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10일 기획재정부와 민간합동규제개선추진단에 ‘협상에 의한 계약’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건의안을 발송했다.

건의사항의 골자는 입찰가격 평가 시 평가점수 제한 조건을 현행 60% 미만에서 80% 미만으로 개선해달라는 내용이다.

국가와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계약은 국민 혈세가 쓰이는 만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쟁입찰을 통해 낙찰자를 결정(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 시행령 제42조)하지만, 업체 간 저가 입찰 경쟁이 지나쳐 부실시공과 같은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협상에 의한 계약’(국가계약법·지방계약법 시행령 제43조) 제도를 통해 계약이행의 ▲전문성 ▲기술성 ▲창의성 ▲예술성 ▲공공시설물의 안전성 등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제안서를 제출받아 평가 후 협상을 거쳐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좋은 취지로 마련된 제도이지만, 업계가 ‘협상에 의한 계약’ 개선을 요구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 사실상의 기초자격심사··· 변별력 잃은 기술능력평가

협회는 적용대상으로서의 적절성을 고려치 않고, 기술력 평가의 변별력이 상실된 채 무분별한 저가 입찰만을 야기하는 제도로 변질해 다양한 분야에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세부기준’에 따르면, 제출한 제안서를 8~9명의 평가위원이 검토하고 기술능력평가 80점과 입찰가격평가 20점을 합산해 총 100점 이내로 평가하고 있다. 이 중 기술능력평가는 업계별 특성을 고려한 정성평가와 정량평가 항목을 고루 검토하고 있다.

업계는 이에 대해 기본적인 자격심사에 불과하고 업계별 전문성과 특수성을 고려한 세부 평가항목이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협회 관계자는 “이론평가와 기술평가는 누구나 만점을 받는 등 동일한 점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며 “사실상 가격만 갖고서 평가 되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 [별표14]
조달청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 [별표14]

또한,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 평가 세부기준 [별표14]에 따르면, 전체 평가위원의 평가항목별 평균 점수보다 배점 한도의 10%를 초과·미달하는 점수를 준 평가위원은 자신이 평가한 점수를 조정해야 한다. 만약, 조정하지 않을 경우 사유서까지 제출해야 하므로 기술평가점수는 실질적으로 평균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협상에 의한 계약 취지대로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할 기술능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다면, 일반 경쟁 입찰과 다를 바 없다. 업계가 기술평가보다 20점에 불과한 입찰가격평가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사실상의 불합리한 낙찰하한율··· 덤핑 입찰로 이어져

공공입찰은 계약상대자에게 지나친 덤핑 입찰을 방지하고 일정한 계약가격을 보전하기 위해 낙찰하한율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은 예정가격의 60%까지 입찰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기술평가점수의 낮은 변별력으로 입찰가격 점수가 낙찰자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어, 예규에 따른 해당입찰가격은 사실상 낙찰하한율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 별표 제안서의 평가항목 및 배점한도 (제7조 관련) 중 일부 내용. 해당입찰가격 평점 산식은 경쟁 입찰의 낙찰하한율처럼 적용되기 시작했다. SW 사업은 80%로 더 높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기획재정부계약예규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 별표 제안서의 평가항목 및 배점한도 (제7조 관련) 중 일부 내용. 해당입찰가격 평점 산식은 경쟁 입찰의 낙찰하한율처럼 적용되기 시작했다. SW 사업은 80%로 더 높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는 ▲물품 ▲공사 ▲정보통신용역 등의 낙찰하한율이 보통 80%를 넘는 사실과 비교할 때 대폭 낮은 수준이다. 협상에 의한 계약 제도가 사실상 경쟁 입찰처럼 운영되는 상황에서, 예상가격의 절반에 가까운 낙찰하한율로 업계는 제 살 깎는 저가 입찰까지 벌이고 있다고 호소한다.

기획재정부 발간, `2014년도 국가계약제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기획재정부 발간, `2014년도 국가계약제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물론, 60% 낙찰하한율은 상대적일 수 있어 불합리한 기준이라 보기는 성급하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2014년 1월 발간 자료 ‘2014년도 국가계약제도 이렇게 달라집니다’ 에서 소프트웨어사업의 덤핑입찰 유인을 제거해 산업을 보호·육성한다는 취지로 낙찰하한율을 기존 60%에서 8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취지는 좋았지만, ‘협상에 의한 계약’ 입찰 자격자 중 소프트웨어산업만 혜택을 준 셈이 됐다.

‘협상에 의한 계약’ 제도 개선 건의는 정상호 한국정보통신공사협회장과 함께 이재완 한국엔지니어링협회장, 윤경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장, 박명구 한국전시문화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이 공동 발의했다. 업계는 “소프트웨어산업 못지않게 정부가 보호·육성을 강화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산업이다”며 형평성 문제도 함께 제기한 상태다.

■ 현행법 취지 살리기··· 적지 않은 지혜 모아야 가능

협회의 요구대로 평가점수 제한 조건을 조정하는 일은 저가 입찰의 폐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돼 업계 불만을 잠재우리라 기대되지만, 진정한 개선으로 보기 어렵다. 협상에 의한 계약 입법 취지는 비용을 떠나 계약의 목적을 가장 잘 이행할 수 있는 적격자를 찾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협상에 의한 계약 제도가 본래의 취지대로 이행되려면 저가투찰로 인한 가격점수 우위의 낙찰자 선정을 방지하고 기술력을 보유한 사업자가 적절한 시공품질을 확보할 수 있도록 낙찰하한율의 상향 조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입찰평가 제한 조정 못잖게 적용대상으로서의 적절성을 고려하고 변별력을 갖추는 등 기술능력평가를 개선하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이와 같은 노력을 계속 이어가지 않는다면, 협상에 의한 계약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입찰평가만 남아 사실상 현행 법률의 사문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문을 받은 기획재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김광회 기자 (elian118@next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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