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3년 계약 기간 중 1년 반이 더 남아 있는 상태에서 ‘갑’이 기존 계약 관계를 끊겠다고 연락해왔다. 날벼락이다. 그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일찍 ‘배달’됐다. 수취 거부나 반송할 처지가 아닌 ‘을’이다. 갑은 매출 80% 이상을 차지하는 일이다.

다른 거래처를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다른 일을 찾으려 시장조사도 병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매 건 처리를 하면 다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반복되었다.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시점이 다가왔다. 그런 날을 맞기 전에 우리 스스로 일을 더 하지 않겠다고 끊었다.

직원들도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챘다. ‘갑’은 자신들과 지분 관계에 있는 계열사가 만든 회사에 기존 직원을 끌어들여 우리가 하는 일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두 명의 직원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둘은 개인적 사유, 공부와 휴식을 위해 쉬겠다는 이유를 사표에 썼다. 그 이유는 변명이었다. 사실대로 쓰는 사직서가 얼마나 되겠는가.

옆 건물에서 나오는 그들과 얼마 후에 마주쳤다. 쉬겠다고 한 직원들이 그 건물에서 나왔다. 기존 일을 잘 알고 있는 직원을 데리고 가는 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야근하지 않던 직원이 며칠 야근을 했다. 작업 파일은 그들의 외장 하드에 옮겨졌고 그렇게 작업 목록이 있는 내장 하드디스크는 깨끗하게 정리됐다.

할 수 있는 만큼 잘해줬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게 옳다. 반박할 게 없다.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인정되지 않는 불편한 현실과 마주했던 그날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계약 관계를 끊겠다고 한 ‘갑’의 통보보다 쉬겠다고 하면서 그만두고 나간 직원이 점심 먹으러 나오던 그날이 아팠다.

아픔은 이제 아물었다. 매달리며 그 일을 계속했다면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었을까, 더 나았을까. 직원들이 더 남아 있었다면 더 잘 대해줬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봤다. 상처가 아물면서 아팠던 기억은 삶의 거름이 되었다. 터질 일은 미리 터지는 게 좋다.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터지는 것보다 회복할 시간이 있는 상황에서 고통을 마주하는 게 더 낫다.

우리의 뜻과 다르게 그들의 결정으로 버려졌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친한 관계로만 일을 유지할 수 없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게 세상이다. 할 수 있을 만큼 했다면 다른 길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직 한 길로만 걸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일본 영화를 좋아한다. ‘NO Japan 운동’에 욕먹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때리고 부수는 것보다는 잔잔한 감성 영화가 좋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가 좋다. 그런 면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 내게도 가깝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하지 않는 영상의 흐름을 훔치고 싶다. 그런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어머니 역할로 종종 등장하는 배우가 있다. 지난 2018년에 일흔다섯의 생을 마친 키키 키린이다.

키키 키린은 <걸어도 걸어도>에서 주인공의 엄마 역할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영화를 찍었다. 이후 몇 편의 영화에도 어머니의 역으로 나온 키키 키린, 삶의 순간에 느낀 삶과 죽음, 사람과 인연, 직업 등에 관한 생전 인터뷰 중 인상적인 대목을 담은 책이 나왔다.

키키 키린은 일과 돈에 욕심내지 않고, 아픈 것에 대한 기억으로 지금 삶을 괴롭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온 병을 유쾌한 농담으로 만들며 상대를 편하게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가짐으로써 불편해지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을 줌으로써 편해지는 삶을 선택했다.

그녀에게 찾아온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니 그조차도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부수지 않고 그 안에서 뭔가를 해보겠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빠르다는 사실을 그녀의 인생 메시지를 통해서 배운다. 아픈 것을 두려워하고 빼앗길 것에 대한 염려로 다가올 삶을 망치지 말자. 아직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더 남아 있다. 충분히.

창조라는 단어의 ‘창(創’이라는 글자에는 ‘상처’라는 뜻이 있습니다. 반창고의 ‘창’도 이 글자를 쓰죠. 새로이 뭔가를 만들려면, 일단 부순 뒤에 만들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무언가에 상처를 내면서 그걸 다시 복원해간달까요.-214쪽, <키키 키린-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길윤웅 yunung.kil@gmail.com 필자는 IT전문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한글과컴퓨터 인터넷 사업부를 거쳐 콘텐츠 제휴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진행 했다. 디자인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과 제작 활동에 관심을 갖고 산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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