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요즘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최근 지인이 중고등 학생을 위한 진로 활동 ‘사람 책’ 자원봉사를 부탁했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자신의 강약을 알고 앞서가는 사람을 보며, 아직 이러고 있어도 괜찮나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크다.

초등학교 운동회 종목 중 줄다리기와 계주는 인기종목이다. 하나를 더 꼽으면 장애물 경기다. 그물망을 지나 바닥에 뿌려진 종이를 하나 집어 지시사항을 따르면 된다. 종이에 적힌 사람을 찾아 같이 뛰거나 다양한 지시사항에 따라 경기를 해야 한다.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 중 ‘런닝맨’이 그 경기를 본뜬 게 아닐까. 어쨌든, 있지도 않은 할아버지와 뛰라는 지시는 동네 다른 할아버지라도 불러 내 뛰어야 한다. 별다른 큰 상품도 아닌데 그땐 다들 죽기 살기로 했다.

골탕을 먹일 심산인지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인지 구하기 힘든 과제가 적힌 종이쪽지를 드는 순간의 암담함. 다들 결승선을 향해 함께 뛰는데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구경꾼들을 향해 안타까운 얼굴을 보여야 하는 순간. 그게 내가 아니었으면 했지만 내가 되었던 가을 운동회.

져도 좋고 이겨도 좋은 시간이었지만, 매 순간 경쟁해야 하는 사회생활에서 이기지 못한 순간,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패배로 인한 불안감을 밀어내지는 못한다.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일하지 않고서 100세 시대를 맞을 용기도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지인이 네이버 밴드 그룹에 ‘AI시대, 120세 시대를 대비하라’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알림이 떴다. 이건 또 뭐지.

내가 원하지 않는 일로 씨름했다면 이제 원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쓰고 싶다. 그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사람에 따라 비중을 두는 게 다르고 삶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는가에 따라 선택은 다르다.

송년 모임에서 ‘엉뚱한 선물’을 뽑았다. 사회자가 이벤트 진행하면서 어떤 선물이든 가져갈 기회를 먼저 줬다. 무대 근처에 많은 선물을 보며 뭘 고를까 눈을 바쁘게 굴렸다. 빨리 고르라는 재촉은 없었지만 빨리 골라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빨간색 캐릭터 인형을 뽑았다. 내가 그걸 드는 순간, 사람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서로 웃음이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자리에 돌아와서야 더 좋은 고가의 선물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매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 단기적인 판단의 결과에 삶을 저당 잡힐 이유가 없다. 좀 더 길게 멀리 보고 걷자. 그러면 지금의 답답함과 조급함은 조금 느슨해지고 다른 생각의 문이 열릴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직장생활은 어려움은 구속에 있다. 원하지 않는 것들을 원하는 시간 내에 해야만 하는 미션이기 때문이다. 매 번 하는 선택의 결과에 실망할 이유가 없다. 더불어 한 번의 선택으로 기회를 가졌다고 안주할 이유도 없다.

나는 100살이나 120살이나 평균수명 연장 기사 속에서 매일 매일 성장하는 인간으로 살고 있는지 묻는 일이 더 앞서길 희망한다.

“모든 승부에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이기지 못하는 경쟁이라도 배우고 얻을 것은 있게 마련이다. 결정적인 패배는 나의 한계와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이점이 있다. 전략형 인간은 인생의 모든 순간을 마지막 목표를 향해 가는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여긴다. 승부가 아닌 성장의 관점에서 지금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한다는 뜻이다.”

-​30쪽, <나태함을 깨우는 철학의 날 선 물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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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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