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지난 2월 21일부터 공연되고 있는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잇는 19세기 말 러시아의 사실주의 극작가이자 단편소설가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를 타이틀 자체에 내세우고 있다. 체홉의 미발표 단편소설 중 다섯 편 ‘약사의 아내’, ‘나의 아내들’, ‘아가피아’, ‘니노치카’, ‘불행’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 무대에 올린 이 공연은 2014년에 국내 첫 공연이 있었고 이후 해마다 관객과 만나고 있는 연륜이 있는 연극이다.​

한 세기 하고도 반세기 이전, 체홉의 작품들이 최근까지도 영화로 제작되거나 도서로 출판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재 공연되고 있는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도 그러하다. 각색이 되긴 하였을 테지만 무려 100여 년 전에 쓰인 이야기가 작금의 시대에 보아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Me too 운동이나 페미니즘 문화에 예민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요즘 세태를 풍자한 연극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안에서 '여자'는 잠든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의 일탈을 꿈꾸거나, 남편의 손에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거나, 신혼의 단꿈을 뒤로한 채 한량에게 애정을 구걸하거나, 착해빠진 남편의 절친을 내연남으로 두거나, 남편의 비즈니스 파트너의 구애를 즐기는 것으로 표현된다. 다소 선정적이고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패륜적인 성향으로 그려지는 부분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희극과 드라마, 코미디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여자'의 복잡 미묘한 심리상태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공연의 매력 포인트는 체홉의 이름이 아닌 '여자를 읽다'에 있지 않은가 한다. 단순히 '여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독해가 필요한 원서처럼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근의 페미니즘 문화와 결부시켜 보면 '여자'에 대한 해석이 옳다, 그르다의 이분법적인 사고로는 절대 이해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극에서는 '여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여자'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상대(남자)와 주변 환경과 상황에 대해 폭넓게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는 소리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안에서 '남자'는 구두쇠에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나 자기의 아내들을 연쇄 살인한 살인마이거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륜을 방관하기만 하거나 부인을 절친의 내연녀로 인정하는 바보이거나 눈치가 1도 없는 가부장적인 가장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번 공연에서부터는 <파우치 속의 욕망>이라는 부제를 벗어던지고 ‘여자’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본성과 이중성에 대해 폭넓은 시각으로 해석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옴니버스 작품이 기존에 네 편에서 다섯 편으로 증편된 것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이 봄, ‘여자’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를 관람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 본인이 ‘여자’여도 괜찮고, 그렇지 않아도 더 좋을 것이다.

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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