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열풍이 심상치 않다. 2016년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면서 중앙 정부 '큰 우산' 아래 지방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업체를 육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로봇 산업 등 자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제조업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시스템 반도체 수요도 폭발하고 있다. 국내에는 중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반도체 회사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반도체 굴기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투자 역시 만만치 않다. 중국 시스템 반도체 열기와 한중 간 경쟁력 격차를 점검한다.

△中,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급성장=시스템 반도체는 정보를 저장하는 역할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정보를 해석·계산·처리하는 반도체를 말한다. 전자 기기의 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를 비롯해 렌즈로 들어온 빛을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이미지로 보여주는 이미지 센서, 스마트폰 화면에서 터치 기능이 가능하도록 돕는 터치 센서 등이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약 70% 비율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크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은 13%다. 2010년 점유율이었던 5%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인텔, 퀄컴 등을 보유한 미국이 2010년 이후 약 70% 점유율을 확보하며 부동의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위인 대만, 뒤를 잇는 유럽, 일본 등의 점유율이 점차 줄어드는 사이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중국의 점유율 상승세는 지역 내 시스템 반도체 기업 수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 중국반도체협회(CSIA)와 KOTRA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시스템 반도체 기업 개수는 2010년 582개사에서 반도체 굴기 정책을 선언한 해인 2016년에 1362개로 크게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1698개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내 시스템 반도체 회사는 하이실리콘과 유니SOC(UNISOC) 등 양대 회사가 이끌어가고 있다. 하이실리콘은 화웨이 자회사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기린' 시리즈와 5G 모뎀 칩 발롱5000 등을 화웨이에 공급하면서 연 6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니SOC는 칭화유니그룹이 2013년 미국 시스템반도체 업체 스프레드트럼을 인수하면서 만든 회사로, 인텔과 협력 중단·영업 손실 등 부정적 이슈가 있지만 규모 면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양대 회사 외에 새로운 기업이 늘어나면서 제품 종류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게다가 성장률까지 높아지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올위너의 차량용 AP, 록칩의 AI 스피커용 AP, 구딕스의 지문인식 센서 분야 등 사업 형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지난해 성장률이 가장 높은 시스템 반도체 기업 5군데 중 4곳이 중국 회사(비트메인, ISSI, 올위너, 하이실리콘)일 정도다.

이병인 한중시스템IC협력연구원장은 “칭화대학교, 베이징대학교 등 내수 시장에서 공부하고 있는 우수 인력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일하거나 유학하고 온 인재들의 '리턴' 현상이 일어나면서 창업과 인력 수급에도 탄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 정부 지원에 폭발하는 '내수 시장'=중국 시스템 반도체 업계가 빠른 시간 내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부의 과감한 지원 정책과 탄탄한 내수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현금이 흐르는 구체적 경로는 추정할 수 없지만 중앙 정부가 큰 우산이 되어 투자 자금을 만들면 각 지역에서 정책으로 시스템 반도체 회사를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선전시는 지역 내 평산신구를 반도체 특화단지로 하는 '2018년 제3차 반도체 산업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매년 850억원의 지원 기금과 5100억원 펀드를 조성했다. 5㎢ 면적 반도체 특화 단지 내 50~90% 건물 임대료를 지원한다. 설계 툴과 테스트 장비 투자비의 50%를 지원하고 파운드리가 여러 시스템 반도체 기업의 시제품 칩을 생산하는 MPW(멀티 프로젝트 웨이퍼) 사업에도 사업비 80%를 지원한다. 단지 내 소재 완제품 기업이 입주사 시스템 반도체를 살 수 있도록 최초 구매시 8억5000만원 한도 내에서 50%를 지원한다.

난징시는 28㎚ 이하 미세공정 제조라인 투자를 지원하고 미세전자제어기술(MEMS) 센서 기술에 특화해 지원한다. 우시에서는 2016년 집적회로(IC) 산업 발전 가속화 계획을 발표한 뒤 납세 우수 기업에게 연 1억700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거나 매년 10건의 중점 기술 개발 사례를 발굴해 5억원 이상 장려금을 지원한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 시스템 반도체 지원이 반도체 굴기 정책 이후 이뤄졌다고 하지만 사실 10여년 전부터 있어왔다”며 “정부의 꾸준한 육성 정책이 지금의 성장을 가져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발하는 내수 시장도 중국 시스템 반도체 성장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대기업 수요에 국한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시장 상황과는 달리 AI, 5G, IoT 분야에서 골고루 창업 열풍이 일어나면서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중국 글로벌 시장 점유율 13% 가운데 중국 하이실리콘, ZTE, 다탕 등 내수 시장 칩 거래를 빼면 7%로 감소할 정도로 국가 내 거래가 활발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내 다양한 전방사업이 있고 완제품 기업이 칩 회사 영역을 침범하기 보다 시장 파이를 키운다는 철학을 갖고 사업에 임한다”며 “주요 고객에 맞춤 제품을 지원해 수요에 제한이 생기는 한국 시장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시장에서 칩 '내재화'가 이뤄지다보니 중국에 진출해 있던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체 상황도 쉽지 않다. 지난해 10대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상장사 가운데 절반이 적자를 기록했는데 업계에서는 주요 이유로 중국 시스템 반도체 시장 급성장을 꼽을 정도다.

한 시스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처음에는 중국 내에서도 자국 제품을 신뢰하지 못하다가 하나둘 사례가 늘면서 입소문이 나자 이제는 다수 업체가 '„œ시'를 내세우며 자국 제품만 쓴다”며 “터치 센서의 경우 국내 업체 기술 수준 90%까지 따라잡았는데 가격은 30%정도 낮으니 당할 재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슈분석]"중국은 뛰는데"…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는 구멍 '숭숭'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와 함께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굴기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국내 업체들은 열악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의 꾸준하지 못했던 투자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시스템 반도체'를 콕 집어 언급하면서 관련 분야 육성 의지를 드러내자 업계에서는 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이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9년 만에 두자릿수 점유율을 기록하는 사이 국내 업체 글로벌 영향력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세계 50대 시스템 반도체 업체에 랭크된 국내 기업은 수년째 LG그룹 계열 실리콘웍스 단 한 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국내 업황은 갈수록 좋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상장사 매출 기준 상위 10개 기업 중 절반이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1곳, 2016년 4곳, 2017년 4곳에 비해 적자 폭과 업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가 부진한 이유로 꾸준하지 못했던 정부 투자를 꼽는다. 2000년대 초부터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불균형 해소'를 모토로 지원해왔지만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연구개발(R&D) 투자는 인력과 기술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실제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편성한 반도체 분야 R&D 비용은 △796억원(2011년) △775억원(2012년) △727억원(2013년) △599억원(2014년) △561억원(2015년) △356억원(2016년) △314억원(2017년)으로 매년 삭감됐다. 지난해 344억원에서 올해 456억원으로 소폭 올랐지만 10년 전보다 턱없이 부족해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게다가 설계 툴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 반도체 핵심설계인력양성사업도 2003년부터 226억원이 지원됐지만 매년 삭감돼 2015년부터는 '뚝' 끊겼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 덕분에 그나마 삼성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나 LG전자의 디지털 TV 구동 집적회로(IC)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장기 지원이 부족해 인력이 고갈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은 아쉽다”고 전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언급하면서 업계에서는 정부 관련 사업 육성 정책이 조만간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모바일, 디스플레이 부문에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한정됐지만 5G 및 인공지능(AI) 시대가 개화하면서 시장 호황과 정부 지원이 맞물려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은 만큼 인력 문제 해소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인력 고갈 상황은 1~2년 투자해서 해소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10년 단위 장기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대학교 설계 과제 선정으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설계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젊은 인력들이 사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수억원대 설계 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에 뛰어들지 못한다”며 “인터넷 망처럼 기초 인프라는 꾸준히 지원돼야 미래를 짊어질 설계 인력도 배출된다”고 강조했다.

강민선 기자 (mskang@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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