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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50)...힘내라 돼지(마지막회)

발행일시 : 2018-10-12 00:1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50)...힘내라 돼지(마지막회)

50. 힘내라 돼지

지난 주말부터 수요일까지 이어진 추석연휴로 공장은 목요일에야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다음날은 9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는데, 그날 오후 털보는 두 통의 편지를 등기우편으로 받았다. 한 통은 빈대코 편지고 한 통은 여자교도소에서 보낸 꽃무늬 봉투 편지였다. 이름 모를 꽃 세 송이와 병아리 두 마리가 그려진 봉투를 얼른 엉덩이 밑으로 감춘 털보가 빈대코의 편지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는 한 장이고 글자 수도 많지 않았다.

“뭐래?”

다 읽기도 전에 빠삐용이 물었다.

“잘 있대? 거기 좋대?”

금방 읽어버린 편지를 빠삐용에게 건네주며 털보가 말했다.

“힘내란다 이 돼지가. 우리 보고 힘내라 돼지야, 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총무와 탁 사장을 향해 말했다.

“잘 있다는데…… 근데 거긴 여기하고 사물함이 다른가 봐?”

빈대코가 편지에 적은 내용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거기는 사물함 박스에 수번과 이름을 붙여놓는 모양이야. 이 친구는 그게 싫다는구만. 편지에 기분 나쁘다고 적은 걸 보니 영 불편한가 보지?”

“아, 거기가 그래요. 각자 사물함 박스를 주는데 거기다 명찰을 붙이죠. 이삿짐 포장하는 그런 플라스틱 박스요”

우리나라 교도소란 교도소는 다 돌아다닌 탁 사장이 설명했다.

“방에 들어가면 수번하고 이름 프린트한 종이를 소지가 갖다 줘요. 그걸 거기다 붙이는 거죠.”

엉덩이 밑에서 꽃무늬 편지봉투를 꺼내 든 털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빠삐용은 다 읽은 빈대코 편지를 탁 사장에게 건네며 빈대코에 대해 평가했다.

“이 친구가 보기하곤 달리 아주 유교적이고 자존심 강한 사람이네.”

농경문화와 혈통과 전통을 들먹이며 빈대코의 성향을 문명적으로 해석하는 빠삐용의 견해에 총무가 이의를 제기했다.

“자기 이름이 죄수들 이름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게 보기 싫다는 말 아니에요?”

“그게 그거지 뭐.”

“그거하고 그건 좀 다르죠. 그건 자존심이라기보다는 보통 사람의 양심 아닙니까. 옛날 사람 아니더라도 거기 그렇게 자기 이름 붙어 있으면 부끄럽지 않은 사람 어디 있어요? 아무리 같은 죄인이라지만.”

“여하튼 그 친구 그만하니 다행이다.”

“그러네요. 그까짓 이름이야 뭐.”

여수의 편지지는 세 장이었으나 그림이 절반이었다. 편지를 읽을 때나 다 읽은 편지지를 접어 편지봉투에 다시 넣을 때나 헤벌쭉 벌어진 털보의 입은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스텔라라는데…… 이 여자가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듀엣을 했다는데? 자네들 누가 알아?”

“언제? 어디서? 대표곡이 뭔데?”

빠삐용의 질문에 털보가 대답했다.

“미8군에서 몇 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대. 무슨 노래가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으니 모르지.”

“그래? 그래서 히로뽕을 했나? ……그 여자 탤런트도 했다며? 그리고 몇 살이래?”

“우리하고 동갑이야. 59년생 돼지띠.”

여전히 헤벌쭉 입을 벌리고 눈꼬리를 늘어뜨려 양반탈 표정을 한 털보가 자랑을 떨었다.

“탤런트도 좀 했겠지. 근데 이 편지에는 그런 말이 없네? 그리고 자기는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 시절이 젤 그립대.”

털보는 누가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이 내갈겼다.

“그림도 잘 그린대. 편지에 그린 그림이 다 그 여자가 직접 그린 거야.”

그런 털보에게 탁 사장이 초를 쳤다.

“나이 많이 먹었네요? 사장님하고 동갑이면 완전히 할머니잖아요. 그리고 그 여자 향은 어디서 했대요?”

“야, 그런 생활 하다 보면 그런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리고 우리 나이가 왜 할머니냐? 100세 시대에 환갑이면 아직 팔팔한 나이다.”

털보는 항소심에서 1년 6개월 형을 받은 그녀의 출소일이 자신보다 한 달 뒤라면서, 자신은 오늘로 딱 1년 3일 남았고 스텔라는 1년 1개월이 남았다고 말했다.

“아직 상고심 판결 떨어지지 않았지만 기각이 뻔하잖아. 1년 6개월에 향이라 가석방 없으니 다 살아야지.”

그러느라 넷은 저마다 출소일을 계산했는데 탁 사장과 총무는 몇 달 남지 않았고 빠삐용은 7개월 2일 남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자신의 남은 형기 계산을 마친 빠삐용이 빈대코 출소 예정일을 셈했다.

“그 친구는 가석방 있지? 그러니 내년 1월 말이면 달가로 나가겠네 뭐.”

털보와 빠삐용은 출소하는 순서대로 다시 계산했다. 하고 또 해도 지겹지 않은 계산이었다. 그 결과 빈대코는 120일 남았고 빠삐용은 215일 남았고 털보는 368일 남았고 스텔라는 396일 남았다.

“내년 크리스마스 전에 다 만날 수 있겠다.”

그만큼 지나면 네 사람은 그 어딘가 아름다운 마을에서 만날 수 있다고 털보가 말했다.

“스텔라도 돼지띠잖아. 우리 친구다.”

행복한 털보의 얼굴을 바라보며 빠삐용이 웃음 지었다.

“인생 참 웃긴다, 친구야.”

털보가 대답했다.

“그러니 힘내라 친구야.”

털보가 또 말했다.

“오늘도 다 갔다. 내년도 멀지 않았고 내년 크리스마스도 멀지 않았다.”

다시 작업이 시작됐고 타공기의 철컥대는 전동페달 소리를 흔들며 경쾌한 유행가가 공장에 울려 퍼졌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빈대코와 함께 이 공장으로 출력 나오던 날 들었던 노래에 털보는 가슴이 아렸다.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오늘의 삶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더 이상은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털보는 자신에게 당부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욕심이 땅을 뒤집어엎던 젊은 시절은 저물고 있었다. 한때는 그러했으나 이제는 세상을 흔들 기력도 누구하고 맞서 싸울 배짱도 없었다. 그러니 조용히 숨어 살아야 한다고 털보는 자신에게 일렀다. 그나마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친구와 여자의 편지를 받은 자신은 행운아였다.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도 있고 암으로 죽은 친구도 있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짹 소리도 남기지 못하고 저승길로 떠난 친구도 있다. 그러나 자신은 살아남아 저 아름답고 경쾌한 축복의 노래를 듣고 있다고 털보는 자신을 위무했다.

“이젠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유행가 마지막 소절은 야릇한 평화로 공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 있네…….”

빠삐용은 다시 한 번 계산했다. 털보 말대로 오늘도 다 갔으니 이제 214일 남았다. 지난 7년의 세월은 한 번도 일수로 계산해보지 않았다. 엄청난 숫자이리라 짐작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엄청난 나날도 지나갔고, 모두가 떠나도 사랑은 계속된다는 유행가 가사에 빠삐용은 힘을 얻었다. 그동안 갖가지 요리를 배워 이젠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사람들에게 대접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노후를 함께할 돼지띠 친구도 만났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징역살이는 신이나 천사의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지 나쁜 운명도 아니고 남보다 못한 인생도 아니라고 빠삐용은 생각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신의 뜻은 다 선한 이유를 품고 있기에 그 이유가 곧 드러나리라고 빠삐용은 생각했다. 전동페달을 밟던 발을 당겨 자세를 가다듬은 빠삐용은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쇼핑봉투에 리벳을 박아대는 털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힘내라, 돼지야!”

털보가 그 소리를 들었다.

“응?”

손과 발을 멈추고 빠삐용을 바라보던 털보의 두 눈에 갑자기 눈물이 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삐뚤빼뚤 조악한 솜씨로 편지 끝에 적어놓은 빈대코의 인사말을 떠올렸다. 일그러진 입술을 어렵게 연 털보는 빠삐용에게 그 위안과 격려의 말을 전했다.

“그래…… 힘내라 돼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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