기다려준 아이들이 너무 매너가 없다며 놀라워하는 데 차마 정말 매너가 없다고 같이 흉 보는 것이 민망해 엄청 바쁜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며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한국인들 매너도 좋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본인을 위해서 문을 잡고 기다려준 모르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없이 그냥 지나가는 행동은 하지말자. 먼저 기다려주진 못해도 기다려준 사람에 대한 인사는 해주는게 배려아닐까?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본인을 위해서 문을 잡고 기다려준 모르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없이 그냥 지나가는 행동은 하지말자. 먼저 기다려주진 못해도 기다려준 사람에 대한 인사는 해주는게 배려아닐까?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그 다음은 운전할 때이다. 영국은 좁은 길이 많다. 그래서 약간 넓은 1차선의 도로를 양쪽에서 차들이 기다리며 한 대씩 보내는 게 일상화 되어있다. 영국에 막 이사 왔을 때는 좁은 도로가 그저 답답해 보였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서로 먼저 가라고 하이빔을 켜주고 손 인사를 한다.

참고로 영국에서 차들이 하이빔을 켜는 경우는 양보 혹은 감사의 의미이다. 뒷 차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는 깜박이를 켜거나 뒷 차가 볼 수 있게 손인사를 하면 된다. 이런 문화가 익숙해서인지 좁은 보행자 도로를 지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부딪히거나 살짝 비켜서면 충분히 갈 수 있는 폭인데도 서로를 기다려준다. 가끔 먼저 지나가라고 서로 손짓하며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한다.

영국에 이사 와서 중고차를 구매한 후 처음 떠난 국내 여행에서의 충격도 잊지 못한다. 내비게이션를 찍고 길을 가는데 내비가 갑자기 우리의 위치를 아무 곳도 아닌 곳(Middle of nowhere)로 인식해 너무 당황해 길을 멈추고 내비를 한참 검색하고 있었다. 그 곳은 도로 한 가운데가 아니고 도로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있지 않았던 비포장 국도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갓길의 개념도 없는 비포장 길위에서 우리는 비상등을 켜고 검색 중이었던 것이다.

겨우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출발하려고 보니 우리 차 뒤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준 것이다. 옆으로 지나가려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었던 도로 폭이었지만 우리가 당황하지 않게 기다려준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한국이었으면 아마 욕을 한 바가지 배부르게 먹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도로. 저 1차선 도로를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서로 번갈아가며 기다리며 이동한다. 덕분에 차가 많이 막히기도 하지만 모두 경적한번 울리지 않고 기다린다.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도로. 저 1차선 도로를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서로 번갈아가며 기다리며 이동한다. 덕분에 차가 많이 막히기도 하지만 모두 경적한번 울리지 않고 기다린다. 이미지제공=게티이미지뱅크

물론 한국 사람같은 친절함도 있다. 지인의 경우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 뛰어오다 넘어져 무릎의 살이 깊게 패인 상처를 입었던 경험이 있다.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있었고 너무 피가 많이 나서 움직일 수가 없어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어떤 운전자가 차를 멈추고 달려와 상태를 보며 가까운 집들의 문을 두드려 지혈할 수 있는 응급처치 키트를 구해준 것이다.

혹시나 당이 떨어져 쓰러졌을 수도 있으니 먹으라며 사탕도 하나 입에 넣어줬다고 한다. 응급실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갈 수가 없어 한국인 지인을 기다렸다고 하는데 다치고 정신 없는 와중에도 이름모를 그 분에게 너무 감사했다고 한다.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 온갖 바디랭귀지를 사용해 사탕까지 입에 물려주고 한국인 지인이 오기를 같이 기다려 본인이 목격한 상황과 저혈당의 가능성까지 충분히 설명하고 지인이 탄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영국인은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위의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다양한 방식의 매너는 결국 기다림, 인내심이다. 영국사람들은 상대를 잘 기다려준다. 걸어갈 수 있도록, 지나갈 수 있도록, 정리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참아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정’은 세계 제일의 매너이자 배려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참고 기다림이 부족해 보인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더 빨리, 편하게 하고 싶어서 재촉하는 경항이 있다. 고마워하고 미안해 할 여유도 없이 바쁘고 급한 우리, 매너가 좋은 영국사람들을 부러워하기보단 ‘정’이란 소중한 품성을 가진 한국인으로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해보면 어떨까.

박지현 stephanie.jh@gmail.com 세 아이의 엄마이자 마이크로소프트와 렉트라 코리아의 열정적인 마케터로 일했던 워킹맘으로 현재는 영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좌충우돌 상황에서도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고, 영국에서도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위해 늘 노력하고 탐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칼럼은 Nextdaily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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