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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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 제20화. 포근하다 남도 꽃길 – 목포 유달동 편이 방송된다.

가수 이난영, 극작가 차범석, 시인 김지하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며 예향의 고장이라 불렸던 목포. 그 뒤안길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일제강점기, 풍부한 자원과 항구를 가지고 있던 목포는 일제 수탈의 거점 지역이었다. 이른바 ‘일흑삼백’이라 불린 검은 김과 하얀 쌀, 면화, 소금 등을 일본은 목포항을 통해 자국으로 실어 날랐다. 항구가 커지자 일본인들이 유입됐고 원주민들은 유달산 비탈로 밀려나야 했다. 그렇게 지켜낸 삶의 터전이 유달동이었다. 아픈 세월 위에 어여쁜 꽃을 피워낸 목포시 유달동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스무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 목포는 항구다!

목포는 항구에서 시작된다. 최초의 자발적 근대항이었던 목포항은 해상무역의 중심지이자 호남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된 목포항. 일제강점기에는 공출항으로 지정되어 수탈 전진기지 역할을 하던 슬픈 흑역사도 품고 있다. 이렇듯 목포의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항구에서 배우 김영철은 여행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 봄빛으로 물든 유달산 & 사찰 안에 샘물이? 보광사 짓샘

도심 속에 우뚝 솟아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유달산은, 봄이 되면 개나리와 벚꽃, 동백 등 봄꽃들이 만개하고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유달산의 봄 풍경을 자랑이라도 하듯, 4월 6일부터 20일까지 매주 주말마다 봄 꽃 축제가 펼쳐진다. 그 경치에 마음을 뺏긴 김영철은 유달산 둘레길을 거닐다 산중턱에 위치한 작은 절에 다다른다. 유달산에 위치한 여러 사찰 가운데 하나인 이곳 ‘보광사’에는 특별한 샘물이 있다는데. ‘짓샘’이라고 불리는 이 샘물은 특히 산고에 처했을 때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며, 동네주민들과 등산객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신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 샘물을 맛보기 위해선 신을 벗고 법당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데. 과연 법당 내부 그 어디에 샘물이 있는 것일까??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인 김영철은 뜻밖에 만난 진귀한 풍경에 여행의 묘미를 느낀다.

■ 목포 여인의 삶이 한편의 詩로... 시화마을

유달산 아래쪽으로 향하다보면 언덕길 아래 옹기종기 줄을 선 듯 모여 있는 주택가마을을 볼 수 있다. 목포 앞바다와 그림처럼 어우러진 이곳을 어떤 이는 ‘목포의 몽마르트’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 동네의 비탈길을 따라 걷던 김영철은 좁은 골목길 담벼락 위에 적혀있는 시를 발견한다. 전라도 사투리가 그대로 담긴, 투박한 말투의 글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힘들게 살아온 여인의 아픔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밌고도 슬픈 담벼락 위의 시들. 배우 김영철은 문득 이 시를 쓴 시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알고 보니 이 마을에 거주 중인 할머니들의 작품. 이곳 할머니들 대부분이 한글을 배우지 못한 까닭에, 자신의 이야기를 구술하고 그것을 누군가가 글로 받아 적어 담벼락 위에 시로 옮겼다는 것.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은 자신이 해준 이야기가 시가 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아울러 할머니들이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은 시와 함께 담벼락 위에 그대로 옮겨져 귀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시화마을을 조성하는데 일조했다. 비록 시는 잘 몰라도 함께 모여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할머니들. 목포 몽마르트에서 만난 시인들 덕분에 김영철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 목포 대표 간식, 쑥꿀레

시화마을에서 내려와 원도심을 걷다 ‘쑥꿀레’라는 특이한 이름을 발견한 김영철. 쑥꿀레는 쑥을 넣은 찹쌀반죽 위에 팥고물을 묻혀 둥글게 빚어낸 떡으로 목포를 대표하는 간식 중 하나라는데. 경상도에서 목포로 시집을 온 친정어머니에게 손맛을 이어받아 떡 고유의 맛을 지켜가고 있다는 사장님. 쑥을 삶는 것부터 마지막 조청을 끓여내는 것까지 사장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이곳에서 우연치 않게 목포로 여행을 온 관광객을 만난 김영철. 목포에 가면 반드시 쑥꿀레를 맛보라던 지인의 말이 생각나 이곳을 찾았다는데. 두 사람은 오랫동안 목포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떡을 맛보며 봄을 음미한다.

■ 일본인 거주 지역에 자리 잡은 한국인 모자가게

일제강점기, 수탈의 기점이 된 목포항. 개항 이후 시내에 살던 토박이들은 유달산자락으로 밀려나고 시내 중심지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됐다.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현재도 당대의 적산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근대문화역사거리. 한때는 화려한 거리였지만 지금은 쓸쓸하게도 빈집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지난 1924년, 일본인 거주 지역에 자리 잡은 한국인 상점 가운데 모자가게가 있다. 갑자년에 만들어져 가게 이름도 ‘갑자옥’이라 불렀다는데. 현재도 그 자리 그대로, 목포 원도심의 중심을 지키며 3번째 주인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목포 멋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갑자옥의 모자를 쓰고 한껏 멋을 부리고, 목포해양대 학생들이 이곳에서 단체로 모자를 맞춰 쓰고 다닐 정도로 당대 잘 나가는 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변화한 시대상을 온전히 맞고 있다. 예전 명성에 비해 가게 운영은 어려울지라도 자신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모자가게를 지키고 싶다는 76세 주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가게를 구경하던 김영철은 비록 유행은 비껴갔어도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목포사람들의 추억과 함께해온 그 모습이 그저 고맙다.

■ 이 봄에 즐겨요~ 목포 5味, 민어

모자가게와 멀지 않은 곳에서 큼지막한 생선을 손질하는 할머니를 만난 김영철. 이곳은 70대 어머니와 40대 막내딸이 운영하는 민어가게로 손기술이 필요한 민어 손질은 어머니 담당, 요리와 판매는 딸이 맡아 하고 있다. ‘민어’ 하면 여름철에 먹는 생선인 줄 알았는데, 이들 모녀 말에 따르면 1년 365일 맛 볼 수 있는 게 민어라고. 사실 가게가 자리 잡은 이곳은 민어 전문점들이 나란히 자리한 ‘민어의 거리’로, 민어는 목포를 대표하는 다섯 가지 맛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그 맛이 뛰어나다. 수심 80미터 깊은 바닷물 속에 살아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수압 차로 인해 금방 죽어버리기 때문에 민어는 몸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한 자리에서 46년 동안 민어만을 취급해 온 70대 아주머니의 민어요리를 통해 김영철은 남도 음식의 진수를 맛본다.

목포 구도심도 유달동이지만 목포항 너머 크고 작은 세 개의 섬도 유달동이다. 육지를 둘러봤으니 이젠 배를 타고 섬으로 향할 시간. 목포항에서 여객선을 탄 김영철은 푸른 뱃길을 따라 반달 모양을 닮았다는 섬 달리도를 방문한다. 선착장에 도착한 김영철의 눈에 띈 커다란 개 한 마리와 그 옆에 삽을 든 남자. 달리도의 갯벌에서 아버지에 이어 2대째 낙지를 잡는 김창수 씨와 그의 반려견 훈남이다. 10대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갯벌에서 낙지 잡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낙지 잡기의 달인! 섬 생활이 무료해질 무렵, 잠시 외지에서 살아봤지만, 달리도가 그리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창수 씨를 만나 달리도로 시집을 온 서울 출신의 아내 고선순 씨. 처음엔 낯선 섬에서의 생활이 무척 힘들었지만, 지금은 맑은 공기와 자급자족하며 지낼 수 있는 이 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얼마 전 아들이 키우던 개 훈남이가 이들 부부의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조용하던 부부의 일상에 작은 활력소가 됐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주인을 쫓아 갯벌을 누비는 통에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다니기 일쑤라는데. 부부가 가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졸졸 쫓아오는 훈남이가 이들 부부에겐 귀여운 자식이자, 든든한 친구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언제나 베풀어주는 섬 달리도. 때문에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할 게 없다 말하는 부부. 훈남이와 함께하는 세 식구의 일상을 통해 행복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음을 느낀다.

■ 84세 할머니, 초등학교에 입학한 까닭은?

길을 걷다 만나게 된 분교. 혹시 폐교는 아닐까 잠시 안을 들여다보던 김영철은 이 학교 선생님과 마주친다. 전교생 수 총 3명. 4학년, 6학년 학생과 그리고 84세의 나이로 올해 1학년 신입생이 된 배석금 할머니다. 일제강점기, 일본학교 3학년까지가 최종학력이라는 할머니는 이제라도 한글을 배워 손주에게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성경책 또한 마음껏 읽고 싶어 큰 용기를 냈다고. 증손자뻘의 두 아이들을 선배로 모시고 한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는 게 요즘 할머니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배 할머니는 입학 후 처음으로 맞이한 한글 수업시간이 첫눈 올 때처럼 마냥 기뻤다는데. 김영철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배우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꿈은 언제나 꿈꾸는 자의 것임을 깨닫는다.

이은수 기자 eslee@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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