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의 의뢰로 디자인 시안을 한 개만 만들어 제출하면 담당자가 다른 안이 더 없는지 되묻는다. 내 생각에 그걸로 될 것 같은데 업체에서는 다른 안을 요구한다. 주문 내용을 배경으로 최적의 것을 만들어 제시하지만 제안 받는 쪽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안을 내심 기대한다. 최종 선택을 받는 안이 나중에 한 것이면 일한 보람이 있지만 처음 것이 더 낫다 며 그것을 뽑는다.

사실 담당자의 요구 이전에 가끔 나 자신도 불안해서 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더 복안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 시간 여유가 있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 한 짧은 시간에 색상이나 서체의 변화 말고는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 더 만들어 낸 것은 선택되지 않고 처음에 낸 것이 채택되면 디자이너 보기가 미안할 때가 있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무시해도 될 듯 한 일에 담당자가 잘못되었다고 비용을 더 들여 다시 인쇄물을 제작하는 일도 있다. 그 비용이면 다른 일을 할 때 보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이 같지 않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의 불안한 마음은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더 쓰게 만들고 사람의 일을 더 지루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나올 수 있는 담당자의 불만을 제거하고 만족도를 높여 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굳이 더 만들지 않아도 될 것도 만들며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또 최근의 경향인지 당일 설계를 할 때 모형을 두 개나 만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구마 씨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세요.”라는 것인데, 이 또한 조금 이상한 경향입니다. 그것은 서비스 정신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현으로 일본 사회의 위험 회피 관습이 여기까지 침투했나 싶어 어이가 없습니다.
건축이란 ‘최종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책임을 질 각오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채용하는 쪽도 그 사람의 최종적인 판단과 각오를 보려는 겁니다. 그런데 두 가지 안을 가지고 와서 “어느 쪽이 좋나요?”하고 물으면 이미 그것만으로는 이쪽은 차갑게 변하고 맙니다."
-297쪽,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중

일본의 대표 건축가 중 한 사람인 구마 겐고는 당일면접 형태로 직원을 채용했다. 지원자에게 면접 당일에 과제를 주고 제작, 결과물을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력서상의 이력으로 지나칠 것들을 직접 눈으로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를 볼 수 있다. 지원자 중 두 개 안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지원자가 있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두 개를 만들었으니 대단하다고 여길 것 같은데 구마 겐고의 판단은 달랐다.

구마 겐고는 두 개의 안을 만들어 낸 사람은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구마 겐고는 타인에게 선택을 밀어주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피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준다고 해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라면 누구를 뽑을까? 그래도 몇 개 더 만들어내는 사람의 노력이 더 크지 않을까. 구마 겐고의 결정은 다르다. 그의 기준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질 각오로 일하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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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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