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사회장으로 영결식...장례위원장 장상.권노갑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향년 97세로 소천했다. 사진은 2016년 9월7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 도서관에서의 이 여사. 출처=뉴스1 DB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향년 97세로 소천했다. 사진은 2016년 9월7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 도서관에서의 이 여사. 출처=뉴스1 DB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향년 9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날 김대중평화센터는 "이 여사가 ㅇ늘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이화여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시 여성으로선 보기 힘든 인텔리였다. 또한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무 등 1세대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 여사가 2세 연하의 김 전 대통령과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첫 만났다. 이 여사는 10년 뒤 첫 부인과 사별한 김 전 대통령을 우연히 다시 만나 1962년 운명적인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 여사는 이후 지난 2009년 DJ가 서거할 때까지 47년간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를 함께해 온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미국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서 DJ의 정치 역정에 든든한 동반자였다 .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DJ가 진주교도소에 구금되자 이 여사는 진주와 서울에서 일주일씩 지내며 남편 곁을 지켰다. 이 여사는 수감 중인 남편에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구명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운동을 벌였다.

이 여사는 청와대에 입성해 안주인이 된 뒤에는 여성과 아동 인권 신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의 정부에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된 데 대해 "이희호 여사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늘 공식석상에 남편과 함께 했다. 2007년 재보선과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전남 무안·신안 지역에 출마한 차남 홍업씨를 위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휠체어 투혼'을 발휘하며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이 여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DJ가 서거할 때까지 37일간 병상을 지키면서 지극정성으로 DJ를 간병했고, 줄줄이 찾아온 문병객들을 정성스럽게 맞이했다.

이 여사는 지난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생의 반려자이자 동지로 47년간 함께 했던 DJ를 떠올리며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안겨 보내 이를 지켜본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 여사는 DJ 서거 이후 홀로 남았지만, 민주진영의 대모로서 당시 야권이 어려울 때 지원군으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진보진영이 분열할 때는 DJ의 유훈인 통합을 강조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얼어붙을 때는 "햇볕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여사는 생전에 2000년 6·15 남북정상 회담 때와 2011년 12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 2015년 8월 북한 어린이들에게 모자와 장갑 등 물품 전달 등 3차례의 방북을 하기도 했다.

고(故) 이희호 여사 장례는 오는 14일 사회장으로 치뤄지며,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이다. 장지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가 맡았으며, 장례위원장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과 권노갑 민주평화당 고문이다. 여야 5당 대표는 장례위 고문을 맡는다.

온라인뉴스팀 onnews2@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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