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에 동전 하나 없이 살 수 있을까? 과거에는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지폐나 동전이 없어도 신용카드 하나면 재화나 서비스의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신용카드 한 장 없이 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용카드는 대중화 되었다. 요즘엔 신용카드를 스마트 폰에 넣어 아예 지갑이 없이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처럼 현금이 없어도 재화나 서비스의 구입이 가능하니 주제도 모르고 과소비를 한다며 신용카드를 싹 잘라버려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돈이 없어도 신용으로 먼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니 결제는 나중일이고 소비부터 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그래서 부자가 되려면 신용카드를 자르고 규모에 맞는 소비와 저축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게 되니 신용으로 펼쳐지는 빚을 떠안지 않고 소비를 할 수 있어 과소비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항상 사용할 만큼의 현금을 지니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고 갑작스런 지출을 할 경우도 생긴다. 그럴 경우 현금사용자는 지출 여력이 없어 구매를 하지 못하고 신용카드 사용자는 여유 있게 결제를 진행하여 해당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신용카드의 브랜드 별로 자사 고객을 위한 특별 이벤트나 할인 혜택의 범주에 있는 상점이나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 할인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상품구매에 따라 적정한 포인트를 적립하여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가 있으니 어떤 신용카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일반구매자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고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현금사용자는 이러한 혜택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니 신용카드 회사는 더 다양한 상품을 넣은 카드를 만들어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신용카드를 1장만 사용하는 사람들은 없다. 1인 평균 3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상황에 따라 혜택에 따라 유리한 카드를 선택하여 사용하게 된다. 카드사용혜택, 할부 결제, 포인트 적립 등으로 동일 재화나 서비스 구입자라도 다른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 196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세계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도입한 이후 실로 엄청난 규모의 확대와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의 장단이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용카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신용카드는 신용카드사가 카드를 발급하고 가맹점을 모집하여 전표를 매입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소비자에게 카드를 발급해주고 가맹점을 모아 신용구매와 판매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여 그 대가로 소비자에게는 연회비, 가맹점에겐 수수료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신용카드사들의 수익은 가맹점 수수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수수료 인하의 압박을 주어 수수료 부분의 비중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리볼빙 서비스 등을 통한 이자 수익이 주요 수익원이고 가맹점 수수료는 20-30% 수준으로 낮다.

우리의 경우 이와는 반대이다. 또한 카드수수료도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닌 가맹점주가 내고 있다. 소비자는 지금 결제한 것을 한 달 후에 지불하게 되는 신용혜택을 누리지만 카드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이들은 일 년에 한번 연회비를 내지만 카드를 보유하면서 누리는 혜택과 적립 포인트를 고려하면 무료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가맹점주는 이 모든 인프라를 유지하는 비용을 결제 건당 매번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 사용자는 편리함과 혜택을 누리지만 가맹점은 수수료 부담만 지고 혜택이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맹점에서는 카드보다 현금 결제를 선호하고 카드 결제의 경우 부가세 명목으로 10%의 금액을 더 내게 하는 실정이다. 사실 현금과 카드 결제의 가격의 차별이나 카드결제 거부는 법으로 금지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현실에서는 너무도 자주 보게 된다.

외국에서는 가맹점주가 수수료를 내지 않고 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수수료를 부담한다. 때문에 수수료 분쟁이 없다. 우리는 카드로 대학등록금도 낼 수 있고 국세 등 공과금도 낼 수 있다. 그런데 국세의 경우 수수료의 부담은 정부가 지지 않고 소비자가 낸다. 이유는 정부가 카드사에 수수료를 내면 신용카드로 결제한 사람 때문에 국민이 낸 세금을 축내게 된다며 별도의 규정을 만들어 카드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부담토록 했다. 이러한 논리라면 힘이 있는 기관은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는 수수료 부담을 거부할 수 없는 불합리를 만나게 된다.

최근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 주겠다고 정부와 서울시가 QR코드를 활용한 스마트 폰 앱결제 체계인 제로페이 실시를 앞두고 있다. 개인이 보유한 스마트 폰에 OR코드로 제로페이로 들어가 금액을 입력하고 결제를 요청하면 판매자가 결제를 확인하고 은행은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대금을 이체하는 시스템이다. 한마디로 신용카드 결제과정의 중간단계를 쏙 빼고 소비자와 판매자 간의 은행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여한 은행은 일정매출액 이상에서 수수료를 청구하여 최소의 금액을 받게 된다. 매출액이 낮은 영세자영업자에게는 수수료 청구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자영업자의 참여율도 알 수 없고 얼마간 지속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진행하자니 사업타당성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자는 정부에 끌려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벌써부터 카카오페이나 비씨카드는 사업에서 빠지겠다고 불참표를 던졌다. 소비자에게 제로페이 사용으로 소득공제 효과를 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환급혜택도 크지 않고 기존 시스템으로도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사용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게다가 통장에 현금이 있어야만 가능한 체계인 것이다.

당장 12월부터 서울에서 시작하여 내년 초에는 전국으로 확대할 예정인데 여러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시작이라 성공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전체 시장에 홍보도 부족하고 인프라 부담이나 참여자 역시 수수료 문제가 오픈상태임에도 취지 휘둘려 너무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정부와 시장은 이제 카드 수수료에 대한 문제의 인식은 확실히 했다.

신용카드가 미래 소비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폐의 보유를 필요하지 않게 만들어 경제 주체의 소비와 효용을 제고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제로페이의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카드 수수료 부담이 올바른 주체에게 이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편리한 시스템의 사용에는 반듯이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수수료 제로라는 것은 결국 해당 수수료를 다른 객체가 부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의 분담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나라 전체가 모래 위에 탑을 쌓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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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뉴스팀 (news@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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