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인(賢人)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올바른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현인이라고 칭송하죠. 현인이 가는 길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세간의 이목을 모으기에는 충분합니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워런 버핏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워런 버핏의 말과 투자 대상은 많은 투자자에게 관심받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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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은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이하 버크셔)를 이끌고 있습니다. 버크셔 최근 주식 포트폴리오 변화가 화제입니다. 버크셔의 미국 상장주 투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애플입니다. 버크셔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2월 31일자로 애플 주식 290만주를 팔았습니다. 전 분기 대비 1.1% 줄어 현재 보유량은 2억4960만주(394억달러, 44조원)입니다.

버크셔 입장에서는 소량입니다만, 버핏이 강력한 소비자 브랜드 가치를 극찬하며 공격적으로 지분을 늘렸던 애플 주식을 처분한 배경이 궁금해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버크셔는 애플 지분 매각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추정할 뿐입니다.

애플은 새로운 혁신 부재와 고가 정책으로 인해 소비자 시장에서 외면받았습니다. 미·중 무역 분쟁 여파로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도 급감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애플은 2018년 10월 주당 230달러를 돌파해 정점을 찍었다가 올해 초 142달러까지 곤두박질친 적 있습니다.

아이폰 Xs 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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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는 애플 2대 주주입니다. 애플 주가 폭락으로 버크셔도 3분기 실적 발표일 하루 만에 4조원을 날려버렸습니다. 애플 주가가 이렇게 출렁 거린다면 버크셔 피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애플 주식 매도는 이런 상황도 일부 고려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버크셔가 버린 정보기술(IT) 주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오라클입니다. 2018년 3분기까지 4140만주로 21억달러(2조3600억원) 정도를 보유했습니다. 4분기에는 모두 팔아치웠습니다. 오라클을 주식 포트폴리오에 추가한지 한 분기 만에 다시 빼버리는 것입니다. 오라클 주가는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최고 52달러 최저 42달러 수준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오라클 데이터베이스(DB)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행보를 보일 것으로 봅니다. 오라클 입장에서는 아주 큰 고객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버린 것이 있으면 취하는 것도 있겠죠. 버크셔는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BoA), US뱅코프 등 금융주 보유량을 전분기 대비 늘렸습니다. IT 업종으로는 420만주(7억달러, 약 7800억원)를 사들인 레드햇이 있습니다. 2018년 10월 IBM이 340억달러(38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바로 그 기업입니다. IBM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M&A)이었고, 미국 기술 기업 M&A로는 세 번째 규모입니다.

IBM은 레드햇을 340억달러에 인수했다.
IBM은 레드햇을 340억달러에 인수했다.

레드햇은 대표적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SW) 기업입니다. 리눅스 중 하나인 레드햇엔터프라이즈리눅스(RHEL)와 페도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 시스템통합(SI)과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제품 판매뿐만 아니라 유지 보수, 기술 지원 등 라이선싱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오픈소스 SW 기업 중에 몇 안 되는 ‘돈 버는 기업’으로 손꼽힙니다. IBM은 레드햇 인수로 IBM이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사업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IBM 인수와 버크셔 투자로 레드햇은 IT업계에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IT 업종이라고 해야 할지 전통적 자동차 산업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투자처도 있습니다. 제너럴모터스(GM)입니다. 버크셔는 GM 지분을 2000만주 추가 취득, 총 9320만주를 보유합니다. GM은 지난해 11월 전 세계 7개 공장 폐쇄, 1만4700명 감원이라는 대대적인 구조 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2009년 파산 이래 가장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2년간 연속으로 연간 40조원의 영업이익을 낸 기업치곤 칼바람이 강합니다.

GM 구조조정은 비용을 줄여 미래를 대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버크셔도 이런 점을 눈여겨본 것이 아닐까요. 구조조정으로 인해 그만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또 다른 투자 배경으로 자율주행차를 지목하기도 합니다. GM은 구조조정으로 확보한 유동성을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방침입니다. GM 볼트로 전기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GM은 2020년까지 10개 전기차 모델을 중국 시장에 내놓을 계획입니다. 2023년까지 총 20개 모델을 북미 시장에 선보일 방침입니다. 올해 안에 자율 주행 상용화 목표도 세웠습니다.

GM 4세대 자율주행차
GM 4세대 자율주행차

레드햇과 GM 투자. 버크셔의 이런 행보는 단기 수익을 노린 투자일까요. 아니면 오마하의 현인이란 불리는 버핏이 클라우드와 자율 주행에 관심이 있는 것일까요. 버크셔 주식 포트폴리오에 포함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가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현인의 조언이 옳은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

권동준 기자 djkwon@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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