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 시장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급속도로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기회가 발생하는 분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을 잃거나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양면도 존재하는 변화무쌍한 분야다.

국내 업계 이해관계 또한 복잡하다, 여기에 거대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이 더해지며 그 영향과 변수 또한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이미 글로벌 OTT 기업이 국내로 진입한 상황에서, 국내 업계의 대응방안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에서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7일 오후 1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가 주최 ‘글로벌미디어 기업의 국내 진출과 미디어 시장 환경 변화 세미나’는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외 OTT(Over-the-top, 인터넷 기반 영상 콘텐츠 유통 서비스) 시장의 성장 및 변화 양상과 함께, 글로벌 미디어의 국내 진출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전망해보고 토론하는 자리다.

이민규 한국언론학회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한 본 행사는 먼저, 김성철 고려대학교 교수, 곽규태 순천향대학교 교수, 홍석경 서울대학교 교수가 차례로 연사로 나서 각자 준비한 주제와 연구자료를 발표했다.

■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착하는 글로벌 OTT··· 국내 업계 대응방안은?

김성철 교수는 ‘글로벌 OTT 기업의 국내 진출: 기회인가 위협인가?’를 주제로 국내외 OTT 시장동향 전반을 살펴보고 OTT로 인한 미디어산업 변화 등을 심도 있게 발표해나갔다.

김 교수는 OTT로 인해 하나의 콘텐츠가 다양한 플랫폼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단말기로 전달되는 ‘원 콘텐츠 멀티 루트’(One Contents Multi Route) 현상이 정착됨에 따라, 네트워크와 단말기 범용화가 이뤄지면서 콘텐츠와 플랫폼 영역에서 경쟁과 협력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봤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통해 콘텐츠와 플랫폼이 각자의 자리는 고수하며 점차 역할이 비슷해지고 있는 가운데, 콘텐츠가 유통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했다.

그는 “플랫폼 영역은 1.5단계와 2단계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면, 킬러 콘텐츠 공급원에는 큰 변화가 없어 콘텐츠 사업자의 협상력이 증대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플랫폼 사업자는 콘텐츠 확보를 위한 제휴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자체 제작도 시도하는 중이다”는 설명이다.

특히, 젊은 층에서 마치 검색 엔진처럼 활용되고 있는 유튜브의 강세에 따라, MCN의 잠재력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중인 사실을 강조하고, 미국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과 중국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적극적인 콘텐츠 투자 현상을 들며 이를 뒷받침했다.

이렇듯 OTT로 인한 사업전략 변화와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OTT 기업의 국내 진출에 대해, 그는 크게 기회와 위기 측면에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콘텐츠 제작자나 사업자의 경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를 얻게 되지만, 기존 국내 OTT 사업자들은 콘텐츠 제작자로부터 외면을 받아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다만, 넷플릭스가 자신의 정통 브랜드만 내세우고 콘텐츠를 제공한 사업자의 브랜드를 노출시키지 않는 사실을 들면서, “국내 OTT 기업의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력은 글로벌 OTT 기업이 제공할 수 없는 제안을 통해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며 그 경쟁력은 고도화된 마케팅 기법, 빅데이터 분석 기술, 네트워크 운영 기술에 달렸다고 보았다.

김 교수는 글로벌 OTT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해 “국내 플랫폼이 삐거덕거리는 ‘탄광열차’일 경우,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하게 돼 궁극적으로는 콘텐츠 경쟁력 역시 약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 섞인 의견을 냈다. 국내 시장이 콘텐츠 제작사를 끌어들이고 이끌 수 있는 준비가 충분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시장 자체가 글로벌 OTT에 잠식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대응 방안에 대해 그는 OTT에 기본 방송규제를 적용하는 방안과 글로벌 OTT 사업자를 규제하는 법적 규제 방안을 검토해봤지만,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불필요한 규제가 인터넷 생태계의 혁신과 진화를 가로막고 이용자 후생도 저하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대신 “궁극적인 해결책은 규제보다 국내 OTT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국내 미디어 사업자는 전략적 차별화, 규모 있는 콘텐츠 투자, 과감한 합종연횡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막을 수 없는 국내 시장의 요구, 조속한 대응 필요

이어진 곽규태 교수의 발표는 ‘넷플릭스의 제휴와 투자 전략이 국내 미디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진행됐다. 곽 교수는 지난 7월에 열린 한국미디어경영학회 세미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곽 교수는 ▲방송(동영상)콘텐츠 유통구조의 다변화 ▲비선형 콘텐츠 소비의 증가 ▲TV에서 모바일로 필수매체 변화 ▲모바일 기기를 통한 동영상콘텐츠 이용률 등의 자료를 설명하며, 국내 OTT시장의 규모와 성장세를 추정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어 그는 ▲스트리밍서비스로 시장표준 선도 ▲몰아보기 지원과 과감한 콘텐츠 투자 등 차별화 ▲콘텐츠유통사(플랫폼)과 제작사를 넘나드는 다양한 파트너십 ▲현지 맞춤화 콘텐츠 제작 ▲딥러닝 기술 기반한 맞춤형 콘텐츠 추천 같은 개인화 서비스 등 넷플릭스가 취해왔던 해외시장 진입전략을 소개하며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현재 국내 시장 진입 이후 행보에 대해 그 연관성을 깊이 있게 짚어 나갔다.

곽교수는 지난 ▲2016년 5월, 딜라이브 셋톱박스에 탑재 ▲2017년 11월, CJ헬로비전 OTT 뷰잉·디지털방송 셋톱 탑재 ▲2018년 5월 LG유플러스 무제한 데이터요금제와 결합한 3개월 무료서비스 제공 등 넷플릭스의 행보를 파악하며, 그들이 제휴기업의 자원을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면서도 시장진입속도는 가속화해 빠른 시장접근과 규모의 경제 효과를 실현했다고 봤다. 넷플릭스는 이 과정에서 국내 규제 환경에 대해 익히면서도, 그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결합서비스의 표준을 국내에 조기 정립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다. 580억을 투자한 ‘옥자’, 회당 1억 이상이 투자된 ‘범바너’는 물론, 430억이 투자된 ‘미스터션샤인’도 대표적이다. 이러한 국내 콘텐츠 제작사에 대한 투자 또한, 진출 국가에 대한 맞춤형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으로 안정적인 현지 가입자 확보, 100% 사전제작이 가능할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통한 콘텐츠 품질 향상으로 우호적인 콘텐츠 제작사 확보, 한류 콘텐츠 확보로 향후 더 큰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등 전략적 의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곽 교수는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한 반응을 살피기 위한 설문 조사 결과를 소개했는데,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넷플릭스 이용경험자 중 62%가 넷플릭스 이용에 만족하며, 다양한 콘텐츠(31%), 독점적 콘텐츠(29%), 개인 추천시스템(6%) 등을 마음에 들어 했다. 특히, 넷플릭스의 IPTV 시장 진출이 국내 미디어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51%에 달했다. 이와 더불어 56.1%가 ‘국내 콘텐츠 제작환경이 개선되고 해외판로가 확대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반면에, 업계 평가는 사업자 유형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지상파 사업자는 추가 수익 확보 수단으로는 활용할 수 있겠으나, 시장 잠식과 기존 미디어 산업 생태계 파괴가 우려된다는 입장이었으며, 플랫폼 사업자는 콘텐츠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가입자 확보에 용이할 수 있겠지만, 넷플릭스 제휴를 통해 국산 플랫폼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PP(방송프로그램공급자)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와 혁신을 촉발할 수 있으나, 9:1의 불합리한 수익배분구조를 들며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콘텐츠제작사의 경우, 제작 대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고 제작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지만, 대규모 자본 공습으로 인한 국내 제작시장의 종속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곽 교수는 이렇듯 시장 요구와 달리, 업계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혼란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유료방송시장·인터넷동영상서비스시장을 둘러싼 법체계, 규제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유도하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수 공영방송을 제외하고 대체관계에 있는 상품 기반 서비스는 경쟁체제로 유도하고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 간 역차별 해소는 조속히 대응해야 한다”며, 방송, 통신, 인터넷서비스의 차별적 규제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아울러, 시장 변화는 기존 경쟁 환경과 이해관계 변화로 이어지게 되므로 국내 기업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달라진 환경에서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지양하고 단기적 처방이 아닌 장기적 관점의 투자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글로벌 기업과의 투자 및 협력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미디어 환경 변화를 추동하는 넷플릭스의 본질

이어진 홍석경 교수의 발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 시대의 방송문화’를 주제로 미디어 환경 변화의 본질을 파악한 그의 연구 내용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멀티플랫폼 시대에 돌입하게 되면서, 이제는 제작자들이 “지상파 방송사의 실시간 시청률과 국내광고수입에 의존하지 않는다”며, 특히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등장은 기존 한국드라마 발전 트렌드에 정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더는 TV가 아닌 인터넷을 통한 콘텐츠 소비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 세대의 영상 콘텐츠 선호 유형에 대해서는 “긴 프로그램을 싫어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또한 상대적일 뿐”이라며, 오히려, 같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시리즈를 장시간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시청하고 있다고 보았다. 유튜브 세대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결과, 넷플릭스는 몰아보기 기능과 고유 알고리즘을 활용한 맞춤형 콘텐츠 추천을 선보이기에 이르렀고, 이는 기존 방송문화의 혁신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유튜브 세대의 넷플릭스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홍 교수는 미스터션샤인이 넷플릭스의 투자를 통해 제작된 사례를 통해, 넷플릭스가 그만큼 오리지널콘텐츠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언급했다. 특히, "여기에서 사용되는 유머는 지극히 동시대적이고 탈한국적이며 서구적으로 과장된 연기에 기대고 있다"며, “‘미스터션샤인’의 세계는 역사와 계급적 현실이 로맨스를 위해 동원되고, 개인은 무엇보다 사랑과 열정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근대적 로맨스 담론이 작동하는 세계”이고, “역사적 현실에 대한 어떤 해석도 유보하는 이 드라마는 철저하게 스펙터클에 봉사함으로써 역사적 왜곡과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스터션샤인이 국내 시장이 아닌 애초부터 글로벌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는 점을 잘 설명하는 부분이라면서, 넷플릭스의 콘텐츠 투자 의도와 제작사 간의 의도 접점이 무엇인지도 함께 상기시켰다. 이 접점은 분명 국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커 보였다.

연사들의 발표가 모두 끝난 이후에는 발표에 나섰던 연사와 더불어, 류민호 호서대학교 교수, 박상주 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국장, 설진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성호철 조선일보 기자, 최은경 성공회대학교 교수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참석해 주어진 주제와 관련하여, 한 시간 반가량 토론하는 시간도 이어졌다.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전략을 살피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세미나에서 주목한 성공 사례이자 논란이 되는 글로벌 OTT 사업자 넷플릭스는 핵심 고객을 소비자가 아니라, 콘텐츠 제작자로 선정했다. 이후, 넷플릭스 자체도 거대하게 성장했지만, 미국의 OTT 시장 규모도 비할 데 없이 크게 성장하도록 견인한 그들의 업적을 본다면, 미디어를 장악할 수 있는 핵심은 콘텐츠에 있다고 본 넷플릭스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다.

물론, 콘텐츠 유통사가 직접 제작 관여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참여한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도달한 결론은 국내 콘텐츠 제작사의 해외 진출을 돕고 국내 기업 전반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업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건전한 협력관계가 마련되고 유지되는 등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OTT 기업의 국내 시장 진출에 대해 업계 간 의견은 분분하지만, 시장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파트너와 협력해 다가오는 변화의 물결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지는, 앞으로 국내 기업의 전략 수립에 있어 주요 고려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회 기자 (elian11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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