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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31)...일요일

발행일시 : 2018-09-17 00:20
[심상대 장편소설]힘내라 돼지(31)...일요일

31. 일요일

빈대코와 스님은 창가에 서서 교도소 담 너머 민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마을버스가 지나다니고 띄엄띄엄 승용차와 경운기가 오가는 시골길 건너편은 비탈밭이었다.
 
“들깨밭인가?”
 
혼잣말인지 빈대코 들으라는 말인지 스님이 중얼거렸다.
 
“요즘도 들깨를 심어요?”
 
빈대코가 보기에 노파인 듯한 사람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 밭은 참깨밭이었다. 저녁나절이라 그다지 덥지 않았고 담 너머 높다랗게 자란 포플러나무 이파리를 흔들며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갔다.
 
“참깨요. 저기 참깨를 말리고 있잖소. 들깨는 아직 때가 이르지요.”
 
“그래요? 들깨는 언제 추수합니까?”
 
“참깨는 추석 전에 털고 들깨는 추석 쇠고 베지요. 저 집은 좀 늦었네. 그늘 드는 땅이라 이제 베서 말리고 있구만.”
 
나머지 수용자는 다 낮잠 자는 중이고 두 사람만 깨어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러고 있던 빈대코가 스님에게 물었다.
 
“사장님은 뭘 어쩌시다가 여길 왔소?”
 
노파가 참깨밭 귀퉁이에 놓은 불은 불꽃은 보이지 않고 가느다란 연기만 피워 올렸다. 그 연기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을 감상하면서 스님이 대답했다.
 
“잘난 척, 아는 척, 있는 척하다가 보면 이 꼴 납니다.”
 
여전히 저 멀리 참깨밭 귀퉁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스님이 말했다.
 
“어디서건 그 세 가지만 조심하면 만사가 편합니다. 알아도 모르는 척, 잘나도 못난 척, 있어도 없는 척하고 살아가면 되는 걸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그 말을 받아 빈대코가 말했다.
 
“그러면 애초부터 없이 살고, 모르고 살고, 지가 잘났는지 못났는지도 모르고 살면서 그런 척하지 않으면 젤 편하겠네요.”
 
“그러면 척을 할 수도 없으니 그런 척은 척이 아니죠.”
 
“척할 필요가 없으면 좋지 뭘 그래요.”
 
“세상살이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지요.”
 
“그럼 어쩝니까?”
 
“그러니 문제가 아닙니까. 있어야 하고, 알아야 하고, 잘나야 인간이지만 또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살아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스님은 먼 데 있던 시선을 교도소 담 위 가시철조망으로 옮겼다. 뱅글뱅글 원을 그리며 가시철조망은 시멘트 담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교도소도 사람 사는 곳이라 저 담 너머 세상하고 똑같아요. 이런 척 저런 척하지 말고 살아야 만사가 편합니다.”
 
그러면서 빈대코를 돌아다보았다.
 
“나는 벌써 4년을 여기서 살았소. 양아치 놈들 야단치다가 징역이 깨져 가석방도 날아갔어요. 아침저녁으로 참회하고 수시로 수양하고 살아도 부족하니 어쩌겠소? 인간사 가시덤불을 벗어날 길이 없네요.”
 
두 사람이 있는 제1위탁공장 출력수 사동 10방은 3층에 위치해 그 아래편 원예반 건물과 묘포장과 온실이 내려다보이고, 그 옆에 자리한 제2위탁공장의 기다랗게 생긴 지붕도 내려보였다. 그 풍경을 천천히 더듬어 살피면서 스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도 어제 봤죠?”
 
무슨 소린지 몰라 빈대코는 스님의 옆얼굴을 쳐다봤다.
 
“어제 12방에 있던 애들 말이오.”
 
그제야 빈대코는 스님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런 애들이 양아칩니다. 우선 조심해야 할 귀신들이죠. 시골바닥에서 꼴같잖은 놈들이 모여 조직 같지도 않은 조직을 만들어서는, 조직입네 뭐네 까불면서 폭력배 같지도 않은 폭력배 꼴을 해요. 여기 교도관들이 다 이 지역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놈들이 교도소 주인행세를 합니다. 그런 놈들하곤 말도 섞지 마세요.”
 
폭행죄로 징역살이하는 빈대코는 미결수 시절 강력방에서 그런 애들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하곤 할 말이 없으니 문제 될 일도 없었다.
 
“그다음이 악마 같은 놈들입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괴롭히며 사고를 만듭니다. 아주 야비한 빵잡이 놈들인데, 그런 놈들이 지랄을 떠는 이유는 결국은 돈 내놓으라는 얘깁니다. 다 거지새끼들이죠. 돈 뜯어내려고 그렇게 거머리처럼 달려들어요.”
 
스님은 양아치와 악마와 마귀와 돌변으로 이어지는 징역살이 귀신들의 족보를 열거하면서 그들의 성질과 대처법을 강론했다.
 
“여기는 1, 2급 교도소라 더 심한 놈은 없어요. 3, 4급수는 형 확정되면 3, 4급 교도소로 배속되거든요. 그런데 어쩌다 숨어 있는 놈도 한둘 있습니다.”
 
유리창은 방 안의 사물함 위쪽에 위치했다. 그러니까 사물함 상부가 창턱 역할을 하고, 그곳에는 혼거수들의 이런저런 공용물품이 놓였다. 막대커피와 녹차티백이 든 종이상자를 옆으로 치우며 스님은 다른 손으로 빈대코의 등을 쓰다듬었다.
 
“사장님은 이제 곧 밖으로 나가실 텐데 뭘…… 여기는 그런 놈이 별로 없습니다만 뭣도 모르고 기술 배우러 직훈 갔다가 그런 놈 만나 징역 깨는 수가 있습니다. 전국 여기저기 교도소에서 이런 놈 저런 놈들이 아주 작정을 하고 몰려들거든요. 그런 데서 마귀를 만납니다. 악마 중의 악마랄 수 있죠. 어지간한 악마는 육갑도술을 부려도 마귀까지 진급하기 어려워요. 이놈들은 천성을 그렇게 타고난 놈들이니까요.”
 
스님은 아랫입술을 여덟팔자로 일그러뜨리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넌더리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들은 피를 빠는 거머리가 아니라 날로 배를 째는 진짜 귀신들입니다. 돈 달라고 찍자 부리는 얼치기 악마하고는 수가 달라요.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고 몇 년씩 빵에서 썩다 보면 그렇게 본성이 겉으로 흘러나와 우선 눈빛부터 변합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인간의 악한 면이 겉으로 드러나지요. 왜냐구요? 그놈도 그러고 싶어 그러겠어요? 뱀 굴에서 토끼처럼 살 수 없으니 저도 살자고 그렇게 변하는 거요. 갱생? 웃기는 소립니다.”
 
쩝! 스님은 꾹 다물었던 두 입술을 불시에 떼면서 쩝, 하는 소리를 냈다.
 
“인간 자체가 악이라 갱생이 불가능해요. 이놈들은 몇 년 만에 밖으로 나가면 눈이 부시고 어지럽답니다. 오래 배를 타다가 여러 달 만에 땅에 오른 뱃사람들이 멀미를 하듯이 이놈들은 교도소 밖 세상이 흔들리고 낯설고 이상해 견디기 힘들답니다. 그러니 이놈들은 제 고향인 감빵에 들어앉아 갖은 잔인하고 야비한 짓으로 주변 사람을 괴롭힙니다. 우선은 곁에 있는 멀쩡한 수형자들을 괴롭히지만 교도관 양반들도 가만두지 않아요. 이놈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한 모든 인간을 속이고 배신하고 파탄지경으로 몰아넣는데, 그러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랑스러워해요. 돈이 목적이 아니라 타인의 파멸이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놈들을 마귀라고 합니다.”
 
통증으로 저린 자신의 어깨를 짚고 있는 스님의 손목을 잡으며 빈대코가 말했다.
 
“이쪽 어깹니다.”
 
“아이고…… 그렇지!”
 
스님은 얼른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귀신이 바로 돌변입니다. 조심하세요, 사장님도. 이놈은 언제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귀신 중의 상귀신이니까요.”
 
“미쳤단 말이오? 돌았다는 뜻이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돌변은 돌연변이라는 뜻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라는 뜻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어요.”
 
잠깐 생각한 뒤 스님이 말했다.
 
“우리 공장에 게이 영감 있죠? 저 4반대에서 일 열심히 하고 배식 타러 다닐 때 이렇게 이렇게 여자처럼 걷는 그 영감 말이오.”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어깨를 오그린 채 엉덩이 일렁이며 걷는 똥똥하고 키 작은 노인 수용자를 흉내 내면서 스님은 주의를 당부했다.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그런 영감이 바로 돌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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