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200㎞. 현재 고속철도로는 상상도 못할 속도를 내는 신개념 운송수단 연구가 한창이다. 빠르면 20분, 역 정차를 고려해도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는 속도다. '하이퍼루프'가 그 주인공이다. 하이퍼루프는 마찰과 공기저항을 없애 전에 없던 속도를 낸다는 개념이다. 이미 선진국과 거대 자본, 신생 스타트업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물론 아직 상용화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기술 개발 성과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도 이 분야에서만큼은 '퍼스트 무버'로 치고 나가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이퍼루프는 지난 2013년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공개한 초고속 교통시스템 개념이다. 공기부상이나 자기부상 방식으로 운송체를 띄워 공기를 뺀 원통형 튜브 안에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당시 일론 머스크가 최고시속 1220㎞ 구현이 가능하다고 자신하면서 관련 연구에 세계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론 머스크 이전에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4년여 앞선 2009년 1월부터 '초고속 튜브철도 핵심기술 연구'를 진행했다. '하이퍼튜브(HTX)'로 이름 붙인 국내 하이퍼루프 운송 시스템 개발의 시작이었다.

기초 연구였지만 성과도 거뒀다. 철도연은 만 3년 연구 끝에 2011년 10월 52분의 1 축척, 0.2 기압 튜브 주행 실험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행했다. 이 결과로 1㎏ 미만 모형 운송체를 700㎞까지 가속시키는데 성공했다. 초전도 부상시스템 기초연구와 고강도 콘크리트튜브 제작, 통기성 시험도 연구기간 내 진행했다.

연구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철도연과 한국기계연구원이 2013~2015년 '초고속 자기부상철도 핵심기술 개발' 연구를 수행했다. 시속 550㎞급 초고속 자기부상철도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HTX에 쓰일 부상 기술과 추진 기술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부상전자석과 제어시스템, 선형동기모터(LSM) 추진 시스템을 이때 만들었다.

2016년부터는 철도연이 기관 직접비를 들여 6개 HTX 핵심요소기술을 개발하는 중장기 연구를 시작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도 비슷한 시기 연구에 뛰어들어 자체 개발한 '유 루프(U-Loop)' 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연구기관이 적지 않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세계 수준에 비춰보면 '아쉽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벌써 상용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연구에 매진, 한 발 앞선 성과를 내놓고 있다.

버진 하이퍼루프 원은 이미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 500m가 넘는 터널을 뚫고 모의주행을 하고 있다. 글로벌 항만기업인 DP월드와 파트너십을 체결, 인도 내 상용화를 예고했다.

하이퍼루프 트랜스포테이션 테크놀로지(HTT)는 지난해 10월 실제 크기 하이퍼루프 캡슐 시제품을 공개했고, 중국도 기술 경쟁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들은 연구능력도 뛰어나지만 막대한 자금력으로 성과 창출을 앞당겼다. 대부분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 제안한 후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수천억원이 넘는 예산을 무기로 성과를 쏟아내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도 HTX 연구 국가 연구개발(R&D)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철도연 주관으로 기계연, UNIST,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과학기술전략연구소,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정부 국비 지원으로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관련 기획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기획연구는 국가 R&D 도출에 앞선 '마중물' 성격의 과제다. 향후 국가 R&D 사업에 앞서 연구 배경과 필요성, 연구 수행 방법, 경제·기술 타당성, 사회 효과를 구체화 한다.

UNIST가 선보인 유루프(U-Loop) 모형
UNIST가 선보인 유루프(U-Loop) 모형

문제는 실제 HTX 국가 R&D화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획연구 창출도 '3수' 만에 얻은 기회다. 철도연을 비롯한 연구기관은 지난 2016년부터 HTX 국가 R&D화를 추진한 끝에 기획 과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후 과정도 순탄하지 않다. 시범노선 건설과 같이 막대한 예산이 드는 세부과제도 포함하고 있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예비타당성(예타) 조사가 불가피하다. 대략적인 예산 추정치는 1조원을 넘는데, 예타 기준은 전체 사업 규모 500억원 이상이다. 예타 외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술성평가, 추가 타당성 검토 과정까지 진행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HTX가 실제로 국가 R&D 사업이 돼 지원을 받으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지금 단계에서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철도연을 비롯한 연구기관은 기획연구를 착실히 진행하면서 최대한 마무리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방침이다. 조금이라도 연구 국가 R&D화를 앞당기겠다는 생각이다.

이관섭 철도연 신교통혁신연구소장은 “HTX 연구는 본격화에 많은 난관이 있지만, 향후 세계 산업 여파를 고려할 때 꼭 수행해야 할 사업”이라며 “조금이라도 빨리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슈분석]하이퍼루프 對 HTX, 기술 차이점은?

일론 머스크가 2013년 공개한 하이퍼루프 구상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주축으로 국내 연구기관이 개발하는 하이퍼튜브(HTX)는 기술 측면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위로 띄운 운송체로 공기가 없는 튜브 안을 달리게 해 마찰과 공기저항을 극복한다는 개념은 같지만 세부 기술에서 차이가 있다.

부상 방식의 경우 하이퍼루프는 공기를 운송체 하부에서 내뿜어 부상하는 방식을 적극 활용한다. 반면에 HTX는 초전도 자석을 쓰는 초전도 반발식 자기부상 방식이다. 공기부상 방식을 썼을 때 동체 일부가 내려앉는 '처짐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HTX는 운송체를 선로로부터 10㎝ 이상 띄우는 것을 자기부상 목표로 두고 있다.

추진 방식도 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당시 하이퍼루프를 구상하며 '선형유도전동기' 추진 방식을 주창했고 HTX는 '선형동기전동기' 방식을 쓴다. 각 방식은 모두 선로에 설치한 '고정자(코일부)'와 차량 '이동자' 사이에 발생하는 자기장 상대 극성을 이용해 추진한다. 자석 N극과 S극은 서로 당기고 N극과 N극, S극과 S극은 서로 밀어내는 원리를 활용한다. 운송체 앞 선로가 당기고, 뒤쪽 선로는 밀어내는 식이다.

튜브 선로에 고정자를 설치하는 것은 같은데, 하이퍼루프 선형유도전동기는 이동자로 알루미늄 일반 도체를 쓰고 HTX 선형동기전동기는 초전도 자석을 쓴다. 알루미늄 도체를 쓰면 코일과 이동자 간 자기장 크기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다. 높은 추력을 내기가 어렵다. 반면에 초전도 자석을 쓰는 선형동기전동기는 상대적으로 큰 자기장을 이용할 수 있어 추력 확보가 쉽다.

물론 이런 차이로 국내 연구기관 기술력이 훨씬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이퍼루프는 당초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은 구상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보링컴퍼니도 현재 하이퍼루프 기술을 준비 중으로, 향후 이전 구상보다 발전한 성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이슈분석]HTX 개발 전망과 이후 청사진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을 비롯한 국내 연구기관은 시속 1200㎞ 하이퍼튜브(HTX) 상용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국가 연구개발(R&D)을 통해 연구를 본격화하면 총 3단계 계획을 수행할 계획이다. 1단계는 '핵심원천 요소기술 확보'다. 핵심요소기술 실험모델 설계·제작과 성능 시험을 거친다.

이후에는 실제 HTX 시제품 개발에 나선다. 안전 확보를 위해 우선 화물용 HTX를 구현하고, 이를 단거리 테스트베드에서 성능 시험한다.

마지막 상용화 단계에서는 24㎞ 상용 시범노선을 구성해 종합성능시험과 시범운행을 하고 기술을 정립한다는 복안이다. 이전 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한다면 2025년 시범운행도 꿈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철도연이 구상중인 HTX활용 신개념 교통 네트워크
철도연이 구상중인 HTX활용 신개념 교통 네트워크

상용화 후 청사진으로는 '서울~전국 주요도시 30분 통근권역화'를 그리고 있다. 현재 서울~세종~대전~대구~부산, 강릉~세종~광주~목포 두 개 선을 X자 형태로 배치하는 안을 구상중이다. 안 대로라면 선상 주요도시는 30분 이내 도달가능하다.

통일이 되고 북한 지역까지 HTX를 연결하면, 한반도 내 어느 도시에 있어도 목적지까지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을 벗어난 도시에 도달하는 시간도 대폭 줄어든다.

궁극적으로는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동북아 국가와 HTX를 연결하는 것도 훗날 목표로 둘 수 있다. 서울에서 중국 베이징까지 한 시간여 만에 도달, 신 교통을 활용한 새로운 '동북아 경제권'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강수현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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