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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웅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책임질 수 있는 각오

발행일시 : 2019-04-12 00:00
[길윤웅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책임질 수 있는 각오

광고주의 의뢰로 디자인 시안을 한 개만 만들어 제출하면 담당자가 다른 안이 더 없는지 되묻는다. 내 생각에 그걸로 될 것 같은데 업체에서는 다른 안을 요구한다. 주문 내용을 배경으로 최적의 것을 만들어 제시하지만 제안 받는 쪽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안을 내심 기대한다. 최종 선택을 받는 안이 나중에 한 것이면 일한 보람이 있지만 처음 것이 더 낫다 며 그것을 뽑는다.
 
사실 담당자의 요구 이전에 가끔 나 자신도 불안해서 디자이너에게 몇 가지 더 복안을 만들어 달라고 말한다. 시간 여유가 있어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 한 짧은 시간에 색상이나 서체의 변화 말고는 큰 변화를 주기 어렵다. 더 만들어 낸 것은 선택되지 않고 처음에 낸 것이 채택되면 디자이너 보기가 미안할 때가 있다.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무시해도 될 듯 한 일에 담당자가 잘못되었다고 비용을 더 들여 다시 인쇄물을 제작하는 일도 있다. 그 비용이면 다른 일을 할 때 보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이 같지 않다.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의 불안한 마음은 쓰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더 쓰게 만들고 사람의 일을 더 지루하게 만든다. 처음부터 나올 수 있는 담당자의 불만을 제거하고 만족도를 높여 일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굳이 더 만들지 않아도 될 것도 만들며 상대방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또 최근의 경향인지 당일 설계를 할 때 모형을 두 개나 만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것도 가능하고, 저런 것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구마 씨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세요.”라는 것인데, 이 또한 조금 이상한 경향입니다. 그것은 서비스 정신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현으로 일본 사회의 위험 회피 관습이 여기까지 침투했나 싶어 어이가 없습니다.
건축이란 ‘최종적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책임을 질 각오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채용하는 쪽도 그 사람의 최종적인 판단과 각오를 보려는 겁니다. 그런데 두 가지 안을 가지고 와서 “어느 쪽이 좋나요?”하고 물으면 이미 그것만으로는 이쪽은 차갑게 변하고 맙니다."
-297쪽, <나, 건축가 구마 겐고> 중

[길윤웅의 책으로 만나는 세상] 책임질 수 있는 각오

일본의 대표 건축가 중 한 사람인 구마 겐고는 당일면접 형태로 직원을 채용했다. 지원자에게 면접 당일에 과제를 주고 제작, 결과물을 제출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력서상의 이력으로 지나칠 것들을 직접 눈으로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를 볼 수 있다. 지원자 중 두 개 안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지원자가 있었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두 개를 만들었으니 대단하다고 여길 것 같은데 구마 겐고의 판단은 달랐다.
 
구마 겐고는 두 개의 안을 만들어 낸 사람은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구마 겐고는 타인에게 선택을 밀어주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피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준다고 해도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라면 누구를 뽑을까? 그래도 몇 개 더 만들어내는 사람의 노력이 더 크지 않을까. 구마 겐고의 결정은 다르다. 그의 기준이 정답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질 각오로 일하고 있는지 묻는다.
 
길윤웅 yunung.kil@gmail.com 필자는 IT전문 잡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한글과컴퓨터 인터넷 사업부를 거쳐 콘텐츠 제휴와 마케팅 등의 업무를 진행 했다. 디자인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과 제작 활동에 관심을 갖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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