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은행에 돈을 넣어두면 일정기간마다 이자를 받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돈이 생기면 은행에 넣어 둔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는 은행에 돈을 넣어둬도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보관료를 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치 귀중품을 보관하면 수수료를 내듯이 예금을 해도 돈에 대한 이자가 아닌 비용을 지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니다. 스웨덴, 덴마크, 스위스,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최저금리를 버텨내다 마이너스 금리에 돌입했다. 시중은행은 지급준비금과 예치금에 가산되는 수수료를 중앙은행에 내야 하는데 이를 은행이 부담하다가 기준금리의 마이너스형세가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되자 가산되는 수수료비용을 예금자에게 바로 전가시켰다. 유럽 정부는 둔화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시중에 유동성을 늘리려고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글로벌 경기가 저성장 기조에서 침체의 국면으로 다가서자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부가 시중에 돈을 늘려 놓았지만 사람들의 움직임은 달랐다. 체감되는 불안한 경기에 돈을 쓰지 않고 저축을 늘리게 되어 정부가 의도한 통화량 증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은행은 예금과 대출이자의 차이로 얻어지는 예대마진의 수익률이 떨어지면서 급기야 저축 예금자에게 마이너스 금리의 비용을 떠넘기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과거에는 퇴직자들이 은행에 퇴직금을 넣어두고 이자로 생활비를 충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높은 이자는 별다른 투자기술이 없어도 은행에 돈을 넣어놓는 것만으로 원금은 건드리지 않고 다달이 생활비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금리가 사상 최대로 낮아진 요즘에는 이러한 기대는 상상할 수도 없다. 아예 이자가 낮은 은행을 찾는 대신 다른 투자처를 찾으려고 한다. 부동산이나 기업의 투자도 좋지만 경기가 예전만 못하니 불안한 투자 보다는 안전자산으로 몰린다.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금리로 거래되는 채권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전체 채권의 30%에 가까운 비중으로 늘어났다. 2014년 6월 이전에는 마이너스 금리의 채권을 찾아보기도 어려웠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고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이후 유럽에 마이너스 금리가 번지기 시작했다. 세계 경기가 침체 사이클로 들어서면서 경기둔화에 금리를 더 낮출 수도 있다고 하니 마이너스 금리가 더 확대될 것이다.

미국도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경기침체를 언급하면서 미국의 금리가 제로금리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18일 1.75%에서 1.5%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풀리지 않고 경상수지 적자는 더 커지고 일본의 수출 규제마저 일어나 금리의 하방압박이 진행 중이다. 우리경제 역시 저성장의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했고 미·중 무역 분쟁의 여파와 일본의 무역규제까지 더해져 금리하락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보관료를 내야할 만큼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글로벌 경기하방압력을 견뎌야 한다. 기축통화국도 아니니 금리 인하시 다가올 인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시장은 디플레이션을 호소하니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무력증이다. 급격하게 쇠락한다는 의미가 되니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에 다가서는 유동성의 의미를 다시 짚어봐야 할 것이다. 경기 침체를 앞에 두고 어떠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 수 없고 이것이 우리시장에 어떻게 반영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내리기 시작한 금리의 랠리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한국은행이 실효하한을 언급하며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이다.

김용훈 laurel5674@naver.com현 국민정치경제포럼의 원장이자 온 오프라인 신문과 웹에서 정치경제평론가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여권의 시와 에세이, 자기계발도서를 집필하여 글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사랑마흔에만나다’, ‘마음시’, ‘남자시’, ‘국민감정서1’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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